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섭(80) 전 연세대 사학과 교수의 회고록에 따르면 학과 동료 교수이기도 한 고故 한우근과 김철준 교수에게 각각 두 번씩 호된 질책을 받기도 했다.
“김철준 교수가 한 번은 나를 보고 웃으시며,‘김 선생, 김 선생 민족주의는 내 민족주의와 다른 것 같애’,‘예, 그런 것 같습니다. …’, 그 다음은 노발대발하시며, ‘이병도 선생에 대해서 무슨 글을 그렇게 써!’하시며 질책하셨다. 마치 부하 직원이나 제자를 대하듯 나무라셨다. 전자는 경고성 발언이고 후자는 절교성 발언이라 생각되었다.”(770쪽)
한우근은 여러 사람이 동석한 가운데 김 교수에게 “김 선생, 우리 이제 민족사학 그만하자.”고 했다고 회고했다. “(한 번은) 너덧 명의 중년ㆍ노년 교수가 내방하였다.
노크를 하기에 문을 열었더니, 김원룡 교수께서 말씀하시기를‘일제 때 경성제대에서 내가 배운 스에마쓰(末松保和) 선생님인데, 김 선생 강의를 참관코자 하시기에 모시고 왔어요. 김 선생 되겠지?’ 하는 것이었다.”(768쪽)
스에마쓰는 조선총독부 관리이자 경성제국대학 교수로서 임나일본부설을 체계화하는 등 식민주의 역사학을 제창하고 수립한 중심인물로 꼽히며, 당시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교수인 김원룡은 경성제국대학 시절 그의 제자였다.
이런 식으로 학교 안팎에서 압력이 거세지자 “그리하여 나의 문화 학술운동은 사실상 끝이 났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서울대학교의 관악산 이전을 계기로 나도 이 학교를 떠났다”고 회고록에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