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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07 03:40
[한국사] 4∼7세기 中 끌려간 고구려 유민들 요서에서 집단 취락 생활 (고영숙 묘지명)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3,367  

고영숙.png


342년 고구려의 고국원왕은 치욕적인 패배를 경험한다. 당시 중국 선비족이 세운 전연(前燕)의 침략에 수도 국내성이 함락되고 아버지 미천왕의 시신마저 뺏겨버린 것. 전연은 퇴각하는 길에 5만여 명의 고구려인을 포로로 잡아갔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 이들의 삶을 알려주는 사료가 거의 남지 않아 역사학계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최근 이들 고구려 유민이 중국 내에서 집단 취락을 구성하며 고구려계라는 정체성을 유지해 온 사실을 밝혀낸 연구가 나왔다. 이성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이 계간지 ‘중국고중세사 연구’ 46호에 실은 ‘고구려 유민의 요서 지역 세거와 존재양상’ 논문이다. 

논문은 691년 사망한 고구려 유민 고영숙의 묘지명(墓誌銘·죽은 사람의 공로를 돌에 새겨 무덤에 묻은 글·사진)을 분석했다. 묘지는 1975년 중국 랴오닝성 차오양시 근처에서 발견됐다. 그동안 중국 학계에선 거란계가 많이 거주했던 이 지역의 특성상 고영숙 역시 거란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이 연구위원의 분석 결과 고영숙이 고구려 유민임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단서들이 묘지에서 발견됐다. 그의 묘지에는 “고운(高雲)이 일어나 연(燕)을 멸하였다”며 가문의 기원을 ‘고운’이라는 인물로 특정했다. 고운은 고구려 귀족 출신으로 후연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다. 

이뿐만 아니라 묘지에는 고운의 후예이자 고영숙의 증조부 고회(高會)와 할아버지 고농(高農)이 ‘본번대수령(本蕃大首領)’을 지냈다고 밝히고 있다. 본번대수령은 고구려인으로 이루어진 집단의 장이란 뜻이다. 또 아버지 고로(高路)는 사주(師州) 지역을 통치하는 자사(刺史)였다고 나와 있다. 사주는 현재 중국 차오양시 일대로 중국과 거란, 고구려의 경계에 있던 지역이다. 이 연구위원은 “고구려계 수령이 존재한 사실을 통해 당시 요서지역에서 고구려 유민들이 정체성을 유지한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살아왔던 시기다. 4세기부터 7세기까지 요서지역에서 거주한 이들은 5호16국 시대부터 수나라와 당나라까지 중국 정치권력이 격변하던 시기를 살았다. 중국 한족 정권이 교체되는 동안에도 고영숙 가문은 수령 자리를 세습하며 고구려계 문화를 유지해온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중국에서 고구려로 유입된 이들에 대한 연구는 상당 부분 진행됐지만 거꾸로 고구려 유민들이 중국에서 집단 취락을 이룬 사실을 밝혀주는 연구는 거의 없었다”며 “고구려 유민들의 삶을 조명하는 연구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1225/87887847/1#csidxfd0ab6b211906d980211ef6bf566fd0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1225/87887847/1#csidx51941f20b340c79b859f7bd367e7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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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8-01-07 04:30
   
아주 좋은 자료입니다.
 사주는 현재 중국 차오양시 일대로 중국과 거란, 고구려의 경계에 있던 지역이다.
=> 일제 사학자가 주장한 조양 = 유성/화룡성 이란 잘못된 역사통설을 뒤집는 좋은 연구입니다.
일제 사학자가 만든 엉터리 통설이 이제 뿌리 뽑힐듯 하네요.

묘지는 1975년 중국 랴오닝성 차오양시 근처에서 발견됐다.
 691년 사망한 고구려 유민 고영숙의 묘지명 - 당나라 측천무후의 시기 天授2년
여름비 18-01-07 04:33
   
잘 봤습니다.
도배시러 18-01-07 04:36
   
신당서 지리지7 기미주 하북도***
사주(師州). 정관(貞觀) 3년(629)에 거란(契丹)과 실위(室韋)의 부락에 설치되었는데
영주(營州) 에서 폐기된 양사진(陽師鎮)으로 교치하였고,
후에 량향(良鄉)의 동려성(東閭城)으로 교치하였다. 현은 1개로 양사현(陽師)이다.
師州. 貞觀三年, 以契丹室韋部落置, 僑治營州之廢陽師鎮, 後僑治良鄉之東閭城. 縣一陽師.
**************************
당나라 영주, 유성군의 치소가 차오양이라는 일제 사학자의 개소리를 막아버리는
묘지까지 발견 되었군요. 문헌적으로 앞뒤가 안맞는 개소리는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들통납니다.
     
