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문화사적으로도 3~5세기 고구려의 유물들은 선비 계통 또는 선비와 관련된 것들이 매우 많다. 기와의 끝부분 장식인 와당인 권운문 와당과 연화문 와당의 기원을 북위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삼연계 유적인 랴오닝성 북표현 라마동 고분군의 출토품들에서도 각종 마구(馬具)의 갖춤새들이 비슷하다. 출자 나무위키
라마동고분, 왕분산, 서단산 등 삼연 분묘의 특징은 목곽묘, 석곽묘, 석실묘, 전축분 순으로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한편 특이한 사항으로 벽감(壁龕)3이 부장공간의 기능을 하는 점이라고 하며, 중원문화와 선비문화의 유물들이 함께 출토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삼연문화는 등자, 보요, 장신구 등은 고구려 고분에 출토되는 마구와 보요 등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4세기 중반 전연 대에 영향을 받은 것인데 점차 삼연문화의 마구와 보요와는 다르게 제작되었다고 한다.
모용희가 고구려 침공과 전연 풍발의 망명이 고구려한테 많은 영향 줬나요 아니면 단순한 물적 교류였으면 적국 전연와 왜 물적교류을 했나요? 그리고 고구려 의복과 풍습이 산비족와 비슷한것이 있나요? 많은 질문 했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