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구운몽(九雲夢)의 저자로 유명한 김만중(金萬重)의 서포만필(西浦漫筆)에는 송강(宋江) 정철(鄭澈)의 가사(歌辭)인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에 대한 논평이 실려 있다.
宋江關東別曲 前後思美人歌 乃我東之離騷 (송강관동별곡 전후사미인가 내아동지이소)
송강의 관동별곡과 전후사미인가는 우리 동방의 이소와 같다.
而以其不可以文字寫之 故惟樂人輩 口相授受 或傳以國書而以 (이이기불가이문자사지 고유악인배 구상수수 혹전이국서이이)
하지만 문자(한자)로서 배껴낼수 없기에 오직 노래꾼들이 입에서 입으로 주고 받고 혹은 국서(한글)로 써서 전할 따름이다.
(중략)
人心之發於口者爲言 言之有節奏者 爲歌詩文賦 (인심지발어구자위언 언지유절주자 위가시문부)
사람의 생각이 입으로 나오는 것을 말이라 하고, 말에 가락을 붙인 것을 노래와 시, 문부라 한다.
(중략)
今我國詩文 捨其言而學他國之言 設令十分相似 只是鸚鵡之人言 (금아국시문 사기언이학타국지언 설령십분상사 지시앵무지인언)
지금 우리나라의 시문은 제말을 버리고 남의 나라 말을 배워서 쓰고 있는데 비록 그게 아무리 비슷하더라도 앵무새가 사람 말을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하략)
김만중은 1600년대 중후반을 산 사람이다.
그런 그도 한자를 문자(文字)로 한글을 국서(國書)로 표현하고 있다.
한자(漢字)는 원나라를 세운 몽골인들이 자기들의 글자와 구별하기 위하여 화하(華夏)족이 쓰던 글자를 한수(漢水)라는 강이름에서 따와 그렇게 불렀다 한다.
그렇다면 한자 이전에는 무엇이라 불렀을까?
지금 우리가 쓰는 표준 글자체는 해서체(楷書體)이다.
그 이전에 노예가 만든 글이라는 예서체(隸書體)가 있었고 또 그전에 진시황이 만들었다는 소전체(小篆體)와 대전체(大篆體)가 있었다.
진시황 이전에 산동지방에서 널리 쓰였던 올챙이처럼 생긴 글자인 과두(蝌蚪)문자는 서경(書經)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폐기처분 되었으며 주대(周代)의 글자체인 금문(金文)이 가장 오래된 글자로 전해오고 있었다.
적어도 1899년에 갑골문(甲骨文)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이 당시까지는 후한(後漢) 때 허신(許愼)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가 문자연구의 Bible이 되었다.
그러니 누구에게나 문자가 주나라 때 화하(華夏)족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상식처럼 받아 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