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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1-04 19:02
[한국사] 신라가 백제의 국력을 넘어선 시기가 언제인가요?
 글쓴이 : 흑요석
조회 : 2,525  

한강 유역을 모두 차지하고 영토 확장을 폭발적으로 일으킨 6세기부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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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혀 17-01-04 19:53
   
제 생각에는 고구려한테 패한 이후로는 신라보다 약소국이었습니다.(근거 1. 백제가 공주지역에서 왕권이 안정치 못해 왕이 암살<문주왕은 확실-삼근왕도 비슷한 유형으로 추정>되고, 귀족들이 권력이 강화되었다.
근거2. 신라세력이 경상도의 상당수를 차지한 상황이었는데, 백제의 위세가 떨치던 지역은 점차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었음-이는 전라남도 남원과 그 남부지역에서 대가야계통의 유물들이 나오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음
근거3. 백제가 나름 세력을 구축한 무왕시기조차 신라와의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고, 오히려 패배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만, 동성왕시기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그 때는 백제가 신라보다 강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덜덜덜 17-01-04 21:34
   
백제가 당나라에게 망할때 까지 넘어선적 없습니다.

그리고 신라 지증왕때까지도 백제에게 기술력 대략 200~300년 뒤쳐졌고.

백강전투로 백제가 망하고 나서도 신라는 일본(왜)에게 수없이 당하고 살았던 약체국입니다.

미개한 나라 왜(일본)을 백제왕족 칸무일왕이 수도 교토 헤이안시대를 열었고

이때부터 한반도 생산량 보다 전반적인 농경섹터, 각종 생산량 계산해보면 일본이 앞서갔습니다.
     
꼬마러브 17-01-04 22:05
   
해괴망측한 소리를 ㅋ

일본서기 斉明紀

왜에서 당나라 황제에 입조할 때의 기록

天子  「蝦夷の国はいずれの方に有るか」
    遣唐使 「東北にある」
    天子  「蝦夷は何種あるか」
    遣唐使 「三種ある。遠方を都加留(つがる)、次を麁蝦夷(あらえみし)といい、近いものを熟蝦夷(にきえみし)という。今回伴ってきたのは熟蝦夷で、歳ごとに本朝に入貢してくる」
    天子  「蝦夷の国には五穀があるか」
    遣唐使 「五穀はない。肉を食して生活している」
    天子  「蝦夷の国には屋舎があるか」
    遣唐使 「ない。深山のなかで樹木の本に住んでいる」


천자 「에조의 나라는 어느 쪽에 있는가?」
견당사 「동북에 있다」
천자 「에조는 몇종 있는가?」
견당사 「삼종 있다.먼 곳을 都加留, 다음을 麁蝦夷라고 하여, 가까운 것을 熟蝦夷라고 한다.이번 따라 온 것은 熟蝦夷이고, 매년    본조에 입공 하러 온다」
천자 「에조의 나라에는 오곡이 있는가?」
견당사 「오곡은 없다.고기를 먹으며 생활하고 있다」
천자 「에조의 나라에는 건물이 있을까」
견당사 「없다.심산 안에서 수목에 의지하여 살고 있다」
          
덜덜덜 17-01-04 22:10
   
??뭔 소리임

저는 헤이안쿄(현재의 교토)에 천도했던 794년 이후 부터인데요??

대략 헤안쿄 시대가 안정된 900년이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영국 BBC자료 인용하면 고려후기 이후부터 농작량, 소비현황이 일본이 앞서나갔다고 말하더군요.
               
꼬마러브 17-01-04 22:17
   
그건 영국이 생각한 극동이고요

일본의 국력과 쌀생산량은 메이지시대 이전까지 한반도 위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뭐 여몽전쟁 때면 모를까요;

