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우는 마을장정 10여명과 그들의 노비까지 합쳐 50여명의 부대를 만들어
음력 5월 초순부터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활동때마다 소소한 전과를 얻었던 곽재우의 부대였지만,
국가의 허가 없이 병력을 모집한데다가
관청의 창고마저 무단으로 이용하는 등
문제점이 있었다
지방 사족들이 사사로이 병력을 움직이고 관의 물자를 멋대로 사용하게 둘 정도로
조선의 법치는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의병대를 만들어 도적질을 일삼던 정대성이라는 자가
합천군수 전현룡에게 체포되어 참수되는 일도 있었다
전현룡은 곽재우 부대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예의 정대성 건도 있었기에 곽재우 부대 역시 도적으로 의심하여 체포령을 내렸다
결국 곽재우의 부대는 체포를 피해 뿔뿔히 흩어졌었다
음력 5월6일
김성일이 초유사로서 함양에 도착했다
초유사는 난리가 일었을때 백성들을 안심시키러 다니던 임시벼슬이며
김성일은 예전 통신사로 왜에 다녀와 전쟁의 위협이 그리 크지 않다 주장하였던 인물이다
김성일은 곽재우의 일을 전해들은 후,
공문을 작성하여 곽재우에겐 죄가 없음을 알리고
그의 부대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고 알렸다
곽재우가 김성일의 도움으로 겨우 공식적인 의병대로 인정받고,
부대의 재정비를 간신히 마쳤을 때에
왜의 6군이 의령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