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대무신왕 기록을
"살수 이남이 '다시' 한나라땅이 되었다"라고 잘못 기억한 예전의 실수처럼
또 잘못된 기억으로 실수를 했습니다
계속 혼하 상류 ~ 범하, 청하로 뭉뚱그려 여러 차례 기술해 오다 보니
범하, 청하를 혼하의 지류로, 기억이 왜곡돼 착각을 했습니다
귀덕주에는 범하가 있고
봉집현(혼하, 심양 동쪽, 무순 남쪽 90리. 본계 근처. 봉집보가 있던 곳. 철령위 최초 위치. 명과 고려의 경계)은 집주에 있었습니다
즉 거란 2~3차 압록강은 범하가 유력합니다
그러나 혼하 상류 역시 유력한 후보입니다
왜냐하면 귀덕주와 집주는 붙어있었거든요
거란군은 귀덕주 남쪽 기슭에서 압록강을 건넙니다
따라서 범하가 아닌 혼하 상류일 가능성이 우세합니다
『遼史』卷115 列傳45 二國外記 高麗 統和 29年 1月 1011년 1월 미상(음)
통화(統和) 29년(1011) 정월에 군대를 철수시키자 항복하였던 여러 성들이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귀주(貴州) 남쪽 산골짜기에 이르렀는데 여러 날 동안 큰 비가 내려서 날이 갠 다음에 겨우 건널 수 있었다. 말과 낙타가 모두 피로해지자 갑옷과 병장기도 많이 버리게 되었다. 압록강(鴨淥江)에 주둔하고 사로잡은 사람들을 여러 능묘(陵廟)에 나누어 배치하고, 나머지는 내척(內戚)·대신(大臣)에게 하사하였다.
(‘貴州’는 본래 ‘貴德州’로 기록되어 있다. ‘南嶺谷’은 『遼史』 卷15 本紀15 聖宗6 統和 29年 春正月 乙亥朔에는 ‘南峻嶺谷’으로 기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