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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6 23:45
[중국] 당의 경제외교 1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203  

당나라와 외교관계를 맺는 국가는, 당나라가 스스로 만든 외교체제 속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국가별로 상황이 다르고, 당나라와의 관계도 서로 달랐기에 이러한 당나라와 당나라의 국가별 등급 때문에 갈등이 발생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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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관념에서, 중국은 천하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사이(四夷) ,동서남북의 오랑캐가 중국을 둘러싸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중원을 제외한 지역을 오랑캐 라 여기는 관념의 유래는 아주 오래되었다. 당나라는 그저 옛날의 것을 답습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 관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상응하는 제도도 이에 맞추어야 했다. 예를 들어, "사방관(四方館)"은 바로 외국사신을 접대하는 장소이고, 전체적인 틀을 갖춘 제도였다.

 

만일 사신이 오면, 전문적으로 접대하는 인원이 맞이하고, 방문하고 기록한다. 특히 내방국의 풍정, 제도등을 기록하고 당나라의 사관에 보존한다.

 

당나라의 외교체제 중에서 각국과 교류하는데는 등급이 있었다. 이 등급은 당나라가 설정하고, 상응하게 접대하며, 등급에 따라 진행한다.


당나라 조정.JPG


전문적인 외교부서를 당나라에서는 홍려사(鴻臚寺)라 불렀다.

 

"사방의 오랑캐의 군장이 황제를 배알하러 오면, 그 등급을 구분하여 손님으로 대접한다." 홍려사의 장관은 홍려경이고 부장관은 소경이다.

이들은 사신업무도 맡는다.


당나라 외교.jpg


"만일 여러 번국의 우두머리에게 봉건예명을 내리면, 책봉을 받아 그 나라로 간다." 정치적 우두머리를 책봉하는 것은 중국황제(당나라때부터 '천가한. 天可汗' 이라 부렀다)의 권력이다.

 

홍려경등은 집행자이다. 즉 각국수뇌의 등극의식에 참가하여 중국황제의 정치태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홍려사가 관할하는 전객서의 직책은 외빈접대이다. "무릇 조공, 연회, 송영 등은 모두 등급에 따라 구분하여 그 직무를 한다. 무릇 추장수령이 알현하고자 하면, 관에서는 예의로 모신다."

 

등급은 확실히 관건적인 요소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3품이상은 제3, 4,5 품이상은 제4, 6품이하는 제5등에 준한다." 처음에 중국으로 오는 외국사신은 아마도 관직등급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나라는 미리 안배한다. '관직품계가 없는 자의 경우 큰 추장 우두머리는 제4등으로 하고, 작은 추장 우두머리는 제5등으로 한다." 등급이 다르면 대우도 다르다. 이것이 당시의 등급특색이다.

 

소위 품계라는 것은 당나라의 관리 품계이다. 직무, 장군호칭 및 작위등을 포함한다. 외국군주는 당나라의 관직을 받는다.

이것이 당시에 가장 보편적이고 쌍방이 공동으로 준수해야할 하나의 규칙이었다.

 

a)아사나사마(阿史那思摩)를 예로 들면, 그는 돌궐인인데, 동돌궐 내부의 관직은 "협필특근(夾畢特勤)"으로 여러번 당나라에 사신으로 왔는데, 당고조는 처음에 그를 "화순군왕(和順郡王)'에 봉한다.

 

정관4(630) 삼월, 당태종은 그를 "우무후대장군(右武侯大將軍), 화주도독(化州都督)"에 임명하고, 오월에는 다시 "회화군왕(懷化郡王)"으로 봉한다.

장군호칭은 정3품이고, 군왕품계는 종1품이다. 여러 책봉은 답습하는 성질이 있다.

 

b)예를 들어, 신라왕은 낙랑군왕(樂浪郡王)으로 했고, 백제왕은 대방군왕(帶方郡王)으로 했으며, 고구려왕은 요동군왕(遼東郡王)으로 했다.

 

당나라와 교류하는 각국은 대다수가 부속국 으로 여겨졌으며, 당나라에 칭신조공(稱臣朝貢)했고, 당나라에서 책봉하는 관직을 받았다.

이것도 그중이 하나의 내용이다. 사서에는 당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를 '외신(外臣)'이라 칭한다.


당나라.png


 

당나라가 외교업무를 주재하였고, 중국과 교류의 조건과 대우는 각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형식적인 평등교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공의 실질적인 의미는 경제무역이다.

고대국가외교는 실력이 선명하게 반영되었다. 고대에 페르시아제국에서 지금까지 전해지는 만국내조에 대한 법령은 이를 설명한다.

국제관계의 실질은 불평등이 근본이다.


당나라 여인.jpg

실력이 상당한 대국과의 사이에서 소국의 선택은 더욱 곤란하다. 부득이하게 양쪽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서한시기에 흉노와 장기적으로 전쟁을 치를 때, 많은 주변소국은 눈치를 봐야했다.

