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에서의 평양(낙랑군) 거리 기록은 경사(京師), 당(唐)나라 도읍이었던 장안(長安)을 기준하여서 낙양(雒陽)을 기준한 《후한서(後漢書)》와 차이가 있다. 《구당서(舊唐書)》에서 장안과 낙양의 직접 거리는 950 리이지만 주변 행정지와 거리 수를 제시할 때에는 각기 다른 경로를 사용하여 제시하고 있어서 그 수치가 제각각이므로 기계적으로 950 리를 빼는 방식으로 산술할 수 없다. 따라서 《구당서(舊唐書)》의 거리 기록에서 한국계(韓國界)와 중국계(中國界)의 중간 지점에 해당한다 볼 수 있는 방위와 위치에 해당하는 3 지점을 다음과 같이 선별하여서 해당 기술에 나타난 “장안-□”과 “낙양-□”의 거리 차를 비교하였다.
구분 |
경사(장안) 기준 거리 |
동도(낙양) 기준 거리 |
현 위치 |
거리 차 |
平州 |
2천 650 리
(在京師東北二千六百五十里) |
1천 900 리
(至東都一千九百里) |
노룡현 |
750 |
營州 |
3천 589 리
(在京師東北三千五百八十九里) |
2천 910 리
(至東都二千九百一十里) |
조양현 |
679 |
安東都護府 |
4천 625 리
(去京師四千六百二十五里) |
3천 820 리
(東都三千八百二十里) |
미상 |
805 |
당(唐)나라 평주와 영주, 안동도호부는 모두 낙양의 동북방으로서, 현 하북성 당산(唐山)과 진황도(秦皇島) 일대에서 동쪽으로 위치하였는데 각기의 장안과 낙양 기준 거리 기술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 3 곳의 중간값에 해당하는 평주(平州)의 거리차인 ‘750 리’를 기준으로 삼고 《신당서(新唐書)》와 《구당서(舊唐書)》의 경사~평양(낙랑) 거리를 낙양~평양(낙랑) 거리로 교정하면 각각 4천 250 리, 4천 350 리가 된다. 이 산출값을 토대하여 후한의 리수 41.5.8m를 적용하면 후한 당시의 거리값으로 환산해낼 수 있다.
<1안>
출전 |
기록 상 거리 |
1 里 m 환산 |
총 거리
km 환산 |
漢尺 적용
(1 里 = 415.8m) |
후한서 군국지 |
낙양→낙랑군
5천 리 |
漢尺
415.8m |
2천 79km |
5천 리 |
후한서 군국지 |
낙양→요동군
3천 600 리 |
- |
1천 496.88km |
3천 600 리 |
신당서 고구려전 |
낙양→평양
4천 250 리 |
唐尺
530m |
2천 252.5km |
5천 420 리 |
구당서 고구려전 |
낙양→평양
4천 350 리 |
- |
2천 305.5km |
5천 545 리 |
<2안>
구분 |
후한서 |
후한서 |
신당서 |
구당서 |
기록/추산값 |
낙양→요동군
3천 600 리 |
낙양→낙랑군
5천 리 |
낙양→평양
4천 250 리 |
낙양→평양
4천 350 리 |
km 환산 |
1천 496.88km |
2천 79km |
2천 252.5km |
2천 305.5km |
漢尺 적용
(1 里 = 415.8m) |
3천 600 리 |
5천 리 |
5천 420 리 |
5천 545 리 |
세 사서는 모두 낙랑군이었다 한 곳을 가리키며 거리 수를 제시하였으나 세 곳은 모두 다른 위치이며, 특히 후한서와 양 당서는 전혀 다른 위치이다.
- - - - -
■ 《후한서(後漢書)》 군국지 낙랑군(樂浪郡) 위치를 현 서북한 평양(平壤)에 고정하였을 때의 결과
구분 |
후한서 낙랑군과의 가감(加減) 값 |
비정 가능 위치 |
후한서 요동군 |
- 582.12km |
현 심양시/요양시 |
신당서 평양 |
+ 173.5km(174.636km) |
현 개성시/해주시 |
구당서 평양 |
+ 226.5km(226.611km) |
현 서울시/개성시 |
■ 《후한서(後漢書)》 군국지 요동군을 현 요녕성 요양에 고정하여 볼 때의 결과
군명 |
기록 |
후한서 군국지
요동군과의 거리 |
漢尺 적용
(1 里 = 415.8m) |
학계
비정지 |
요동군 현 요양 고정시
실제 비정 가능 최원선 |
후한서 군국지
요서군 |
낙양 동북
3천 300 리 |
300 리 |
124.74km |
요녕성 의현 서쪽 |
반산·흑산·신민 |
후한서 군국지
요동속국 |
낙양 동북
3천 260 리 |
340 리 |
141.372km |
대릉하 중하류 일대 |
반산·여양·북진 |
후한서 군국지
현도군 |
낙양 동북
4천 리 |
400 리 |
166.32km |
요녕성 심양·무순 일대 |
개원·철령 |
■ 《구당서(舊唐書)》 평양(경사 동쪽 5천 100 리/낙양 동쪽 4천 350 리)을 현 서북한 평양에 고정하여 볼 때에 후한서 각군(各郡)의 위치 결과(구당서와 신당서는 평양을 낙랑이 있던 땅이라고 기술)
군명 |
거리값에 따른 비정 가능 위치 |
낙랑군 |
신의주/단동 |
요동군 |
의현/북진 |
요서군 |
조양 |
요동속국 |
객라심좌기 몽골족 자치현 |
현도군 |
신민/철령 |
3부에서 계속
# 내용이 추가 되지 않는다 하면 총 6부입니다. 이 고찰의 핵심은 "후한서 군국지 주요 군의 거리 기록은 후대(송)에 조작된 것이다"하는 것입니다. 위 2부 내용은 요서군, 낙랑군, 요동군 등이 저 위치에 있었다 하는 말이 아니라 후한서 군국지의 거리 기록이 후대에 꿰어맞춘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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