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유민들은 스스로 케레이족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케레이가 오늘날 겨레의 어원이고 통일신라 이후 세워진 고려또한 케레이(겨레)와 같은 말입니다.
그 발해가 924년 거란의 침입을 받고 925년에 멸망합니다
그후 발해유민들은 거란으로부터 독립운동을 하면서 여러 왕국들을 만드는데..
938년 정안국 멸망, 986년 후발해멸망, 1030년 흥요국이 멸망하면서 왕조가 끊기게 됩니다
이후로 꾸준히 독립운동을 하다 1090년 독립을 포기하고 몽골 바이칼호주변 초원으로 집단이주 합니다.
당시 몽골의 민족분포중 케레이부족(발해유민을 포함)30~40%, 나이만 부족이30~40% 이외 타타르 말갈등으로 구성되었다 합니다.
이후 1200년대 케레이족이 몽골 역사에 전면으로 나서는 계기가 있었는데 테무진(징기스칸)은 친척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쫓겨와 케레이부족이 사는곳에 도착 당시 지배자인 웅칸(웅한<=>환웅 : 웅은 당시 바뜨르라 부름(바뜨르=배달))이 테무진을 보고 장래에 크게될 아이라 여겨 그자리에서 사위로 삼고 몽골부족들에게 사위 건들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징기스칸을 보호하고 테무진(징기스칸)은 케레이족을 기반으로 군사력을 키워 몽골제국의 기초를 다짐니다..
후에 웅칸이 죽고 테무진과 웅칸의 아들들과는 사이가 안좋아 전쟁을 하게되고 테무진이 승리하게 됩니다..
케레이들 하루아침에 공신부족에서 역적부족이 됨과 동시에 몽골초원에서 살기 껄끄러워진 케레이들 징기스칸의 서방정복때 대거 카자흐지방으로 원정정벌(호라즘정복)을 나섭니다
그때당시 원정부대 대부분이 케레이족과 나이만족으로 구성됐고 이들이 현재 카자흐스탄 국민들의 대부분을 형성 합니다
카자흐스탄 국민들도 한국인들 처럼 족보를 따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성씨가 뭐냐 본관이 어디냐 하지만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너 조상은 케레이냐 나이만이냐 따진다하네요.
발해이후의 민족의 이동을 보면 카자흐스탄은 한국의 잃어버린 반쪽이라 해야 겠지요.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아사달). 생김새도 한국인과 거의같고 역사적으로도 족보를 공유하니 근본없는 터키보다 카자흐스탄을 형제국이라 불러야 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