감방친구 18-01-07 20:46
   
영앙왕이 공격한 수나라 요서는 지금의 조양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스파게티 18-01-08 03:40
   
사주는  지금의 어디인가요?
     
도배시러 18-01-08 05:33
   
차오양시, 조양 朝阳
신수무량 18-01-08 18:06
   
저기서 말하고자 하는 주내용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내용 중에
"342년 고구려의 고국원왕은 치욕적인 패배를 경험한다. 당시 중국 선비족이 세운 전연(前燕)의 침략에 수도 국내성이 함락되고 아버지 미천왕의 시신마저 뺏겨버린 것. 전연은 퇴각하는 길에 5만여 명의 고구려인을 포로로 잡아갔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 이들의 삶을 알려주는 사료가 거의 남지 않아 역사학계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
그리고, 고구려 수도 관련 위키피디아:
'동천왕(東川王) 20년(246년)에 위(魏)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毋丘儉)이 군대를 이끌고 침공해 와, 환도성을 함락시켰다.[3] 동천왕 21년(247년)에 왕이 환도성으로 전란을 겪고 다시 도읍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하여, 평양성(平壤城, 현재의 평양이 아니라 通溝 부근의 어느 곳)을 쌓고 백성과 종묘와 사직을 그곳으로 옮기며, 환도성을 떠났다.[4]'
고국원왕 12년(342년)에 왕이 환도성(丸都城)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5][6] 그해 겨울에, 전연(前燕)의 모용황(慕容皝)이 병력 4만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략, 고국원왕의 어머니 주씨(周氏)와 왕비를 사로잡고, 고국원왕의 아버지 미천왕의 무덤을 파서 그 시신을 싣고, 창고 안에 있던 여러 대의 보물을 약탈하고, 남녀 5만여 명을 사로잡고 궁실을 불태우고, 환도성을 헐어버리고 돌아갔다.[7]
-----

모순이 있지 않나요?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진서(晉書)서는 당 태종이 고구려를 깎아내리기 위하여 수많은 사실이 아닌 기사(記事)들을 위조한 것이 많은 책이다. 그러므로 위의 기사도 의심스러운 것이 없지 않다.
예를 들면, 모용황이 미천왕의 묘를 파내어 갔다고 하였으나, 미천왕 때에(까지) 고구려의 수도는 평양이었고, 미천왕이 죽은 후 12년 만에 고국원왕이 환도로 도읍을 옮겼다. 고구려의 역대 왕릉은 모두 다 당시의 왕도 부근에 있었으므로, 미천왕이(도) 죽은 후에 반드시 평양에 묻혔을 것이고 환도에 묻히지 않았을 것이다. 환도로 쳐들어온 모용황이 어찌 평양에 묻힌 미천왕릉을 파내어 갈 수 있었겠는가'
 
저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주장(논리)에 더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미천왕때의 수도와 모용황이 함락시켰다는 (고국원왕이 거처를 옮겼던) 환도성이 분명 같지 않은데 말이죠.
짱개(한족) 뿐만 아니라 그 문화에  동화된 이민족들에 의해 씌여진 역사서를 그대로 믿기엔 정황상 이해하기 힘들거나 앞뒤가 맞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대표적인 또 다른 예가 백제 무왕(황제)가 죽자(붕어) 당나라 이세민이 소복입고 곡했다는 사건 등...
(짱개들이 기록한 역사기록은 여러 사서들을 비교 교차해서 검증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도배시러 18-01-08 19:04
   
334 四年 秋八月 增築平壤城 고국원왕 평양성 증축

342 十二年 春二月 修葺丸都城 又築國內城 秋八月 移居丸都城 고국원왕 환도성 보수

342 毁丸都城而還 모용황- 환도성 파괴

사건의 순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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