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링크한 보리스진님의 글에 대한 비판입니다
번호는 보리스진님의 주장
그 아래 ㅡ 는 저의 비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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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족오는 (까마귀)이다."
ㅡ 삼족오는 三足烏로서, 이미 BC 3천년 이전 양사오 문화 유적지인 산서성 반파 유적지에서 출토된 질그릇에서 그 원형적 형상이 나타남
ㅡ 이 지역은 훗날 귀방(鬼方), 그리고 그 더 후대에는 적(狄)으로 불리는 북방 종족이 활동한 지역
ㅡ 그러나 양사오 문화 자체는 현 산서성 남부와 황하와 위수 등이 흐르는 지역을 중심으로 그 북쪽으로 넓게 전이되었으므로, 양사오 문화권으로서 볼 때에 아예 훗날 중원지역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음
ㅡ 삼족오 문화 자체는 동북아시아에서 폭넓게 공유된 문화로서, 고구려뿐만이 아니라 한나라 시대의 각종 도상, 화상석 등에서도 많이 나타남
ㅡ 문화는 교류와 전파, 지역화 등을 거쳐 향유되는 것으로 삼족오 자체를 우리의 독특한 문화소라고 볼 수 없음
ㅡ 차라리 삼족오가 아니라 '까마귀'를 근거로 어원 상관성을 풀고자 했다면 이렇게 얼토당토하지 않지는 않았을 것
2. "高麗는 일본에서 (코마)로 읽는다. 高麗는 (큰맑음)이다. 靺鞨은 (말갈)이다."
ㅡ 고려는 장수왕 대부터의 고구려의 국호
ㅡ 즉, 고려는 본래 고구려
ㅡ 고려를 일본에서 고마라고 한 것은 사실이나 왜 고마(高麗, 巨麻, 狛, 小間, 駒)라고 했는지, 다른 기록, 다른 지역에서는 이 비슷한 말로 부른 사례가 없는지 살펴야 하는데 갑자기 무턱대고 "高麗는 큰맑음이다"라고 비약을 함
ㅡ 고구려의 국호는 고려라고 하기 전에 고구려였는데 왜 고려만을 가지고 주장을 하는 것이며, 여기서 갑자기 '큰맑음' 어쩌고 하는 가공할 비약은 무엇인가?
ㅡ 高句麗였다니까
ㅡ 그러면 차라리 句麗를 가지고 풀어보던가 해야지
ㅡ 범어잡명(梵語雜名, 9세기)에는 mukuri(畝俱理)로, 퀼테긴돌궐비문(8세기)에는 뵈클리(bökli)로 적혀 있음
ㅡ 여기서 m과 b의 음가(소리값)가 서로 넘나드는 어떤 소리가 원음임을 추정할 수 있음
ㅡ 또한 중국 측 사서에서는 고구려와 부여를 비롯한 우리 조상의 족속을 濊貊, 또는 貊이라고 무수히 적고 있고
ㅡ 또한 삼국지 위서 고구려전과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소수맥(小水貊)과 대수맥(大水貊)이 언급돼 있어서, 여기서 고구려의 본 종족이 대수맥(大水貊), 즉 대수(大水) 지역의 맥(貊)인 것을 알 수 있음
ㅡ 즉 고구려 자체가 맥(貊)이었던 것
ㅡ 또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이미 동명성왕 창건 초부터 그 주변에 말갈이 살고 있어서 성왕께서 이들을 정복하여 복속시킨 사실을 적고 있음
ㅡ 즉, 맥, 고구려, 말갈이 한 데 한 자리에 있었던 것
ㅡ 또한 고구려 최고 관등에 막리지(莫離支)가 있었는데, 훗날 연개소문 시기에 이보다 더 높은 대막리지(大莫離支)가 만들어짐
ㅡ 지(支)가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 가야, 신라, 삼한, 심지어 물길, 말갈 등에서 관직, 또는 존칭을 구실을 하였으므로 앞의 막, 또는 막리가 大, 또는 高의 뜻을 지녔음을 추정할 여지가 생김
ㅡ 이런 식으로 깊이 있고 폭넓게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논증해들어가야지 고려에서 갑자기 큰맑음이 대체 뭔 말입니까?