아래는 제가 예전에 쓴 댓글입니다

제가 그 부분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았습니다.
18~19세기면 한반도는 조선후기이고 일본은 에도막부시대인데
당시 조선의 쌀생산량을 측정하기 앞서 탈세전(혹은 은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세의 부과대상에서 부정,불법으로 누락시킨 토지를 말하는 데 중요한 것은 이 탈세전이 조선후기에 가면 성행하게 되어 정확한 쌀생산량을 알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 기록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세종대왕시기의 쌀생산량을 회복하였거나 혹은 기술의 발달로 더 생산하였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당시 일본의 석단위와 조선의 석단위가 다릅니다. 그러나 대충 계산해본 결과 일본식 석 기준으로
세종대왕 시기 때 대략 2000만석~2500만석을 생산했던 것으로 계산되고
당시 일본은 학자들마다 농지와 인구에 관해 편차가 커 정확히 말할수는 없으나 1700년 기준으로 대략 3000만석 약간 안되게 생산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역사학자 北島正元의 논문을 보면
して日本の水田と畑の割合は 6:4 位を維持しています. 1874年以前の日本の農地と人口に対しては研究機関と学者たちごとに偏差が大きくて論難が多いですが 1700年を基準でよく見ましょう.
1700年の農地面積は 282万ha 60%が田だと言ったら水田の面積は 169.2万ha 人口は 28,287,200人, 人口 1人当り農地面積は 0.598反, 江戸時代単位面積当たり米生産量 190kg/反を考慮すれば 0.758石/反
1700年 0.758石/反の米上がり高以後日本でどんな仕事が発生しましょうか? 次のグラフを見ましょう.
 
당시 일본의 1인당 쌀생산량에 세금을 공제하면
에도시대 일본의 백성들은 1년에 1인당 0.228석으로 삶을 연명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조신은 1년에 1인당 1석..(조선인들이 중국과일본인에 비해 밥을 세배정도 더 먹은 것도 고려 해야할 듯
당시 조선은 일본과 쌀생산량은 얼추 비슷한데 일본보다 인구가 2분의 1가량 적고 다이묘들간의 전쟁이나 수탈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비추어 보았을 때
에도시대 일반 백성들의 삶은 조선에 비하여 형편없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님도 에도시대 역사를 공부했다면 알겠지만 1720년부터 1840년까지 일본에서는 비참한 기근이 연속적으로 발생합니다. 이것도 고려해야 돼요

 日本歴史にいて惨めな飢饉が 1720年から発生し始めます.
日本学者たちは気象條件が良くなかった. と日本愚民の心をなぐさめるが
「郷村の百姓どもをば死なぬ様に生きぬ様に合点いたして収納」(東照宮上意)の結果,単位面積当たり米生産量が 0.758石/反(税金を控除すれば 0.38石/反 ) 以下に減ると 1840年まで飢饉が連続的に発生するようになる.
1880年 480万トン 明治13 1880年 人口 36,649,000 人 131 kg/1人 0.873石/1人
또한 얼마전 도쿄에서 에도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이 1만여구 발견되었는데 이들의 평균 키는 남성이 150센치대 반으로 여성은 그것보다 10cm가량 작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는 고대 일본의 조몬인들보다도 키가 작은 것입니다.
또한 발굴된 1만여구의 인골이 전부 만성적 영양실조로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상당수가 일본도에 의해서 살해당하거나 매독으로 사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신매매도 성행했습니다
에도시대의 장녀 이외의 여성은 가족의 빈궁한 삶에 의해서 살해되거나 인신매매로 전국 각지의 유곽에 매춘부로 팔려 나갔습니다.
江戸時代の女性は家族の貧しい生によって殺害されるとか人身売買で全国各地の遊郭に売春婦に売れて行きました.
 
즉 결론은 에도시대는 일본 역사상 최악의 시대라는 겁니다 백성들의 삶은 정말로 참혹했습니다.

Ps 잡설로 당시 -이불-같은 것들도 일본에서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시야 등장함. 대부분의 백성들은 이불없이 멍석이나 돗자리에서 잠들음
그 집이라는 것도 비좁은 공간에서 여러명이 생활하는 연립주택이 대부분
     
후안무치 17-01-04 22:17
   
백제계가 고구려계 신라계 가야계 모두 일본의 귀족이였고
그중에서 백제계가 백제가 망했는데도 가장 세력이 셌죠
백제계가 왕족이였으니까요. 그리고 백제왕족이 헤이안 시대를 열어
당과의 1:1 외교를 처음으로 하게 되죠 고국인 백제가 망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죠. 님말이 맞음 저도 이렇게 배웠거든요

