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은 추남이고 장비는 꽃미남이었다
미인은 통상 여자를 지칭한다.
그렇게 된 것은 아름다움은 여자에게 특별히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 세대 전에는 남자는 힘세고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겨야 한다는 견해가 사회를 지배하여 여자 같이 예쁜 남자는 멸시되었다.
배우는 예뻐야 하는 것은 상식 중 상식인데도 미남 배우보다 추남 배우가 더 인기를 끌었다.
옛날부터, ‘잘 생긴 것은 타고난 최고의 복’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잘생긴 남자가 멸시된 것인가.
한 세대 전은 이데올로기의 시대였다. 크고 강한 남자가 최고라는 사조는 시대의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벗어나매 이윽고 정상으로 돌아 온 것인가.
요즘 꽃미남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남자도 여자처럼 용모를 중요시 하고 취직시험, 면접시험을 위해 성형수술을 하기도 한다.
잘생긴 남자는 CEO로 승진하는 데에도 유리할 것이다.
삼국지의 제갈량은 요즘말로 꽃미남이었다.
유비는 세 번이나 찾아가 간신히 그를 만났다.
제갈량은 그렇게 취직을 하였고 역사상 걸출한 CEO가 되었다.
그런데 제갈량은 사실은 꽃미남이 아니라 지독한 추남이었다는 견해가 있다.
제갈량은 동양 사람에게는 공자 다음으로 알려진 성인(聖人)이다.
그는 풍채가 어떠한 인물이었을까.
ꡐ키가 팔 척이요,
얼굴은 관옥처럼 희고 표연한 풍신이 신선 같았다.
ꡑ이것은 연의에서 묘사된 제갈량의 모습이다.
전해오는 제갈량의 초상화도 많이 있어 사람들의 뇌리에는 네모반듯한 신선 같은 제갈량의 모습이 깊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모두 후세의 가공, 창작으로 역사적 기록에 의한 그의 모습과는 정반대이다.
ꡐ제갈량은 신장이 팔 척이며 삐쩍 말라 조잡하게 생겼다.
피부는 오래된 소나무 같이 말라 비틀어졌으나 오랜 사색과 수련으로 인한 내면에서 풍겨 나오는 고고함이 있었다.
ꡑ이상이 역사적 기록에 의한 제갈량의 모습이다.
손권이 제갈량의 친형 제갈근을 말상이라고 놀렸다는 정사(正史)의 기록이 있다.
제갈근은 얼굴이 길쭉한, 지독한 추남이었던 것 같다.
그 역시 제갈량처럼 키가 크고 용모가 특이하며 생각이 깊어 위엄은 있었다. 그러나 친형이 얼굴이 길쭉한 추남이었다면 제갈량도 네모반듯한 미남은 아니었을 것 같다.
제갈량 외모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정사의 그의 전기(傳記)에 의해 추정할 수 있는 외모와도 상통한다.
그는 난세에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어 고생길에 들어섰다.
그나마 의탁하던 숙부마저 죽어 십대의 나이에 가장이 되어 농사지어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천생이 잘 생기지 못한데다 어린 나이 때부터 농사일 속에서 살아야 했다면 그의 모습은 햇볕에 그을린 여느 촌부의 모습, 그것이었을 것이다.
제갈량은 천하의 추녀를 아내로 맞았다.
추남이라는 사실이 그러하게 된 것의 한 요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물론 지금 어디까지나 그의 외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앞의 역사적 기록처럼 그에게는 깊은 사색과 수련으로 인한 내면에서 풍겨 나오는 고아(高雅)함이 있었다.
- <정사소설 삼국지(한국방송출판 刊>에서
역사상 위대한 CEO였던 제갈량은 추남이었다.
그런데 추남의 전형인 장비가 사실은 꽃미남이었다는 견해가 있다.
사실, ‘장비가 백정의 아들이고 일자무식에 거칠고 난폭한 덩치 큰 남자’라는 것은 단지 소설에 나오는 그의 모습일 뿐이다.
장비에 대해서 소설이 아니라 역사적 기록과 사당 등 유적을 근거로 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장비는 무뿐만이 아니라 문에도 조예가 깊은 인물이었다.
일자무식이 아니라 시문(詩文)에 능하고 시화(詩畵)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장비의 두 딸은 모두 유선의 아내, 황후가 되었다.
봉건사회에서 황제 대다수는 호색가였다.
유선이 장비의 딸 하나쯤은 정략적 이유에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유선은 장비 딸을 모두 아내로 삼았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장비의 딸들은 모두 절세미녀이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딸들이 모두 절세미녀라면 아버지 장비가 미남이 아니었을까.
그의 용모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없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 유적 등에 의해 추정하면 그는 미남이었다는 심증이 간다.
-《박정희에서 고건까지(북갤러리 刊》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