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의식은 관성이 커서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음.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었다고해서 사람들의 장례 의식이 바로 바뀌지는 않음.
그렇다면 조선 초기에도 비슷한 장례가 있어야함. 그런데 기록이 없음.
조선은 고려를 부정하고 유학을 국시로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에
고려에 이런 장례가 있었다면 유학자들이 엄청나게 까고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이 농후하나 없음.
대다수의 기록이 일제 시기에 발견됨.
한반도에는 호랑이가 많았기 때문에 기술이 발전한 조선 때에도 주막에
사람이 일정수이상 모여야 산을 넘었음. 조선때는 호랑이가 그리 많았는데 고려때는 없었다? 말이 안됨.
사람 한두명이 산에 들어가는건 자1살행위나 다름이 없었음.
그런데 부모를 버리려고 혼자 부모를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
아니면 단체로 모여야 산을 넘는데 부모를 버리려고 하는 자식을 다른 사람들이 그냥 두고만 본다?
유학이 몇백년 전에 들어왔는데?
사람들의 생활풍속을 생각하면 논리에 맞지않음.
따라서 고려장이란 개념은 당시 사람들의 풍속과 윤리, 자연환경에 논리적으로 맞지않는 개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