 

누란왕은 한무제에게 이렇게 말한다 "소국은 대국의 사에에서 양쪽에 모두 부속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한무제의 동정과 이해를 받아낸다.

 

이것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래서 대국과 교류함에 있어서, 소국이 추구하는 것은 대국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기타의 실질적인 이익이었다.

 

조공은 겉으로 보기에는 조공국이 진상하는 것이고, 정치,외교적으로 주군과 신하의 관계로 보이지만, 현재의 연구에 따르면, 조공은 사실 정치관계라기보다는 경제관계이다.

 

그래서 학술계는 이를 '조공무역'이라고 칭한다.

당나라는 이런 조공무역에 대하여 독특한 언어로 묘사했다. 조공하는 측에 대하여 당나라는 '헌방물(獻方物, 실제는 조공국이 당과 교역을 위해 당에 가져온 물품)'이라고 했다. 명마, 전상(戰象), 사자 등 등 모구 구체적인 '방물'이다. 당나라에는 전문적인 규정이 있었다.

 

이를 어떻게 받아서 처리하는지 명확한 절차와 방법을 규정해두었다. 만일 방물이 약물, 식물이면 당나라 변경에 들어오자마자, 변경의 주현이 검수, 포장, 봉인하고 다시 사신에게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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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보고서를 작성하여 조정으로 보낸다. 이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연회를 베풀 것인지 말 것인지를 모두 조정의 지시에 따라 진행한다.

 

사신이 귀국(還藩)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상사(賞賜, 당이 조공국과 교환하는 ,선물을 가장한 무역품)를 내린다.

상사에는 각각 차이가 있다. 장소는 조당(朝堂)에서이고, 전객서의 관리가 사신을 데리고 들어가서 수령한다. 그리고 사신에게 감사인사를 하는 예절을 가르친다.

 

'상사에는 각각 차이가 있다' 있었다.

, 조공품에 대한 가치를 결정하고, 최후의 상사 단계에서 그것을 반영한다. , 조공국이 진공방물의 가치에 따라, 상사의 다과가 결정된다.

비록 거래라는 이름을 쓰지는 않았지만, 본질적으로는 거래이다.

 

당나라의 황제는 외교사절에 대한 하사품으로 아무 것이나 다 쓰지는 않았다. 통상적으로는 방직품이었다(구체적으로 비단).

 

이것이 바로 '사물(賜物)'의 진정한 의미이다. 그러나, 사물은 내외의 구분이 있다. 만일 조정신하라면 '사물십단(賜物十段)'의 구체적인 내용은 견3(四丈一匹이다), 포삼단(五丈一端이다), 면사둔(六兩1이다)이다.

 

만일 "사번객금채(賜藩客錦綵)"라면, '십단''1, 2, 3, 4'이 된다. 이를 보면 번객을 위하여 준비하는 하사물이 더욱 풍부하고 다양하다. 당나라는 변경밖의 주민들과 호시(互市)를 열었다.

 

어떤 물품은 호시에서 거래할 수 없었다. 당나라의 <관시령>에 따르면, ", , , , , 직성, , 사견, 사포, 모우미, 진주, , , 철은 여러 번국과의 호시에서 거래하여 번국으로 들어갈 수 없다.".

 

같은 금릉등 사직품은 황제의 사물에도 있다. 그러나 호시에서 거래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아마도 조공에 대한 특별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 이다. 즉 조공국은 일반무역에서 구할 수 없는 품목이 있슴과, 또한 조공무역이 적은 조공으로 더 많은 사물을 받을 수 있기에 조공이라는 외교체제 내에 자발적으로 합류한 것이다.

 

조공무역은 본질적으로 무역이다. 다만 그럼에도 심각한 외교적인 낙인이 남는다. 그래서 정치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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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는 안사의 난 때, 위구르가 난을 평정하는데 도움을 준 바 있다. 이것은 당나라 후기 쌍방관계에 장기적인 문제를 가져왔다. 위구르는 호시관계를 이용하여 대량의 마필을 당나라로 보냈고, 당나라에 그 가치를 초과하는 비단을 요구했다. 이는 당나라에 거대한 재정압력을 가했다.

문화소프트웨어실력은 군사력보다 중요하다.

외교활동은 힘을 교환하는 의미가 있다. 장건이 서역에 사신으로 간 것은 원래 국제통일전선을 형성하여 흉노에 항거하기 위함이었다.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비단길을 열게 되어 당시 세계의 주요문화구역간의 교통로를 연다. 그후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고, 중국문명이 서방에 수출되는데 모두 이 길 즉 실크로드를 통해서이다.

 

문화교류는 문화발전의 주요한 경로이다. , 문화도 외교활동의 일부분이 된다. 문명의 유사성은 쌍방의 호감을 촉진시킨다. 이것은 오늘날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무제는 바로 장건을 통해서, 서역에 '행국(行國)''성곽지국(城廓之國)'의 구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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