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만이 부근의 작은 읍들을 복속시키니, 진번, 임둔이 복속하였다고 했으니 진번, 임둔도 작은 읍일 것이니 <- 작은 부족들을 많이 병탄했으면 거대한 나라가 될 수 있는데 '작은' 읍들을 합쳤다고 위만조선도 작을 것이란 단정은 어떻게 짓습니까. 론리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또 진번 임둔을 그 작은 읍들과 달리 정확히 이름이 표기됐으니 차라리 그 두 나라가 읍들과 달리 규모가 작지 않았다고 봄이 더 타당합니다.
약 3백리 정도의 전국시대 요동군을 패수를 기준으로 진한 시대 요동군과 요동외요(진고공지 상하장)로 나누었으니, 요동외요(진고공지 상하장, 위만조선)는 직선거리는 약 1백리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 이로써 위만조선의 범위가 백리라고 한다면 료동군 이내로 한정되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歷史적 사실은 그렇다고 보기 힘들죠
결론적으로 위만조선의 영토는
상하장에 있었던 진번, 임둔을 포함한 소읍인 시골마을 들을 여러개 병합하여 세운 나라로,
1) 조선이라는 이름을 불법적으로 사용한 짝퉁고조선이고
2) 위만조선 영토 크기는
요동외요(진고공지, 상하장)의 크기인 1백리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위만조선이 세워진 상하장은 상하운장이며 운장이란 강으로 둘러쌓인 땅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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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하여 말씀드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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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조선이 세워진 요동외요(진고공지, 상하장)이 1백리 정도이고요
지금의 하북성 형수시 무강현도 1백리정도입니다
저는 우리말에 비합리적인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을 상대적으로 최근에 깨달아서 과거에 흐리멍텅하던 시절의 언어 사용을 반성하고 두음법칙, 사이시옷은 전혀 쓰지 않고 외래어는 반드시 우리말로 바꿔 씁니다. 또 두음법칙을 거부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봐 그에 해당하는 단어는 거의 한자로 쓰곤 하는데 가끔 귀찮아서 한글로 쓸 때도 있습니다...
1. '견루선장군양복종제부발해병오만인'을 '견루선장군양복, 종제부발해병오만인'으로 끊어 읽어서 '루선장군 양복을 파견했고 제를 따라 발해로 나아가니 병사가 오만 명이다'로 보는게 틀리지 않다.
2. 반대로 '병오만인'을 뒤에 붙여 '병오만인좌장군순체출료동'으로 보면 '병사 오만 명인 순체가 료동으로 나아갔다'라고 되는듯 하나 그럴려면 '병사 오만 명을 데리고'라고 해석할 수 있도록 與가 있거나 '병사 오만 명을 인솔하여'라고 알아듣게 率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3. 양복이 왕검성 해안에 도착한 것을 두고 '제나라 출신 병사 칠천 명이 도착했다'라고 묘사되는데 수군 모두가 제나라 출신이면 여기서 이리 쓸게 아니고 앞에서 진작에 '제나라 땅을 따라서 제나라 출신 병사들이 발해로 나아갔다'라고 써야 하므로 이는 제나라 출신 칠천 명 이외에 다른 지역 출신의 잔여 병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4. 양복이 칠천 군사를 이끌고 왕검성을 급히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왕검성 측에서 적군의 규모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해 먼저 쳐서 대파했다. 즉, 왕검성은 칠천 병사로 싸우기에는 턱도 없는 전투력을 가진 요새인데 그 칠천 명이 대파당하고 마땅히 소수의 패잔병이 전부여야 할 양복의 군대가 나중에 왕검성 남쪽을 포위했다고 하는데 칠천 명으로 싸웠다가 패한 적이 있는 왕검성의 부근에 칠천 명에 크게 못 미치고 사기도 떨어진 패잔병 무리로 주둔하는게 自殺행위에 다름 없다. 이는 칠천 명 외에 수많은 잔여 병력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5. 또한 이 대목에서 양복이 왕검성에 '먼저' 도착했다고 나온다. 이는 수군이 陸軍보다 먼저 도착했다는 뜻으로 쓰였을 수 있는 말이지만 본대 사만삼천 명을 뒤에 두고 칠천 명으로 따로 먼저 도착했다고도 볼 수 있다.
6. 칠천 명 밖에 안되는 군대로 싸워 대패하고 마땅히 거느린 병사가 소수에 불과할 양복이 나중에 순체와 쌍두 노릇을 하며 주전파 대 주화파 구도를 이루어 대등하게 맞서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발언권을 발휘하긴 커녕 조용히 틀어박혀 명령이나 따라야 할 처지인데 그리 한 것은 역시 칠천 명이 병력의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7. 그리고 다음 대목에 '누선은 제(齊) 지방의 병졸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들어왔는데, 이미 여러 번 패하여 도망했었으니'라고 나오는데 양복의 군대가 패한 적이 한번이 아니라는 뜻이다. 초전에 칠천 군대가 박살이 났는데 무슨 수로 여러 번을 더 싸워 더 패배하는가. 전체 병력이 그 뿐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8. 양복이 위만 조선의 대신들을 꾀어 마음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가 병사 몇 없는 그리 힘이 없는 인물이면 명색이 반역을 공모하는 일인데 조선의 대신들이 무슨 수로 믿고 따랐겠는가.
