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khan.co.kr/kh_travel/khan_art_view.html?artid=200808221717565&code=900306&med=khan
위의 기사는 현재 강단이 신식민주의 사관으로 흘러가는 흐름을 잘 보여주는 기사인데요. 한번 전체적으로 훑어 보심도 나쁘지는 않을 듯 합니다. 제가 저 기사에서 주목하고 있는 내용은 " 강단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불신하는 이유는 온조왕때에 마한이 멸망했다는 기록 때문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마한은 3세기에 멸망했는데 삼국사기는 백제 온조왕때인 1세기에 멸망한 것으로 되어 있어서..."
이 부분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문헌의 고증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렇습니다
1.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삼국사기 기록이 다르다면 실증주의 관점에서 보면 그 다음단계로 분석해야 하는 것은 두개의 사료 중에서 어느 것이 틀렸는지 검증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연히 중국 정사가 맞다고 보고 왜 삼국사기가 틀렸는지 " 소설을 창작 "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실증주의 과학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네 그렇습니다. 이 경우는 " 사대주의" 가 적절한 단어일 것입니다.
2. 결정적으로 김부식은 마한이 백제 온조왕 때에 멸망했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지요. 삼국사기 고구려 태조왕 기록을 봅니다
70년(서기 122), 임금이 마한, 예맥과 함께 요동을 침입하였다. 부여왕이 병사를 보내 요동을 구하고, 우리를 격파하였다.[마한은 백제 온조왕 27년에 멸망하였는데, 지금 고구려왕과 함께 군사 행동을 한 것은 아마도 멸망한 후 다시 일어난 것인가?]
七十年 王與馬韓穢貊侵遼東 扶餘王遣兵救破之[馬韓以百濟溫祚王二十七年 滅 今與麗王行兵者 盖滅而復興者歟]
네 그렇습니다 김부식은 백제 온조왕 마한 멸망 기록과 122년에 고구려와 요동 정벌을 한 마한 세력을 같이 기록하고 마한은 아마도 온조왕 멸망 이후에 부활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김부식의 마한에 대한 최종 의견입니다. 만일에 위의 인터뷰를 김부식이 알았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지요.
여기에서 저는 2가지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둘다 비참한 경우입니다만
1. 강단 사학자들은 너무 바쁘셔서 삼국사기 조차 읽으실 시간도 없다. 그래서 위의 태조왕 마한 기록을 몰라서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운운 하는 것이다
2. 강단은 어떤 특정 정치적 목적에 맞는 결과를 미리 정해두고 그것에 자료를 끼워맞춥니다. 국민들은 당연히 삼국사기를 읽지 않으므로 위의 고구려 태조왕 기록은 그냥 없는 척 해도 상관이 없다. 라는 그런 흐름...
어느쪽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강단의 수법은 표면적으로 실증 주의 사학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사대주의 본질은 사기에 가까운 수법입니다. 이것이 결국 어디로 귀착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일본의 신식민주의 입니다. 임나 일본부로 고대 일본의 한반도 남부 지배를 주장하기는 어렵지만 모한론으로 우회적으로 고대 일본의 한반도 남부 지배를 지지했다는 주장에 호응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위의 경향 신문 기사 다시한번 정독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