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여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동부여를 건국
그 지역의 원주민인 예족은 강원도로 이주하여 동예를 건국하였다.
이에 지역도 같이 옮겨져
만주에 있던 가섭원이 현재의 강릉으로 옮겨진 것
-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강릉의 지명이 가섭원(=가슬라) 이었기 때문에
동부여가 동해 바닷가에 있다고 서술한 것
+) 위만조선의 멸망과 민족대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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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 고대사의 미스테리도 풀리게 됩니다.
<삼국사기> 고구려 지리편
『통전(通典)』에는 “주몽(朱蒙)이 한(漢)나라 건소(建昭) 2년(기원전 37)에 북부여(北扶餘)로부터 동남방으로 나와서 보술수(普述水)를 건너 흘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국호를 구려(句麗)라 하고 성씨를 ‘고(高)’라고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고기(古記)에는 “주몽이 부여로부터 난을 피하여 졸본(卒本)에 이르렀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홀승골성과 졸본은 같은 지방인 듯하다.
- 고구려는 북부여의 동남쪽
즉, 북부여는 고구려의 서북쪽
<자치통감> 진기
처음에 부여는 녹산(鹿山)에 거주하였는데 백제의 침략을 받아 부락이 쇠퇴하고 흩어져서 서쪽의 연 가까이로 이주하였으나 미리 방어를 하지 않았다. 연왕 황은 세자 준을 파견하여 모용군·모용각·모여근 세 장군과 군사 1만 7천 명의 기병을 이끌고 부여를 습격하도록 하였다. 준은 중군에 있으면서 지휘를 하고 군대의 업무는 모두 각에게 맡겼다. 마침내 부여를 빼앗고 그 왕 현(玄)과 부락 주민 5만여 명을 사로잡아 가지고 돌아왔다. 모용황은 현(玄)을 진군장군으로 삼고 그의 딸을 처로 삼도록 하였다.
- 당시 백제가 요서로 진출하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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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