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잡담게시판에 게시한 글로서, 한자와 한문 등이 나오는 등 다소 전문적 접근을 요하는 글이므로 이곳 동아게시판에 옮겨와 붙입니다.
추석(秋夕)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평소에 의구심과 호기심을 가져오던 차에 이를 한번 파헤쳐보기로 마음 먹고서 얻은 바가 있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추석(秋夕)이라는 명칭은 동북아에서 유독 우리만 쓰는 명칭입니다. 중국에서도 쓰지 않고, 또 없는 말입니다. 하여서 저는 이 말이 우리말 가위/가배를 뜻하는 어떤 말을 이두식으로 적은 것이 아닐까 하는 추정을 개인적으로 지속 보유해 왔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펴낸 《한국세시풍속사전》을 보면, 추석의 어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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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秋夕)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 나아가서는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니 달이 유난히 밝은 좋은 명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추석’이란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용어라 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추석 무렵을 중추(中秋) 또는 월석(月夕)이라 하는데, 『예기(禮記)』에 나오는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추석날 밤에는 달빛이 가장 좋다고 하여 월석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중엽 이후 한자가 성행하게 된 뒤 중국인이 사용하던 중추니 월석이니 하는 말을 합해서 축약하여 추석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중추절이라 하는 것은 가을을 초추(初秋), 중추(中秋), 종추(終秋)로 나누었을 때 추석이 음력 8월 중추에 해당하므로 붙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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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고대 중국인들이 추석 무렵을 가리켜 부르던 말인 중추(中秋) 또는 월석(月夕)을 받아들여서 그것을 합쳐서 만들어진 명칭이 우리의 '추석(秋夕)'이라는 설명입니다.
저는 이 풀이가 억지스럽다 생각하였습니다. 게다가 "『예기(禮記)』에 나오는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였는데 정작 『예기(禮記)』에는 朝春日, 秋夕月이 안 나옵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 나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 자체가 이상한 말입니다. "朝春日, 夕秋月"이나 "春朝日, 秋夕月" 하면 말이 되는데 "朝春日, 秋夕月"은 말이 안 되는 문장입니다. 중국 인터넷에서 찾아봐도 "朝春日, 秋夕月"은 우리의 한국세시풍속사전을 인용하여 한국의 '추석'을 설명하는 글만 뜹니다. 이게 실제 예기에 있는 말이면 예기의 해당 원문도 떠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즉 애초부터 《한국세시풍속사전》은 예기의 "春朝日, 秋夕月"을 "朝春日, 秋夕月"로 잘못 인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秋夕이라는 말이 있었으니 고대 중국에도 秋夕이라는 명절이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처음부터 잘못된 의문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秋夕으로 끊어 하나의 단어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春朝日, 秋夕月"은 "봄의 아침해, 가을의 저녁달(밤달)" 이런 뜻으로 해석이 되는 것이니까요.
즉 秋夕月은 되도 秋夕은 안 되는, 秋夕이라는 말은 애초 성립되지 않는 말입니다.
秋夕이든 秋夕月이든 대체 이 말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일까 ㅡ 흥미는 일지만 참 골치 아픈 일입니다. 골치가 아파서 탐구하지 않으면 평생 죽을 때까지 진실을 알지 못 할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秋夕月은 秋夕朝月에서 온 말이고, 秋夕朝月은 秋分夕朝月에서 온 말입니다.
24절기 가운데에 춘분(春分, 양력 3월 21일 경)과 추분(秋分, 양력 9월 20일 경)은 밤과 낮이 균등하고 음양(陰陽)이 고른 때인데 이 날을 맞아서
고대 중국의 황제/왕은
춘분 때는 아침에 동문 밖에서 해를 보고,
추분 때는 밤에 서문 밖에서 달을 보고 제사를 지냈는데
여기에서 비롯한 말이
곧 秋夕月, 또는 夕月인 것입니다.
즉 우리 명절 추석(秋夕)과 아무 상관 없는 것으로, 한국세시풍속사전의 설명은 개판인 것이죠.