하지만 신라가 3국을 통일한 다음에는 신라의 황금기를 구가 하게 되는데
국력이나 경제적으로 일본에 뒤졌다는건 말도 많이 어긋나요. 왜국이 우리민족국가의
경제력을 그나마 턱밑까지 올라오고 또 넘어서기 시작한 시점이 임진왜란 후에요
그 전까지는 왜국에 입장에서는 한국은 대국이였죠
          
꼬마러브 17-01-04 22:19
   
사실상 일본에서  고구려계 가야계 이야기하지만.. 이는 백제계에 비하면 극소수입니다. 신찬성씨록만 보더라도 유추할 수 있죠
               
후안무치 17-01-04 22:20
   
네 맞아요
꼬마러브 17-01-04 22:08
   
기술력은 백제가 앞섰겠지만.. 국력을 보았을 때, 백제 본토는 아신왕 이후부터 신라에 밀리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덜덜덜 17-01-04 22:11
   
국력이 기술력이라고 보시면 되죠.

외세를 빌려 연합해서 전쟁에서 이겼다고 국력이 더 쌔다는 논리인가요?

솔직히 1대1 정면승부해서 신라가 백제를 이긴적 거의 없습니다.

물론 전면전 한적이 거의 없음 ㅋ
          
꼬마러브 17-01-04 22:19
   
전면전 한 적 되게 많은데요;
삼국사기 기록 한번 훑어보세요. 서로 성 뺏고 빼앗기고 장난 아닌데
               
덜덜덜 17-01-04 22:26
   
전면전이라고 보기 어렵죠.

삼국의 균형을 원한게 고구려였고.

고구려는 백제의 언어와 의복도 비슷했고 혈연 즉 라이벌로 보던 경쟁국가였죠.

반대로 신라는 고구려에 붙었다, 백제에 붙었다 당시 상황에 따라 달랐죠.

항상 백제가 신라를 치면 고구려가 신라를 도왔고.

고구려가 백제를 치면 신라가 백제를 쳤고.

항상 이런 구도였습니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신라의 동쪽 왜나라를 백제가 포섭했고

이후 장악한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고구려가 중립을 선 상태에서 1대1 전면전 한적은 거의 없습니다.
                    
꼬마러브 17-01-05 00:03
   
글세요..

구당서를 보면 당나라 황제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사신을 불러 꾸짖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래와 같습니다

해동삼국은 같은 민족인데 서로 싸워 경계가 짐승이빨처럼 뾰족뾰족하니 어찌된일인가?

삼국사기 후기 기록만 봐도 백제와 신라는 거의 매년마다 전쟁을 치루던 사이였는데요..
                         
덜덜덜 17-01-05 00:33
   
그게 전면전이 아니라 게리라전이죠.

그때 국력을 뜻하는 보름달은 백제였고 반달은 신라였습니다.

그래서 신라는 추석때 송편이 반달모양이구요.
                    
꼬마러브 17-01-05 00:42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1725474&cid=49345&categoryId=49345

의자왕은 곧 무당을 불러 그 글귀의 뜻을 해석하도록 했다. 그러자 그 무당은 머리를 조아리며 “달이 둥글다는 것은 가득 찼다는 것이니, 이제 곧 기울 때가 되었다는 뜻이고, 초승달은 아직 차지 않았으니 머지 않아 보름달이 된다는 뜻입니다.”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결국 백제는 망하고 신라는 흥한다?’이런 생각을 한 의자왕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졌다

신라 입장에서의 사료겠지만 님께서 초승달 비유를 대시니..
상식3 17-01-04 22:27
   
역사저널 그날에서 본 건데
삼국사기 기록에 의자왕시절 신라가 백제를 강국으로 칭하며 전쟁을 두려워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으로 봐서는 백제가 한강을 뺐기고도 신라보다 강했다 봐야하지 않을까요?
     
덜덜덜 17-01-04 22:30
   
솔직히 신라는 지증왕 이전까지 왕의 호칭도 허락받았던 국가가 신라입니다.

약소국에다 더 깊게 살펴보면 백제, 고구려 부용국이 신라였다고 봅니다.
          
