많은 한국인은 자기 나라의 과거를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1950년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당시 개인 소득은 소말리아와 비슷했다. 그러나 엄청난 국민적 희생과 효과적인 산업 정책으로 바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결국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다. 이런 성취는 수많은 난관을 넘어서며 열심히 일한 결과이며 교육열이 뒷받침되었다."
물론 이런 설명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완전히 맞는 이야기도 아니다. 글자 그대로는 사실이지만 행간에 중요한 사실이 빠져있다. 1950년대 한국과 소말리아는 절대 비슷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에는 지하자원이 부족했지만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위대한 학구열과 학자 존중 전통이 있었다. 한국인들이 하루하루 버틸 식량을 얻기 힘든 기아 상태에 처했고 구호 식량을 타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줄에 선 사람 중에는 화학이나 기계공학을 공부한 전문가도 있었고 국가 전략과 행정에 대해 수준 높은 식견을 갖춘 지식인도 있었다.
한국은 국내 정책과 제도 에 관한 한 가장 선진적인 시스템을 가진 국가였다. 특히 1932년부터 1910년까지의 소선 시대에 가장 발전적 형태를 보여주었다. 이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적정 규모 이상의 나라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그 어떤 정부 시스템도 그토록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못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이 일군 기적의 배후에는 수처 년 동안 지속된 지적 전통이 있다. 그런데 한국사를 이야기하면서 이 부분을 생략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한국이 갑자기 튀어나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서술이 피상적인 방식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위대한 고전의 저농을 바탕으로 조성된 현재 문화의 깊은 뿌리는 간과되거나 무시된다.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