다음은 필자 본인이 직접 찾아 국역하여 근거한, 이와 관련된 중국 고대 문헌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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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춘추번로(春秋繁露)》 서한(西漢) 동중서(董仲舒) 著
중춘(음력 2월)의 달에 이르면, 양기는 정동에 있고, 음기는 정서에 있으니 이를 일컬어 춘분이라 한다. 춘분이라는 것은 음양이 서로 절반으로 동등해지는 것으로, 이런 까닭에 밤과 낮, 춥고 더움이 균평(均平)하다.
至於仲春之月,陽在正東,陰在正西,謂之春分。春分者,陰陽相半也,故晝夜均而寒暑平。《春秋繁露》〈陰陽出入上下〉
중추(음력 8월)의 달에 이르면, 양기는 정동에 있고, 음기는 정서에 있으니 이를 일컬어 추분이라 한다. 추분이라는 것은 음양이 서로 절반으로 동등해지는 것으로, 이런 까닭에 밤과 낮, 춥고 더움이 균평(均平)하다.
至於中秋之月,陽在正西,陰在正東,謂之秋分。秋分者,陰陽相半也,故晝夜均,而寒暑平。《春秋繁露》〈陰陽出入上下〉
2) 《독단(獨斷)》 동한(東漢) 채옹(蔡邕) 著
천자(天子)는 하늘(天)을 아비로 삼고, 땅(地)을 어미로 삼고, 해(日)를 언니로 삼고, 달(月)을 누이로 삼으니
늘 춘분(春分에는 동문(東門) 밖에서 해를 문안하여(朝日) 공경하는 바를 보여서 인민(백성)을 깨으쳐 임금을 섬기게 함이라.
추석(秋夕)에는 서문(西門) 밖에서 달을 문안하니( 朝月) 음양(陰陽)을 구별하는 의례(義)이도다.
天子父事天,母事地,兄事日,姊事月,常以春分朝日于東門之外,示有所尊,訓人民事君之道也。秋夕朝月于西門之外,別陰陽之義也。《獨斷》 〈卷上〉
# 春分朝日은 춘분일 아침에 하는 의식이고, 秋夕朝月은 추분일 밤에 하는 의식이다. 즉 春分朝日은 春分朝朝日이며, 秋夕朝月은 秋分夕朝月이다
3) 《국어(國語)》 3세기 위소(韋昭)의 주석본
옛날에 성왕(聖王)이 천하를 차지하면 더욱 하늘의 해와 달을 존숭하고 섬겼으니 조일석월(朝日夕月)하여 (그 본보기로써) 백성이 임금을 섬기는 것을 가르쳤다.
古者先王既有天下又崇立上帝明神而敬事之於是乎有朝日夕月以教民事君 《國語》〈周語上第一〉
동문 밖에서 해를 배알하면 밤달은 서문 밖에 있으니, 천자가 추분(春分)에 조일(朝日)하고 추분(秋分)에 석월(夕月)함으로써 (주석문 자체가 이상하여 해석이 제대로 안 됨)
拜日於東門之外然則夕月在西門之外必矣禮天子以春分朝日以秋分夕月- 위소(韋昭, 204~273)의 주석(解)
# 주석이 이상하게 붙어 있는데 바이두백과를 보면, 춘분에 동문 밖에서 해를 배알하고, 추분에 서문 밖에서 해를 배알하는 것이라고 풀이 돼 있는데 이는 모두 잘못된 것이다. 춘분에는 동문 밖에서 아침에 해를 배알하고, 추분에는 서문 밖에서 밤에 달을 배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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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추석(秋夕)은 어떻게 된 말일까
제 견해는 가배(嘉俳)와 마찬가지로 우리말 '가배'를 한자로 달리적은 말이라는 것입니다.
가배(嘉俳)는 소리값만을 취한 것이고, 추석(秋夕)은 소리값뿐만 아니라 그 뜻까지도 취하여 이두로써 적은 것이다 하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秋는 가을의 뜻뿐만 아니라 소리값 'ㄱㆍ'를,
夕은 소리값'ㅂㆍ'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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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줄 요약
① '추석'이라는 명칭은 우리만 쓴다
② 한국세시풍속사전이 언급한 예기의 문장은 추석(음력 8월 15일)과 아무 상관 없고, 추분(양력 9월 20일)과 관련된 것이다
③ 추석은 가배를 이두식으로 적은 것으로, 중국과 아무 상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