꼬마러브 17-01-04 23:46
   
글세요. 백제는 아신왕 이후 국력이 급격히 쇠약해졌다..
동성왕, 무령왕 시기 다시 회복하나 싶더니 신라에게 한강유역을 빼앗기고는.. 멸망할 때까지 영영 되찾아오지 못했죠. 이것이 국력의 차이가 아닐까요.
암군으로 불리는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시기에도..
백제의 무왕은 기록된 것만으로도 모산성, 독산성 등의 성들을 침공하고 거의 매년 신라와 전투가 벌어졌으나..
한강유역을 되찾아오지는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죽어나가는 것은 백제 백성들이였어요.

이 시기에 일본열도의 인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백제에서 백성들이 전쟁을 피해 고구려나 신라, 일본열도로 대량 이주했기 때문이에요. 인구가 외부로 대량 유출되던 시기입니다.

일본서기에서 백제 백성들이 대규모나 소규모로 일본열도로 이주한 기록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 대규모 이주 기록 중에는 아신왕시기에 ..
백제 궁월군이 120현민을 데리고 일본열도로 이주했다는 기록도 있어요
1현의 천명이라고 잡으면 12만명에 이르는 규모에요;
               
덜덜덜 17-01-04 23:56
   
말이 안됩니다.

아신왕은 그 당시 동북아 최강자 광개토태왕(장수왕)이 버티고 있었고

그 당시 백제는 고구려에게 밀리고 있었지 신라는 별로 안무서워 했습니다.

시대를 그렇게 짤께 쪼개시면 안되죠.

그럼 이후 사마왕의 비문의 내용과 중국측 사료를 보면 어떻게 반문하실껍니까???

사마왕 비문을 보면 백제왕을 동쪽 최고국가 영동대장군으로 칭하고 있습니다.

즉 신라는 듣보국가로 보는거죠.
                    
꼬마러브 17-01-05 00:08
   
신라는 진흥왕이전까지 한강유역을 차지하지 못하였고
중국과의 교류도 그때서야 제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중국입장에서 신라는 듣보일 수 밖에요.

백제 본토는 아신왕이후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나라가 피폐해졌다..
동성왕, 무령왕시기 다시 회복하나 싶더니
신라한테 뒷통수 맞고는 그저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만을 차지한 조그마한 국가로 전락해버렸지요.
인구는 이미 외부로 대거 유출된 상황이고..
그래서 광개토대왕비문을 보면 백제를
'남을 잔'자 써서 백잔이라고 칭합니다.
인구가 외부로 대거(특히 일본열도) 이주되고 남은 나머지 라는 뜻이지요
                         
덜덜덜 17-01-05 00:10
   
네??신라쪽 사료책에서도 백제를 상국 즉 강대국으로 묘사하는데요??

그리고 광개토태왕비문은 정복의 산물로 나타나는 과시로써 백잔으로 묘사한거죠.

제3자 중국이 고구려를 하구려로 쓰면 고구려도 하등국가입니까??
                    
꼬마러브 17-01-05 00:17
   
본글의 제목이
 신라가 백제의 국력을 넘어선 시기가 언제인가요?
이지 않습니까?

제 말의 요지는
백제본토는 아신왕시기 부터 위태위태하기 시작하더니
이 때부터 신라에 추월당할 조짐이 보였었고
진흥왕시기 이후 신라의 국력은 백제의 국력을
넘어섰다는 것입니다.

진흥왕시기 이후에도 신라가 백제를 강대국으로 묘사하나요? 음..
                         
두비두밥두 17-01-05 01:57
   
덜덜덜님의 이상한 역사관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백제는 멸망 직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신라보다 강성한 국가였습니다.

물론 한강 유역을 뺏기고 기력을 못쓰는듯한 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만, 진덕여왕때에도 신라가 백제를 두고 소국이 어떻게 대국을 치겠냐고 언급을 합니다.

그리고 백제 말기, 신라가 당나라에 보낸 서신에도 백제가 강성하다는 내용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일단 영토 크기만 보면 백제가 허약할 것 같은데, 백제가 차지한 영역은 남부에서도 핵심적인 지역입니다. 산악이 비교적 많은 동부보다 나은 땅이죠.

