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인돌[支石墓(지석묘) ] 한국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고인돌 [dolmen, 支石墓(지석묘)] (두산백과)
2) 비파형 동검[ 琵琶形銅劍 ] 비파형 동검은 비파처럼 등에 대가 있고 좌우에 날이 퍼져 있는 짧은 청동 칼이다.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인 청동검이 바로 이 비파의 모양을 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비파형 동검 [琵琶形銅劍] (천재학습백과 초등 사회 용어사전)
3) 동이[ 東夷 ] 중국 사람들이 그들의 동쪽에 있는 족속들을 일컫는 말. 곧 조선•일본•만주 등을 가리킴. [출처]동이 (naver.com) 은나라(상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로 제나라 송나라는 은의 후손이니 동이족이다 상〔商, 또는 은(殷)〕 왕조는 동이족이 거주하는 황하 하류에 있던 오래 된 부락에서 발전하였다. [출처]상족의 기원과 건국 (naver.com)
(1) 일백개의 제나라(백제百濟)란 제濟지역인 산동반도에 있었던 다수의 후국侯國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 주) 은의 후손인 제나라는 동이족의 나라다 (2) 한나라 초기 한무제는 섬서성 북쪽과 실크로드 지역을 평정한 것이 대외적인 공적으로 알려져 있다
한무제 [ 漢武帝,BC156 ~ BC87 ] 중국역대인명사전 대외적으로는 장건(張騫)을대월지국(大月氏國)으로 파견하고, 당몽(唐蒙)을 야랑(夜郞)에 보내 서남 7군(郡)을 건설했다. 장군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 이광(李廣) 등에게 흉노를 토벌하도록 해 오르도스 지방을 회복하여 2군을 두었다. 원수(元狩) 4년(기원전 119) 위청이 흉노를 외(外)몽고로 내쫓았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한무제 [漢武帝]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1. 20., 임종욱, 김해명)
■ 4.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다
1) 명도전에 새겨진 문자는 연燕나라 문자가 아니다 명도전에 새겨진 문자는 고조선의 가림토 문자다 "명도전에 새겨진 문자가 연나라 문자가 아니라 단군조선에서 쓰던 가림토 문자임을 증명함으로써 우리 한글의 뿌리가 우리 민족의 역사만큼이나 길게 뻗어 있음을 밝힌 허대동 선생의 연구는 한민족의 문화적 자긍심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한남대 강신철 교수)' 글 중에서 [출처] 고조선 문자 연구가 허대동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명도전 출토 지역은 고조선 영토와 정확히 일치한다 (1) 사마천 사기에 따르면 연나라는 제나라(산동성)와 진나라(산서성 서남부)에 끼어 있는 약소국인 뿐이다 (2) 사마천 사기에 따르면 연나라는 석가장 시와 호지하(현 호타하)를 넘을 수가 없다 따라서 명도전이 가장 많이 발견된 하북성 북부는 고조선 영토였다 (3) 하북성 석가장시 북쪽과 북경지역(고조선 중심지역), 북방이족(훈족)지역 , 만주지역, 북한지역, 예맥조선지역(하북성 창주시) 산동성 래이지역(산동성 동이지역) 등 명도전이 이족지역에서만 주로 발견되었으니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다
3) 명도전이 연나라 화페라는 주장은 상식에 반하는 주장이다 (1) 연나라 화페가연나라와 이웃한 조나라 제나라에서 사용되지 않고 연나라에게 땅을 수천리 빼앗긴 고조선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는 주장은 상식에 반하는 주장이다 (2) 연나라의 도성(계는 거록)과 주 활동 무대인 하북성 남부에서 명도전이 발견되지도 않았다
4) 명도전이 고조선 화페가 명확하니 명도전으로 고조선 영토를 추정해 보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고 추론이라고 생각한다
[한나라 초기 한무제는 섬서성 북쪽과 실크로드 지역을 평정한 것이 대외적인 공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글이 중국식 중국뽕 사서들의 기록인걸로 읽혀집니다
로마까지 이어진 실크로드는 특정국가의 선점무역로가 아니라
상호이익적 관계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상업형 비즈니스 길입니다
선점이 아니라 교류와 유통길이라 보는것이 세계사적인 시각입니다
[실크로드란 원래 중국 비단의 유럽 수출로에서 연유된 조어(造語)였으나,
그 개념이 확대된 결과 원래의 뜻과는 다르게 하나의 상징적인 아칭(雅稱)으로 변하였다.
사실상 초원로나 해로는 물론이거니와, 오아시스로도 그 길을 따라
비단이 교류품의 주종으로 오고간 것은 역사상 짧은 기간이었을 뿐,
여러가지 교역품이나 문물이 오랫동안 교류되었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실크로드는 비단의 일방적인 대서방 수출로 인해 이름이 지어졌고,
또 비단이 로마제국(특히 말엽)에서 큰 인기를 모은 진귀품으로서,
그 진가를 기리기 위해서 그 명칭이 고수되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명칭은 분명히 유럽 중심주의 문명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며 진정한 문명교류 차원에서 유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크로드란 이름이 시종 존속되어온 것은 바로 그 상징성 때문이다.
실크로드는 문명교류의 통로인 것만큼이나 노선과 교류 여하에 따르는 유한(有限)된 하나의 역사적 개념으로서,
분명히 그 시말(始末)이 있다.
그 시말은 광의적(廣義的) 시말과 협의적(狹義的) 시말로 갈라볼 수 있다.
광의적 시말은 실크로드가 선사시대에 개통되어 지금도 계속 기능하고 있다는 좀더 넓은 의미에서의 시말이다.
즉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에 홍적세(洪積世)가 시작되면서 일어난
인류의 대이동에 의해 유라시아 대륙에 몇 갈래의 길이 생겼는데, 이것이 실크로드의 시작이다.]
[[하북성 석가장시 북쪽과 북경지역(고조선 중심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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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경 일대가 연나라 영역이라는 건 이미 출토되고 발굴된 여러 유물-유적을 통해
거의 100퍼 확정된 사항입니다.....!!!
북한정권 시절인 1960~80년대에 걸쳐 평양과 대동강 유역에서 발견-출토된 대규모 낙랑유적과 거의 동시대에
현 북경과 인근지역에서 주나라~춘추전국시기에 해당하는 유리하 유적을 포함한 여러 유적-유물들이 발견-출토됨으로 인해
거의 빼박으로 연나라 영역으로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 상태입니다....!!!
또한 고조선 영역을 전성기 시기를 기준으로 아무리 넓게 잡더라도
북경일대보다는 훨씬 북동방면인 난하 또는 대릉하 이서로는 잡을 수 없습니다.
난하, 대릉하까지 고조선 영역이라는 주장 또한 주류학설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구요~~
사마천 사기 흉노열전에 진개가 동호땅 1천리를 빼앗았다고 나오고요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진개가 조선땅 2천리를 빼앗았다고 나옵니다
(1천리를 2천리로 뻥티기 한 것으로 사마천 사기에 연나라 영토가 2천리라고 나오니
연나라 영토인 2천리를 맞추기 위해 진개가 빼앗은 땅을 1천리를 2천리로 바꾸어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