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周武王卽位己卯 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京 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였다. 그래서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로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었으니, 나이가 190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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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의 논쟁은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이다.
현재 남아있는 한국의 사서에서 알수있는것은
민족의 시조 단군이 장단경으로 이동한것 뿐이다.
1. 기자조선에 단군조선이 멸망했다는 기록은 없다.
2. 기자조선이 단군조선을 정복하고 장단경까지 따라와서 정벌했다는 기록은 없다.
3. 단군조선이 1908년 이상 존속했다는 수준의 정보가 남아 있다.
즉, 단군조선의 강역과 기자조선의 강역을 일치시켜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각종 고대사 논란이 시작된다.
기자조선을 위만이 먹고서 위만조선이 되었고, 한나라의 공세에 멸망한다.
여기서 어떤이는 이것을 고조선의 멸망이라고 말하며 단군조선의 강역과 일치시키는 문제가 발생한다.
위만조선의 멸망이 어찌해서 고조선의 멸망인가 ?
삼국유사는 뜬금없이 부여의 시조를 거론한다.
일연 염감탱이야~ 부여는 한반도에서 너무 멀리 있는데... 왜 언급하는데 ?
그런데 고구려, 백제가 부여에서 갈라져 나왔덴다.
삼국유사의 일연이 부여, 백제, 고구려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한국의 민족사는 기자조선으로 귀결된다.
삼국지위지동이전으로 보면 같은 언어를 사용하던 테두리는
고구려-백제-부여-읍루-옥저-동예-마한 이 대동소이 하다.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언어는 어떤 언어였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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