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12-2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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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발해사 연구에서 말갈 문제는 중요한 논쟁이 되어 왔다. 그런데 말갈인 스스로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많지 않다. 말갈의 성격을 살필 때 말갈계로 알려진 사람들의 정체성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서 주목되는 인물은 李多祚이다. 이다조의 열전에는 “遼陽郡王李多祚, 三韓貴種, 百戰餘雄.”(舊唐書 卷一百九 列傳 第五十九)이라고 하여 삼한의 귀종임을 밝히고 있다. 즉 말갈이 아닌 삼한 즉 고구려와의 관련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학계에서는 이다조와 고구려와의 직접적인 관련성에 대해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다조가 말갈인이고 唐將으로 주로 활동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당서』에 삼한귀종으로 표현된 것은 부회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다조의 묘지명을 보면 그의 출자를 다시 볼 여지가 있다. 이다조의 묘지명은 1991년에 洛陽 龍門山 남록에서 도굴된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현재 龍門石窟研究所에 소장되어 있다. 蓋石은 가로 72㎝, 세로 71㎝, 두께 10㎝이고, 篆書로 “大唐故遼陽郡王李公墓志銘”이 쓰여져 있다. 志石은 가로 세로 모두 75㎝이고, 두께는 5.5㎝이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張乃翥, 「讀龍門山新出土的唐李多祚墓志」, 『洛陽大學學報』 1994-3, 1994)
大唐故鎮軍大將軍行右羽林軍大將軍上柱國遼陽郡王食恒州實封八百五十戶封王墓志銘 王諱多柞, 蓋州人也. 忠誠久著, 功績遠稱, 列代班師, 封爵所賴. 曾祖訥, 烏蒙州都督, 祖利, 烏蒙州都督. 父辯, 烏蒙州都督, 贈右武衛將軍. 王以神龍三年七月五日, 薨于長安, 春秋五十有四. 嗚呼哀哉! 但享年不永, 海內同暖. 即以先天二年歲次癸醜九月壬戌朔二十四日乙酉, 遷葬於洛州河南縣伊油鄉之平原, 禮也. 嗣妊承風, 女尼意滿等, 崩天靡訴, 畢地無追, 恐陵穀推, 遷, 紀德音於泉路. 嗚呼哀哉, 何其閣極.
이다조 묘지명에는 그가 고구려 개모성인 蓋州 출신으로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이는 이다조가 말갈계 고구려인이었음을 말해 준다. 증조와 조부 및 부친은 烏蒙州都督이었는데, 오몽주는 고구려에 지배를 받는 말갈 부락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烏蒙이 部의 명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죽은 나이를 역산하면 654년생으로 고구려 멸망기를 전후하여 당에 투항한 것으로 보인다.
(권은주, 「북방계 말갈과 한반도 말갈의 활동을 통해 본 말갈의 성격」, 『‘다원적 관점에서 본 말갈제족의 활동과 의미』 공동연구(연구책임자 구난희)결과 발표회집, 2017.11.22., 26~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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