그리고 아신왕 때 대량의 인구가 왜로 이주를 했다고 하는데, 왜로의 이주가 존재야 했겠으나, 무슨 대부분의 인력이 나갔다는 듯이 말하는 군요. 호태왕비의 백잔 호칭을 과잉 해석해서 말이죠.

백제인의 왜 거주 유적이 존재는 하나, 5,6세기 경에는 그다지 대거 이동했다는 의미있는 고고학적 유적은 출토되지 않아요. 백제가 멸망하고 7세기에 확실하게 왜가 백제색으로 물들게 되죠.
                    
꼬마러브 17-01-05 09:44
   
일본서기의 기록을 보면
403년 12개 현, 409년엔 17개 현이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적혀져있고요..
광개토왕비문을 보면
백제 백성들은 전역에 시달려 신라로 많이 도망하여 호구가 줄었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속일본기를 보면 이러한 상황에대하여
"백제도래인의 씨족이 너무 많아 다른 씨족은 열에 한두명도 안된다"
라 하기도 하지요.
특히 오우진 천황 때부터 백제풍이 유행했다고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오오진천황 다음 천황인.. 태양의 자손이라는 "호무다"가 바로 백제왕자인 "인덕왕"이며
피라미드보다 크다는 거대한 전방후원분의 주인입니다.
이 시기가 광개토왕의 백제정벌 직후의 때입니다.
또 님 120현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모르나요?

또한 삼국사기를 살펴보았는데
님이 말씀하신것처럼 진덕여왕이 소국이 대국을 어떻게 치냐..라는 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기록에서 신라가 당나라에게 백제의 국력을 강성하다 라고 한 것은 당나라의 도움을 얻기 위한 문학적 수사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덜덜덜 17-01-05 10:25
   
진흥왕은 550 고구려와 백제가 서로 싸워

국력이 소모되는 틈을 노려 영토를 먹은겁니다.

이후 백제의 패착은 그 당시 담로국이 많아 힘이 분산되어 당에게 당한거지 신라에게 당한게 아닙니다.
                         
두비두밥두 17-01-05 11:47
   
http://hwalove.tistory.com/m/entry/%E4%B8%89%E5%9C%8B%E5%8F%B2%E8%A8%98-%E7%AC%AC-%E5%9B%9B%E5%8D%81%E4%B8%80%E5%8D%B7%EC%82%BC%EA%B5%AD%EC%82%AC%EA%B8%B0-%EC%A0%9C-41%EA%B6%8C133%EF%A4%8A%E5%BA%BE%E4%BF%A1%E4%B8%8A%EA%B9%80%EC%9C%A0%EC%8B%A0%EC%83%81

以小觸大, 危將奈何

진덕여왕이 한 말입니다.

당나라 서신에서 내용이 문학적 수사라고만 보기에는 상황이 그다지 신라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신라가 당에 지원을 요청한 것이구요.

그리고 전역에 시달려 호구가 신라로 빠졌다는 기록은 호태왕비가 아닌 삼국사기에서의 기록입니다. 아마 착오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백제가 전쟁하면서 인구가 신라나 왜로 유출된 것을 부정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신라가 백제보다 우위로 만들만큼 의미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예전엔 오진부터 실존했다고 봤지만, 요즘은 게이타이 오키미 이전의 왜왕들도 실존 여부가 의심받는 마당이고, 전반적인 내용들도 고고학이나 삼국사기외 다른 기록과 교차검증해서 어색한 부분도 많은 것을 보면, 유출된 현이 과장되거나 사실 그대로가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왕인 박사 내용만 보더라도 천자문이 등장하는데, 중원측 기록에서는 천자문이 양나라때 만들어진 것을 생각하면, 후대의 내용을 끌어올리거나 바꾸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속일본기는 백제인들의 대량 거주가 이루어진 7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기록입니다. 7세기 이후는 고고학적으로 보나, 기록으로 보나 확실하게 대량 이주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딱히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씨는 귀족들의 것이고, 백제의 영향을 농후하게 받은 왜의 귀족들은 상당수 백제인인 것 또한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다만 5세기에 백제가 잔당으로 불릴 만큼의 인구 유출이 있었다고 보는 것은 별개이지요.

