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사 (李安社 생년미상- 1274 / 목조(穆祖)로 추존)
-몽골 항쟁 → 지방 관리와 주먹 다툼 → -사병과 백성 170호 이끌고 삼척으로 도주 →
배 15척 건조 해적과 전투 -주먹 다툼했던 지방 관리가 관찰사가 도지사로 부임 →
의주로 피신,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따름.
-몽골 산지 대왕이 2차례 이적을 요구해옴 → 이적 안 하면 공격하겠다 선언!
-몽골로 이적, 산지 대왕과 혼인 동맹 → 길림성 훈춘시로 이동-
옷치긴 왕가의 군주 타가차르 대왕과 가까운 산지 대왕의 힘으로
1255년 옷치긴 왕가의 천호장 겸 다루가치로 임명.
*** 이때부터 집단 성격이 농민 → 유목민 기병화 시작함.
이행리 (李行里 생몰미상, 익조(翼祖)로 추존)
-장남으로 집안 승계
-결혼 동맹 및 운영으로 큰 세력으로 부상 → 이를 경계한 주변 여진 천호장이 비밀리에 연합
-소수의 가신단을 이끌고 이웃 마을 방문 → 평소 친한 노인이 습격 직전 몰래 알려줌.
-여진 기병 300명이 따라잡았으나 도주 성공 → 본거지는 천호장 연합군에게 초토화
-의주로 피신, 아버지가 선정을 베풀던 곳이라 지지하는 사람 많아짐 → 다시 세력 커짐.
-원나라 일본 원정에 참가 → 고려 충렬왕과 접촉, 귀향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양다리를 걸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