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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29 14:34
[기타] 고구려는 천만명을 아우러는 동북아 최강대국.
 글쓴이 : 두부국
조회 : 2,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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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요석 16-06-29 17:34
   
사람들이 말하는 인구 350만은 너무 적다고 생각하지만 1000만은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촐라롱콘 16-06-30 00:30
   
고구려 시기보다 근 1,000년이나 후대 시기인 후금~청(산해관 입관이전)의 인구가
300만에서~최대 400만명이었습니다.

면적으로는 고구려보다 훨씬 넓은 현 동북3성과 내몽골 상당부분, 현 러시아령인
연해주와 흑룡강일대까지 싸그리 포함하여 그 정도 인구였고.....
그나마 요동지역의 중국계 한족 + 조선-명나라 원정에서 포로로 잡은
조선인들과 한족들이 입관 이전의 청나라 전체 인구의 근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밖에 후금~청의 주력인 여진족 인구가(건주-해서-야인여진) 통틀어서 100만명 남짓이었고
만주 서부와 내몽골일대의 몽골계통과 흑룡강 주변의 퉁구스계 소수민족은 여진 인구에 훨씬 미치지
못했습니다.

외몽골일대(현 몽골인민공화국)는 당시 후금~청의 판도에 아직 속하지 않을 때였고.....
참고로 20세기 초반 한반도 7배 면적의 몽골이 독립할 당시의 인구는 70만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고구려와 후금~청의 영역이 겹치지 않는 지역이 한반도 북부지역인데  변수가 가장 큰 부분이긴 하지만...

산업화 시기 이전의 인구증가율이 극히 미미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근 1,000년의 시차라면
동일지역에서 적어도 두 배 가량의 인구증가율은 기록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15~16세기 무렵부터는 남만주일대에서(건주여진의 본거지) 농경도 본격화되었기
때문에 부양가능한 인구 또한 늘어났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세기 초반의 후금~청나라 초기의 인구가 그 정도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후금~청 시기보다 거의 1,000년 전의 시기에....
한반도 북부를 일단 제외한다면 만주와 연해주지역은 전역이 아닌 일부를 영유한
한반도 북부제외한 고구려 인구를 아무리 많게 잡아도 최대 150만~200만을 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한반도 북부 인구를 더해 고구려 전체 인구를 350만 정도로 보는 것이 그나마
근사치에 가장 가깝게 추정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카노 16-06-30 15:25
   
고구려 시기와 청 시기의 기후변화를 간과하셨군요.
발해 멸망 이후부터는 지구적 빙하기로 만주지역의 기온이 너무 내려가서 그지역은 솔직히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했지만 이전은 아니었지요.
부여, 발해가 만주 남쪽도 아니고 중부지역에서 크게 융성했던 이유가 그때는 기후가 훨씬 온화했기 때문입니다.
촐라롱콘 16-06-30 16:32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의하면 부여의 호수가 8만호라고 하니 인구수로는 대략 40만~50만 명을
크게 넘기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부여는 삼국지 위지동이전이 편찬되던 시기가 부여최대판도의 마지노선에
해당하던 시기이고, 이후 시기부터는 선비족과 고구려 등에 의해 침탈,축소된 역사이기 때문에.....

40만~50만 명 내외의 인구가 부여의 최대인구 근사치에 가깝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발해는 전체영역면에서는 고구려의 판도를 능가했다고 여겨지지만,
인구가 비교적 희박했던 현재의 동북만주와 연해주 방면으로의 판도와 영향력이 확장되었고....

정작 만주일대에서는 비교적 인구가 많은 지역인 요동에 대한 지배력이 불완전했었고....
한반도방면에서는 현재의 황해도전역을 상실했고, 통일신라와의 접경지대인 평안도남부와
함경도남부일대는 신라와의 완충지대였기 때문에 인구유지를 위한 개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발해의 인구를 고구려시기보다 오히려 적은 200만에서 ~ 최대 300만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카노 16-06-30 19:58
   
사서에 보면 부여가 수만의 대군을 동원하던 나라였는데 총인구 고작 40~50만에서 그만한 대군을 동원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발해는 상경성터를 분석한 결과 수도인 상경성에서만 80만~120만의 인구가 거주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촐라롱콘 16-06-30 20:29
   
상경용천부 인구가 80만~120만....?????

현재까지 발굴된 상경용천부 외성둘레가 16km라고 알고 있는데....
(물론 고대~근세를 통틀어 만주 지역 역대 왕조들의 왕성들 규모와 비교해 최상위급이기는
하지만....)

참고로 조선조 한양의 외성 둘레가 17~18km이고 조선초~중기시기(17세기까지)
일반적인 한양인구가 성내 10만내외, 성 인근의 성저십리 인구 수 만명을 포함하여
성내외 인구를 모두 통틀어 최대치로 계산해도 최대 20만을 넘은 적이 없는데......

