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국 서남쪽 발해에 큰 섬 15개가 있다. 사람 사는 마을이 있는 섬이다. 이 섬은 백제에 속한다(百濟國西南渤海中有大島十五所皆邑落有人居屬百濟).”
옛날 중국의 백제에 관한 기록이다. 이 기록에 나와 있는 ‘발해’는 나라 이름이 아니다. ‘큰 섬이 있다’고 했으니 바다 이름이다.
하지만 오늘날 역사책에서 읽은 상식으로 따져보면 잘못된 기록이다. 백제의 서남쪽에는 발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제를 중국대륙의 ‘요서’지방으로 옮겨놓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백제의 서남쪽에 발해가 위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섬이 백제에 속했으니, 발해도 당연히 ‘백제의 바다’였다.
이 15개의 ‘큰 섬’은 지정학적으로 무척 중요했다. 백제가 바다 건너 ‘요서’에서 광대한 식민지를 다스릴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한 섬이었다.
항해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였다. 연안 항해가 고작이었다. 따라서 백제는 이 큰 섬을 디디듯 건너며 식민지까지 선박을 운항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육로를 이용해서 물자를 수송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강대국’인 고구려가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제는 이 섬에 백성을 이주시키는 한편, 군량을 비축하고 군사도 주둔시켰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 사는 마을이 있는 섬’이었다.
중국은 백제의 이 식민지가 껄끄러웠다. 백제를 몰아내려고 수십만 대군을 동원해 여러 차례나 공격했다. 그렇지만 되레 참패만 거듭하고 말았다. 중국은 결국 백제 임금을 동청주자사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以百濟王餘昌爲使持節都督東靑州刺史). 현재의 ‘산둥반도’까지 백제에게 내주고 만 것이다.
백제의 식민지는 엄청나게 넓었다. 단재 신채호(申采浩·1880∼1936)는 지금의 심양(瀋陽)인 만주의 봉천(奉天) 서쪽을 모두 백제가 통치했다고 했다. 또한 왜나라 일본도 백제의 속국(屬國)이었음이 ‘무의(無疑)’하다고 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안타까운 ‘천재지변’이 일어났다. 서기 630년 무렵 발해 일대에 홍수가 난 것이다. 그 때문에 섬이 대부분 물에 잠기고 말았다. 게다가 홍수가 끝났는데도 바다의 수위는 ‘원위치’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 바람에 백제는 ‘징검다리’를 잃었고, 본국과 힘을 합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 결과 국력이 약해졌고 대륙에 살던 사람들도 유민이 되어 이리저리 흩어져야 했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천재지변이 있었다. 몇 해 전, 일본 지진해일이 덮친 지역의 육지가 바다로 변했다는 소식이 그랬다. 우리나라 여의도 면적의 48배나 되는 땅이 바다가 된 것이다. 이유는 지진이 발생하면서 지반이 낮아졌고, 그 곳에 바닷물이 고였기 때문이었다. 백제 때에도 그런 천재지변이었을 것이다.
백제는 이렇게 중국대륙에 넓은 식민지를 만들었던 ‘과거사’가 있다. 중국이 그 식민지를 되찾으려고 싸움을 걸었다가 실패한 ‘과거사’도 있다.
그 찬란했던 백제의 역사를 중국이 ‘중국사’의 일부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자기들 것이라고 우기더니, 이번에는 백제다.
그래도 낯이 좀 뜨겁기는 했던 모양이다. 백제 역사 전체가 아니라 ‘전기(前期)의 역사’만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중국은 백제 ‘후기’ 역사까지 모조리 자기들 것이라고 억지를 부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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