ㅡ 高句麗는 당시 발음(상고음)으로 '카우카우리/카우카울레이'에 가까움
ㅡ 句麗를 반절법으로 적었다 볼 수 있으므로 句麗가 적은 소리값은 카울에 가까움
ㅡ 靺鞨은 靺이 muɑt/mwat, 鞨이 ɣɑt/ɦɑt으로 한글로 적으면 '무흐카아/무어흐가아'에 가까움
ㅡ 우리 이두 표기나 한자의 반절 표기에서는 두번째 음절의 종성(끝소리)을 생략하는 경향이 있음
ㅡ 따라서 高句麗는 '貊族 = 靺鞨'에서 맥, 또는 말에 해당하는 말을 같은 뜻을 지닌 高로 대체했거나 맥족, 또는 말갈의 종주권자로서, 高를 大의 뜻으로 서서 스스로를 높혀 국호나 족명으로 삼으면서 高貊族 = 高靺鞨한 것에서 의미가 중첩되고, 한자 뜻으로서 멸칭인 貊과 靺을 생략하여 高句麗를 그 처음에 족명, 또는 국호로 삼았다는 추정까지 나아갈 수 있음
3. "遼는 (멀)이다. 大遼는 (큰멀)이다."
ㅡ 기가 막혀서 식은땀이 날 정도
ㅡ 遼는 원(遠)의 뜻을 지니면서 삭(朔), 북(北) 등과 같은 뜻으로 쓰인 말
ㅡ 본래는 장안의 북쪽 지역인 현 산서성 중남부 지역을 遼라고 하였고, 한편으로 태행산 건너편의 석가장시 일대에서 보정시 일대를 遼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중국세력이 그 영역과 함께 확장되면서 점차 동북쪽으로 그 지역이 옮겨감
ㅡ 거란의 그 처음 국호는 그냥 거란(契丹)이었음
ㅡ 946년에 거란 태종 야율덕광이 후진(後晉)을 완전히 멸망시킨 후에 947년 2월에 국호를 처음으로 대요(大遼)라고 하였음 (二月丁巳朔,建國號大遼大赦,改元大同。升鎮州為中京《요사본기 태종 하》
ㅡ 그러다 거란 성종 통화 원년(983년)에 다시 국호를 거란으로 바꿈 (癸未統和元年。宋太平興國八年。帝即位,複號大契丹 《거란국지 7》
ㅡ 그리고 1066년에 국호를 다시 대요(大遼)로 바꿈 (契丹復國號曰大遼 《고려사 세가》문종 20년)
ㅡ 遼라는 명칭은 이미 북위 시대부터 현 칠로도산, 옛 장성 동북쪽 바깥 지역을 遼로 지칭하기 시작하였고, 역도원의 수경주부터 현 '시라무룬허-서요하-요하'를 요수로 고정해서 보려는 시도가 노골적이었는데 이것이 수나라를 거쳐, 당나라 시대에 이르면 분명해지고, 거란의 요나라 시대에 오면 완전히 정착이 됨
ㅡ 즉, 요나라가 건국되기 이전부터 거란이 차지한 지역을 요(遼), 또는 요택(遼澤)이라고 불렀음
4. "渤海는 (물큼)이다. 大渤海는 (큰물큼)이다."
ㅡ 기가 막혀서 사실 말도 하기 싫을 정도
5. "馬韓은(말oo)이다. 韓은 우물난간을 뜻하는데, 우리말로 우물난간이 뭔지 모르겠다. 부수로 韋는 (가죽)이다. 韓은 일본어로 (가라)이다. 아마 우리말도 그와 비슷했으리라. 馬韓은(말가라)이다."
ㅡ 마한이 말가라, 또는 말갈이라는 주장은 이곳 동아게에서만 해도 본인이 수년 전부터 무수하게 해왔고
ㅡ 이런 주장을 본인이 처음할 때에 다른 사람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을 보지 못 했음
ㅡ 이 분석은 본인이 1994년부터 개인적 연구를 통해 보유해왔던 주장임
# 이상, 상기 비판에 사용된 서술내용은 모두 본인의 연구를 바탕한 것으로 그 일부 내용은 이곳 동아게에서 여러차례 공유한 바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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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이곳 동아게는 토론게시판입니다
특히 역사게시판으로 성격화돼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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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연구든 어원연구든 그것이 과학적 체계, 즉 논술의 체계를 갖추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과학적이라 함은
그 주장이 수긍 가능한 전제를 기초하고, 타당한 근거를 바탕하여 논리적으로 전개되어서
다른 이가 같은 값을 대입하였을 때 동일한 결과값이 나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때에 이것이 논설의 기본으로서, 이 때의 논설을 성립 가능한 주장이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서 다른 이가 다른 임의의 값을 대입하여도 동일하거나 근사한(가까운) 결과값이 나올 때에 그 논설을 '주장이 성립한' 논설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