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는 기원전 57년에 건국되었습니다. 처음 나라를 세울 때의 이름은 사로국이었습니다. 이 무렵 외부의 선진문화도 받아들이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고조선 문화입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첫 머리에는 "조선의 유민이 각 지역에 나누어 거주하여 6촌을 이루었으니... 이것이 진한 6부이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신라가 건국되는 기원 전후의 무덤에서는 고조선과 관련된 것들이 자주 발견됩니다. 영천 용전리 널무덤에서 발견된 은으로 만든 칼집장식을 비롯해 경주 입실리에서 발견되 꺽창은 평양 토성동 486호 무덤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유물은 바로 경주지역 고유의 문화입니다. 신라는 자신들의 문화에 고조선의 문화를 받아들여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경상북도 영천시 어은동의 금호강변에 있는 구릉에서 1918년에 발견되었다. 아무 시설이 없는 구덩이 안에서 많은 청동유물이 나왔다고 한다. 최근의 연구로 볼 때, 널무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거울과 이를 모방한 청동거울, 동물모양 띠고리, 말과 사슴머리 조각, 그리고 수많은 청동꾸미개가 한꺼번에 발견되었다. 중국거울은 '日光'이라는 명문이 있는 것과 훼룡문이 새겨진 것이 있다. 중국거울을 모방해서 만든 대부분의 청동거울은 지름이 5.0~6.0cm로 작다. 청동 꾸미개는 뒤쪽에 가는 철사가 가로질러져 있는데, 옷이나 신발의 겉면에 달아 꾸미는데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어은동 발견품은 영남지방의 널무덤 출토품과 비교하였을 때 기원후 1세기 무렵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경주박물관>
고수님 삼국사기에서 증명되어있는 고조선계통 유물이 출토 되는데 삼국사기 기록 처럼 고조선 유민이 경주로 와 진한 6부 살립하나요 아니면 경주 토착민이 고조선 철기 영향 흡수하는거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