발해 상경용천부 인구 100만이라는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건가요...???
통일신라 경주인구 100만명 설보다도 더욱 황당하군요~~~
그나마 신라 경주는 한반도에서는 비교적 인구밀집지역에 위치하기라도 했지만......

숫자에서 0을 하나 뺀다면 어느정도 수긍이라도 가지만.....
               
카노 16-06-30 20:37
   
동북아 역사 재단에서 출판한 "발해 5경과 영역 변천"이란 책의 62페이지에 보면 상경성의 내외성의 크기와 지역 등으로 산출한 결과 80만에서 120만 명 정도의 인구가 그곳에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역사 축소 왜곡에 바쁜 식민빠들이 동북공정을 주도하는 중국측 자료에 근거해서 만든 책이니 과장같은 것은 조금도 없겠지요.

하여간 수도에만 그정도 인구가 살았는데 님이 추산하신 인구는 너무 적은 것같네요.
발해 5경 인구만 해도 200만은 훨씬 넘었을 듯
                    
촐라롱콘 16-07-01 09:24
   
카노님이 언급하신 중국측 자료나 동북아 역사재단의 상경성 인구산출은
오류가 확실한 것 같은데....

또 이런 부분은 아무런 비판도 없이 그대로 수용하시는군요.....^^

둘레가 16km라면 성내의 남에서 북까지, 동에서 서까지의
지름이 대략 평균 4~5km정도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그 공간안에 100만 인구를 수용할 수 있다는 황당한 계산을 믿으시는지요!

오늘날과 같이 아파트 같은 고층건물들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게다가 주작대로를 모방한 넓은 도로와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궁궐,관공서까지
감안한다면 상경성 인구가 많아야 10만을 크게 웃돌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발해보다 훨씬 후대시기인 조선 한양의 도성외곽둘레가 17~18km로
발해 상경성을 오히려 약간 웃도는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한양성내에 10만 정도 인구를 수용하는데도 비교적 조밀한 인구밀도였는데....
                         
카노 16-07-01 15:19
   
애당초 비판없이 사료 한쪼가리로 부여 인구를 추산하신 것이 촐라롱콘님이시고요, 상경성은 규모가 당나라 수도 장안성에 버금가고 장안성 인구가 100만은 넘을테니 상경성 인구에 대해서는 내외성 크기, 그지역 자연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내린 저 결론이 저로서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꾸 조선 한양 인구를 거론하시는데 그때에 비해서 가장 근시대인 고려 개경인구도 최소 50만으로 추산된다고 하는데 조선 한양 인구가 비상식적으로 적었던 것이죠.

그리고 저도 당연히 고구려에 비해서 발해의 인구는 상당히 적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촐라롱콘 16-07-01 17:44
   
송나라 서긍이 12세기 초반 고려에 사신으로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한
[고려도경]에 의하면 고려의 인구는 [남녀 210만 구]라 표현했습니다.

인구에 누락되기 쉬운 노비나 천민, 유랑민들을 감안한다면 대략 300만명
정도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물론 고려는 조선에 비해 중앙집권화가 완벽한 왕조는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에 비해서는 통계에서 누락된 인구가 상당할 수 있지만,
아무리 최대치로 잡는다 하더라도 실제인구가 400만~500만명을 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12세기 초기에 해당하는 시기는 고려가 이전 시기의 거란과 뒤이은
여진과의 오랜 전란을 종식하고 비교적 평화시기에 접어드는 시기이기 때문
에..... 고려시대 전체를 감안하자면 인구가 최대치에 가까운 시기라 할 수 있습니
다.

13세기부터는 거란유민, 뒤이은 몽골의 오랜 시기에 걸친 침략을 비롯하여
14세기에는 2차에 걸친 홍건적의 대규모 침략과 해안지방이 주무대인 왜구의
지속적인 침입으로 인해.....

내부적으로도 12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무신정권에 의한 내부모순과 몽골(원)에
복속된 이후부터는 친원파와 권문세족에 의한 국정농단과 수탈 등....

국내외의 여러 요인으로 인해.... 설령 인구감소는 면했다 하더라도
고려가 멸망하기까지 인구가 늘어나지는 못한 시기라 여겨집니다.

결국 400만~500만 정도의 인구가 고려인구의 최대치라 할만한 것 같은데~

오직 고려사절요에만 언급된 개경의 내외 호수 10만호를 근거로
[개경인구 50만]을 도출해내는 것은 제 개인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상당한 과장이자 무리라 여겨집니다.

고려시기보다도 중앙집권화가 비교적 공고했던 조선의 수도집중현상이 더욱
심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임에도 조선말기 이전까지는 수도인구가
10~20만 수준임을 감안하면......

특히 고려는 조선과는 달리 3경체제를 유지한 왕조였기 때문에 인구분산이
더 이루어지기 쉬운 구조인데....
개경인구 50만이라는 것은 선듯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아날로그 16-06-30 20:00
   
어쨋든....저 넓은 지역을 관리하기엔...관리하는 사람들이 턱없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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