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왜냐고 물어보실텐데요?
제가 실제로 일본인 교수하고 대화해봤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노골적으로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한국,일본 사학계에서는 왜 또는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얘기는 안합니다.
일본이 우위에 있었다. 일본이 한 때 더 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이런식으로 말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말장난으로 받아드릴지도 모릅니다. 노골적으로 지배했다는 말만 명시적으로 안했지, 사실 다 똑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노골적으로 그렇게 얘기는 못하는 까닭은 우선 고고학적으로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큐슈에 오히려 한반도계 유물들이 쏟아져나옵니다.
다음으로 역사서의 전체적인 흐름이라는 게 있습니다.
일본에서 광개토대왕비와 일본서기를 들어서 신공황후 때 한반도 남부를 침략했다고 얘기를 하더라도 한계가 있습니다. 역사서에 나오는 기록들에는 그 때에 왜가 침략을 했다거나 하는 내용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서의 전체적인 기록 내용의 큰 흐름에서 왜가 침략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왜가 고대에 한반도와 비교해서 전체적으로 국력이 우위에 있었다고 볼만한 역사서 기록들의 전체적인 큰 흐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 서점에 가보시면 임나일본부설, 왜가 고대에 한반도 남부를 점령했었다.하는 내용들의 서적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전문적인 역사학자는 아닙니다.
역사학자는 이들처럼 노골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내용상에서 맥을 같이하는 면이 분명 존재합니다.
임나의 이칭인 三間名가 쓰인 실제 사례를 큐슈 사가현의 三間名山圓通寺에서 제가 찾은 적이 있습니다.
중세시대에 이름이 붙여졌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므로, 그 당시의 임나라는 명칭이나 그런 것들이 남아서 전해내려왔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최규성, 김인배, 김문배 등의 설을 따르면 임나의 지명들이 큐슈에 있었다고 얘기들을 합니다.
임나일본부의 연구의 중심이 한반도 남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왔기 때문에 초점이 빗나간 것입니다.
임나일본부의 중심이 큐슈에 있었는데, 그동안의 연구는 전부 한반도 남부에 있었느니, 없었느니 라는 얘기로 왈가왈부해왔으니 결론이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임나일본부의 연구는 큐슈에 초점이 맞추어져서 이루어져야 결론이 나지 그렇지않으면 결론은 나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