일단 5세기 경 왜에 백제의 하사품으로 추측되는 유물들이 발견되거나 백제의 영향과 흔적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가야계나 신라계 등 다른 도래인의 흔적도 짙고, 당시 의미있을 정도의 대거 이주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백제왕계가 왜왕계라는 것은 가설입니다. 백제왕계가 왜왕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으리라 보지만, 왜왕계 자체가 백제왕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은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덜덜덜님도 신라를 이상하게 낮춰 보시는데, 신라도 5만 군을 동원할 정도로 어느정도 역량이 있었고, 그러한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백제를 멸할 수 있었던 겁니다만.
                         
꼬마러브 17-01-05 12:11
   
두비두밥/ 지적 감사합니다. 모바일이라 글을 쓰기가 힘드네요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7466&cwin=&page=0&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9E%88%EB%AF%B8%EC%BD%94&sop=or&page=0

위 주소는 제가 예전에 적었던 글인데, 아래 디노님의 댓글의 내용처럼
야마토왕국의 시작은 16대 인덕왕(닌토쿠 천황) 때, 부터로 보는 것이 옳지 않나 합니다.

그리고 또한 근초고왕 시기, 백제가 정벌하였다는 마한의 위치가 일본열도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이는 백제의 일본진출을 입증하는 자료이며,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일본천황계는 백제왕계와 뿌리가 같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꼬마러브 17-01-05 11:11
   
담로국이요??
대륙백제는 성왕시기에 없어지기 시작합니다
성왕시기에 한강유역도 신라 진흥왕에게 빼앗기고...
한강유역 되찾겠다고 ..
성왕이 직접 기병을 이끌고 신라로 가다가
신라복병에게 당해 목숨을 잃었죠.

비참하지 않나요? 백제의 왕이 고작 신라의 복병에게 목숨을 잃은 것도 모자라 대륙백제 붕괴에 처음 백제가 건국되었던 한강유역은 신라에게 빼앗기고..

이후 백제가 성왕의 치욕을 갚겠다고 후대왕들이 신라를 향해 대대적으로 군사를 일으킵니다.
거의 매년 전쟁이 일어났지요. 삼국사기 보면 자세히 나옵니다.
그런데... 한강유역을 되찾은적이 있나요?

매년 일어나는 전쟁에 백제의 백성들은 고구려, 신라, 일본열도 등으로 대거 이주하였고
위에 제가 올린 자료들이 그 근거입니다.
당시 일본열도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요
두리네이터 17-01-05 05:45
   
당나라기록을 보면 백제멸망당시 인구가 76만호로 고구려 멸망당시 인구인 69만호보다 더 많습니다. 그당시는 인구가 곧 국력이던 시절이죠. 그만큼 영토크기는 작아도 경작지가 많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동성왕이후로 백제가 신라에게 전투에서 열세를 보인적이 많은 이유는 신라측에서 기록을 왜곡하거나(특히 선덕 진덕 두 여왕시기. 김유신이 불패명장이라면 왜 신라는 백제에 멸망직전까지 몰렸나?) 백제의 지방분권형 봉건제(담로제도)가 대규모 군사동원에 불리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무왕과 의자왕때에는 전략을 바꿔 지방영주들에게 각자 군사를 가지고 신라 전역을 각개격파해 들어가게하고 뺏은땅을 영주들이 직접 전리품으로 가지게하는 전략을 썻죠. 그러자 국력 인구에서 우위인 백제의 위력이 나오기 시작해 신라가 위기에 몰린거죠. 하지만 의자왕말기 연전연승에 도취된 의자왕이 영주들의 책봉을 뺏어버리고 그 봉토를 직접 지배하려고하자(대신 자기의 아들들을 그 자리에 임명) 이에 대한 대규모 반발이 일어남으로써 백제멸망시에는 의직 계백등이 지휘하는 중앙군 3~4만외에는 동원가능한 군사가 전무하게 되죠.
코스모르 17-01-06 00:07
   
저도 백제가 늘 앞섰다고 아는데.... 농업이 최대 산업인 당시에 넒은 평야를 가진 백제와 신라를 비교하면 뭐..
     
꼬마러브 17-01-06 01:23
   
호남평야 다음으로 국내 최대 평야인 김해평야가 신라지역에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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