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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21 23:28
[기타] 미천왕의 요동 승전과 선비족 축출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191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851340&cid=56779&categoryId=56779


서기 197년 발기의 반란 이후부터 서기 370년 고국원왕의 말년까지는 고구려의 중쇠시대였다. 하지만 미천왕 시대는 이 시기에서 가장 나은 시기였다.

필자는 예전에 환인현에 체류한 적이 있다. 그때 그곳의 문인이자 만주족인 왕자평에게 들은 말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 고구려 때 우굴로란 대왕이 있었다. 신분이 낮을 때에 처지가 불우해서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걸식하면서 가죽으로 신을 만들어 신었다. 지금도 만주에서 가죽신을 우굴로(우굴로는 만주 노동자의 신)라고 하는 것은 그 대왕의 이름에서 기원한 것이다. 그렇게 걸식할 정도로 곤궁하면서도 대왕은 요동을 경영할 뜻을 늘 품고 살았다. 그래서 요동 각지에서 걸식할 때에, 산천의 형세와 도로의 원근을 알기 위해 풀씨를 갖고 다니며 길가에 뿌렸다. 자신이 다닌 길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지금도 요동 각지의 길가에 우굴로란 풀이 많다.”

우굴로가 을불과 음이 같고 또 고구려 제왕 중에 초년에 걸식한 이는 을불뿐이므로, 우굴로는 아마 미천왕 을불의 소싯적 이름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천왕은 서기 300년부터 331년까지 31년간 재위한 제왕이다. 그 31년간의 역사는 선비족 모용씨와 혈전을 벌인 역사다. 축소된 〈고구려 본기〉와 과장된 《진서》를 종합한 뒤 그중에서 진실에 가까운 것을 골라 왕의 역사를 서술하면 대략 아래와 같다.

1) 현도군의 회복

왕자 수성이 회복한 요동이 연우왕 때 또다시 한나라의 소유가 됐다는 점은 앞에서 서술했다. 즉위한 이듬해에 현도군을 공격한 미천왕은 8천 명을 포로로 잡아 평양에 옮기고, 재위 16년에 마침내 현도성을 점령했다.

2) 낙랑군의 회복

한무제 때 한사군의 하나였던 낙랑군은 대대로 이동이 매우 잦았다. 대체로 요동 땅에 잠정적으로 설치한 것으로서, 평양의 낙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고구려 본기〉 동천왕 편에 나오듯, 위나라 군대가 낙랑으로 물러날 때에 동천왕이 평양으로 천도하고 평양 천도 이후에도 위나라·진()나라의 낙랑태수가 여전히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중국의 낙랑이 조선의 평양인 남낙랑이었다면, 이는 평양이 고구려의 도읍인 동시에 중국 낙랑군의 군청 소재지였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천하에 어찌 이처럼 모순적인 역사적 사실이 있었겠는가.

미천왕이 낙랑을 점령한 것은 재위 14년째인 서기 313년1)이었다. 당시 진나라 사람인 장통이 낙랑·대방 두 군(대방도 요동에 잠정적으로 설치된 군이다. 장단이나 봉산의 ‘대방국’과는 다르다)을 거점으로 삼고 있었다. 미천왕이 장통을 공격하자, 항거할 힘이 없는 장통은 모용외의 부장인 낙랑왕 모용준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모용준은 구원하러 나왔지만 패배하고 말았다. 그러자 모용준은 장통을 꾀어 천여 호의 민가를 데리고 모용외에게 투항하도록 했다. 이에 모용외는 류성() 즉 지금의 금주() 등지에 낙랑군을 설치하고 장통을 태수에 임명했다. 한편, 요동의 낙랑은 고구려의 소유가 됐다.

3) 요동 승전

요동군청 소재지는 양평 즉 지금의 요양이었다. 《진서》에서는 “미천왕이 요동을 공격하다가 자주 패배하자 화친을 구걸했다”고 했지만, 《양서》에서는 “을불이 요동을 자주 침략했다. 모용외가 막을 수 없었다”라고 하여 모용외가 미천왕에게 항상 패배했다고 알려주고 있다. 이렇게 두 기록이 상호 모순된다.

《진서》는 당태종 때 지어진 책이다. 당태종은 요동이 중국의 요동이었던 것처럼 위조함으로써 자국 신민()을 고무하고 고구려에 대한 전쟁 열기를 일으키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이전 왕조의 역사서인 《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등에 적힌 조선 관련 기사, 특히 고구려 관련 기사를 상당 부분 조작했다. 이 정도였으니 자기 시대에 편찬한 《진서》는 어떠했겠는가. 따라서 《양서》에 기록된 내용이 진실일 것이다. 당시는 현도와 낙랑이 정복된 뒤였으니, 겨우 몇 개 현()만 남은 요동도 고구려에게 돌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충분한 증거가 없으므로 이 정도로만 언급한다.

4) 극성 전투

서기 320년, 미천왕은 선비족 우문씨·단씨 및 진()나라 평주자사 최비와 연합하여 모용외의 서울인 극성을 쳤다. 그러자 모용외는 네 나라를 이간시켰다. 이 때문에 미천왕과 단씨는 물러나고, 우문씨와 최비는 모용외와 싸우다가 대패했다. 이에 최비는 고구려에 투항하고, 고구려 장수 여노자()는 사성()을 지키다가 모용외의 장수인 장통에게 패했다. 이상은 《진서》에 기록된 내용이다. 사실인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여노자는 고노자()의 오자인 것 같지만, 모용외를 여러 차례 격파한 명장인 고노자가 장통에게 사로잡혔다는 말은 의심스럽다. 또 고노자가 봉상왕 5년 이후로 〈고구려 본기〉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그가 그 즈음에 사망했다는 뜻인데, 그런 그가 근 40년 만에 갑자기 출현하는 것은 이상하다. 따라서 위의 내용은 조작된 기록일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천왕의 요동 승전과 선비족 축출 (조선상고사, 2014. 11. 28., 역사의 아침)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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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7-12-21 23:56
   
낙랑군이 대동강 평양에.... 247년 동천왕의 평양성이 대동강 평양에...
동시에 양립 할수없는 상황이네요.

동천왕때에 평양에서 낙랑군과 고구려가 같이 생활했다 ?
장진동 17-12-22 11:50
   
고대에 평양이란 뜻은 요즘으로 말하면  서울시,부산시,광주시 할때  '시'의 개념이라 들었던거 같은데요
     
도배시러 17-12-22 13:44
   
동천왕의 평양성은 의미가 다르죠. 왕검성이라네요
위구르 17-12-22 13:56
   
고구려의 명장 고노자 장군이 어찌 됐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김진명의 고구려에서는 고노자 장군이 낙랑 축출기 절정기인 낙랑성 함락때 전사한걸로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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