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 성종은 고려를 여진(발해유민)을 제압하기 위한 이이제이로서 활용하기 위해 986 여진(정안국 추정)정벌 이후에도 여전히 활동하는 장춘, 요원, 개원 일대의 여진족 출몰지인 압록강 동쪽(혼하 상류)을 고려에 할양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세력이 다투고 싸우며 세력이 약화되길 바랐으나 고려는 거란의 기대와는 달리 아주 손쉽게 여진족을 몰아내고 훨씬 더 큰 영역을 개척합니다
거란의 2차와 3차 침략, 그리고 거란 멸망 이전까지 고려를 계속 도발한 이유는 고려가 개척하여 차지한 이 지역을 빼앗아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려가 개척한 소위 강동 6주 지역은 말그대로 북만주와 동만주로 통하는 길목에 해당하는 곳으로 고려의 허락이 없으면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그런 지역입니다
실제 거란은 동북여진으로 가기 위해 고려에 길을 터줄 것을 요청하지만 고려는 허락하지 않았다 하는 기록이 고려사에 나타납니다
11세기 들어서 여진족은 거의 대부분 고려에 직간접적으로 복속돼 고려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특히 문종 대에는 흑룡강과 연해주 일대의 여진족들이 모두 고려에 행정구역으로 편입할 것을 요청하여 고려의 땅으로 삼는데 고려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광대하였습니다
문종 당시의 이들 지역에 대한 학계의 진지하고 성실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