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왕후가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 의견이 분분하지는 않습니다.
신공은 실재했던 인물이예요.
의견이 갈리는 건 신공이 삼한을 정벌했다고 기록된 그 기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죠...
(정확히는 근초고왕의 가야 정벌을 신공이 한 일로 뒤바꿔 놓은 것이죠.)
일본서기 신공기 즉, 신공왕후가 기록된 부분에 보면 백제가 칠지도를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실물이 130여년 전에 석상신궁에서 발견이 되었으니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공의 아들 응신이 120년의 년차가 보이는 것은
일본의 역사를 끌어올리기 위해 2갑자를 당겼기 때문입니다.
120년만 더하기 해서 보면 연도가 맞아 떨어집니다.
신라왕자 천일창이 일본에 건너와 작은 나라의 왕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삼국유사에도 연오랑이 일본에 건너가서 소국의 왕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인물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같은 인물일 가능성도 많습니다.
그리고 님께서, 일본의 역사를 끌어올리기 위해 2갑자를 당겼기 때문이고 120년만 더하기 해서 보면 연도가 맞아 떨어진다 하시는데 아래와 같은 논리도 있네요.
제 글이 아니라 제 생각과 비슷한 것을 퍼온 글 입니다.
임나와 관련된 기록은 신공황후기에 가야 다시 나온다. 그런데 이 기록들이야말로 혼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2갑자 하향설이라고 해서 [일본서기] 기록에 120년(2갑자)을 더해서 계산하는데, 그 이야기는 신공황후기에도 보통 적용된다. 하지만 그렇게 일괄적으로 깔끔하게 적용할 수가 없다.
[일본서기]를 따르면 신공황후는 200년 만삭의 몸으로 신라를 정벌했다. 이때 신라왕 파사매금波沙寐錦은 미질기지微叱己知 파진간기(파진찬)를 인질로 보냈다.
파사매금은 물론 파사婆娑 이사금(재위 80-112)일 수는 없다. 연대가 맞지 않고 왜와 관련된 문제가 없다. 그리고 미질기지 파진찬이라면 분명 실성 이사금 때 왜에 볼모로 보내진 미사흔未斯欣을 가리키는 것이다. 미질기지는 신공 5년조에는 미질허지微叱許智로 나온다. 미질허지를 신라로 빼돌린 사람, 즉 [삼국사기]의 박제상은 모마리질지毛麻利叱智로 나온다. [삼국사기] 박제상 열전에는 제상의 이름을 모말毛末이라고도 한다고 전하고 있다. 모말과 모마리질지는 같은 이름일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이 [일본서기]를 따르면 205년이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면 418년이다. 두 사건의 연대 차이는 무려 213년이다. 2갑자 120년으로는 어림도 없고 3갑자 180년으로 올려도 소용이 없다.
2갑자든 3갑자든 올려도 들어맞지 않으니 전 신공황후를 가공인물로 보는 쪽입니다.
님의 2갑자설도 학계 전체에서 인정받고 있는게 아니라 다른 가설들 중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전 학술인이 아니니 뭐라 장담할수 없지만 그래도 확실한건 학계에서 이 인물이 실존인물이냐 가공인물이냐 아직 분분한건 확실한거 같습니다.
히미코와 신공은 다른 사람입니다.
히미코는 여왕이 아니라 실제는 일본의 30여 소국들이 한국과 중국의 나라들과 교역을 하기 위해 연합체를 구성하는데, 그 중심에 있던 무당이었어요... 신공 이전의 야마대국 때 살던 사람이었죠.
당시는 바닷길을 오가기가 쉽지 않은 때여서 무당이 큰 역할을 할 때였어요.
그리고 기년 문제도 틀리지 않는데 자꾸 틀리다고 하네요...
나중에 정리해서 올려드리도록 하죠...
서기 1세기에서 2세기의 인물인거 같은데 당시 일본은 하나의 국가도 아닌 부족사회의 현재 한국의 군보다도 작은 청동기시대 집합체였죠.그에 비해 삼한은 국가의 체계를 갖춘 철기시대였습니다. 그량 간단히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청동기로 무장한 수백명이 배타고 용케 넘어와서 철기로 무장한 기마 수천기에 보병 수만을 때려 눕히고 삼한을 정복한 다음 원하는것도 없이 미련없이 배타고 일본가서 기록으로 남긴다?
이건 마치 소총으로 무장한 멕시코 반군이 아파치와 m1에이브람스로 무장한 미국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는 개소리로밖에 안들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