9. 전후 처분에 대해 '(양복이 병력을 크게 날려먹었기 때문에) 베어 죽임이 마땅하나 돈을 바쳐 속죄(贖罪)하고 서인(庶人)이 되었다.' 라고 나오는데 초전에 잃은 수군 칠천 명(혹은 그 대부분)이 그의 휘하 군대 전부면 애초에 왕검성이 함락까지는 아니더라도 수군 칠천 명으로 부근에 주둔을 하고 충분히 스스로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그리 편제를 마련한건데 궤멸되었으니 이 역시 무제의 머리통의 뚜껑이 열리게 만들 실책이라 그 과실이 순체에 뒤지지가 않으므로 손잡고 함께 황천길을 걷게 됨이 마땅한데도 비록 속전을 내긴 했지만 혼자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 글에서 수구리님이 위만조선의 강역이 협소하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한 줄로 설명하면 '위만조선은 범위가 300리인 전국시대 遼東郡의 절반에 해당하는 遼東외요에 해당하니 직선거리로 100리다'이니 위만조선의 강역이 료동군 안에 국한되었다는 황당한 전제로 한 주장이라서 비판했습니다. 어디를 봐서 論理적입니까
遣樓船將軍楊仆從齊浮渤海兵五萬人左將軍荀彘出遼東討右渠를 해석하는 방법은 세가지입니다
1) 遣樓船將軍楊仆從齊浮渤海. 兵五萬人左將軍荀彘出遼東討右渠
누선장군 양복을 파견해 제 땅에서 출발해 발해를 건너게 했다. 병사 5만의 좌장군 순체는 요동군을 나와 우거를 토벌하게 했다.
--> 총병사 수는 5만 칠천명 = 수군 7천명 + 육군 5만명으로 한국사 데이타베이스의 해석방법으로 정설입니다
2) 遣樓船將軍楊仆從齊浮渤海. 兵五萬. 人左將軍荀彘出遼東討右渠
누선장군 양복을 파견해 제 땅에서 출발해 발해를 건너게 했다. (총)병사는 오만이다. 좌장군 순체는 요동군을 나와 우거를 토벌하게 했다.
--> 상황상 충분히 가능한 해석입니다
이경우에 총 병사수는 5만명 = 수군 7천명 + 육군 4만3천명이 됩니다
3) 遣樓船將軍楊仆從齊浮渤海兵五萬. 人左將軍荀彘出遼東討右渠
--> 누선장군 양복을 파견해 제 땅에서 출발해 병사 5만명이 발해를 건너게 했다. 좌장군 순체는 요동군을 나와 우거를 토벌하게 했다.
총병사수는 5만 +a(알파) = 수군 5만명 + 육군(?, 모름 추정할 수 없음)
--> 한문 문장의 끊어 읽기로 보면 불가능한 해석이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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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님의 해석은 상황을 무시한 엉터리 해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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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의 해석방법인 누선장군 양복의 수군이 5만으로 보는 것이 상황을 무시한 엉터리 해석이 되는지 설명하면..
1) 설명전에..
양복의 수군이 5만이라고 주장한다면 순체의 대나라 연나라 병사수는 조선열전에 표현되지 않았으니 알수없게 됩니다
따라서 백번양보한다고 하더라도
위구르님의 한나라 군사가 수십만이라는 주장은 엉터리주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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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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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이 5만명이고 순체의 육군 병사수는 알수 없다라고 했다면 ... 틀린 엉터리 주장의 오명은 피할 수 있습니다
2) 수군 병사수는 있는데.. 육군의 병사수나 한나라 총 병사수가 전쟁기록에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역사 기록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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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병사수가 중요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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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준비하는 한무제 입장에서는 총 병사수를 반드시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조선열전에 병사수를 표현했습니다
전쟁 준비과장에서 병사수를 알아야 전쟁물자(식량, 무기)를 준비하고 전쟁에 소요되는 자금을 마련해서 전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수행하는 장수는 한무제가 지시한 병사수를 반드시 모집하여 채워야 합니다
환타지 역사 소설이라면
전쟁물자 걱정없이 병사수를 수십만 수백만으로 마음대로 늘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고, 축지법을 사용해서 하루에 수백리를 갔다고 해도 해도 문제 될 것이 없겠지요..
하지만 역사적인 사실이니..
여러가지 해석 가능한 방법중에서 ..그 시대 전쟁상황등을 고려하여 최대한 정확한 해석을 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위구르님처럼 정황이나 해석자 본인이 좋아하는 내용으로 해석하고 주장하면 곤란합니다)
총병사 수는 5만 칠천명 = 수군 7천명 + 육군 5만명으로 한국사 데이타베이스의 해석방법으로 정설입니다 <- 여러 선택지 중에서 우리에게 불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그 쪽에서 구축한 '정설'을 그대로 믿는 사고를 가지고서 무슨 수로 식민사학을 타파한다고 연구를 그리 하십니까? 그리고 총 병사의 수가 5만이면 그런 식으로 기재하는게 정상입니까? '수군은 누가 지휘했다. (총 병력이) 5만명이다. 륙군은 누가 지휘했다' 이런 식의 문장을 보고 수륙군을 합친 수가 5만이라고 해석하는건 멍청하기 짝이 없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