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려사>는 고구려 수도 평양이 고구려 멸망 후 신라에 편입됐다고 적고 있으나 정작 <삼국사기>에는 그러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애초 나당 연합 시에 신라가 차지하기로 한 것은 평양이 아니라 패수이남이었습니다
2. 원사 지리지는 "非平壤之舊."이라고 하여 고려의 평양이 장수왕의 평양이 아니라고 적고 있습니다.
3. 고려 왕건의 현 평양 개발과 이후 서경, 또 호경으로 승격시켜 근 1백 년에 걸쳐 성역화 한 것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파간다로 이해해야 합니다
4. 현 평양의 기자신사, 현 황해도 구월산 등의 유적은 금ㆍ원 시기에 조성된 것이고 공민왕을 거쳐 조선시대, 그리고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5. 복기대 교수팀이 지적했 듯이, 아래 게시글에 나온 바와 같이 조선 세종 때도 고구려 평양이 어디인지 몰랐습니다
6. 고려 서경이 고구려 평양이었으면 서희의 담판 때에 이 사실을 언급했어야 하는데 이런 발언을 한 사실 기록이 없습니다
7. 정작 당대 거란의 요사 지리지는 동경요양부 지역이 고조선과 광개토태왕과 장수왕의 땅이었으며 고구려 수도 평양이 있던 곳이라고 적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