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몇달째 고려 강역사 연구한 것을 정리하고 있어서 여력이 없습니다
지난 5 년 동안 이곳 동아게에서 백제 문제를 가장 많이, 가장 자주, 가장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유저를, 게시판을 갈무리해서 보시면 뜻밖에도 저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뻔히 지도로 제시한 반론을 가지고 육하원칙 운운하시는 것은 지나친 태도십니다
그게 쉬운 지도처럼 보여도 근 1년 6개월의 기백 개 연구를 집약한 것입니다 모두 제 자력으로 연구한 것이고요
저는 이곳 동아게에서 몇 가지 가정, 또는 추정을 했습니다
1. 초기 백제는 고구려에서 그렇게 멀리 이주해 자리잡지 않았을 것이다
2. 초기 백제의 일부는 고구려에 속한 한 세력으로 더부살이를 했을 것이고, 속해 있다가 이탈한 집단도 있었을 것이고, 처음부터 속하지 않은 집단도 있었을 것이다
3. 요서백제는 왕망의 신나라 이후 조백하, 또는 난하 바깥 지역에 후한 때까지 발생한 힘의 공백, 그리고 이후 공손씨와 모용선비, 이 시기,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구성해볼 수 있을 것이다
4. 후한이 낙랑을 접수한 것은 고구려의 방관에 따른 것으로 고구려는 이들 지역을 조차지, 또는 홍콩이나 마카오를 대하는 중국처럼 삼았을 것이다
5. 고구려 초기에 부용한 마한은 백제일 가능성이 있다
6. 만약 요서백제가 발해(현 천진ㆍ창저우ㆍ빈주 일대)와 산동지역으로 이동해 근거하였다면 5호 16국, 특히 모용선비의 하북 진출의 진퇴거듭의 연대기 속에 틈이 있었을 것이다
7. 부여유민과 백제와의 커넥션은 검토할 수 있는가
8. 회수 이북의, 현 산동지역은 북위 태무제 이후 북위 영토였는데 강하게 상충하는 기록을 어떻게 풀 수 있는가
ㅡ 이게 핵심 1
9. 당시 국제 정세는 어떻게 흘러갔고, 백제는 어디에 주력했는가
ㅡ 이게 핵심 2
논리가 서지 않으면 주장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논리는 어디까지나 근거에 바탕하고
과학적 계산을 거쳐서 나옵니다
사료가 정면으로 상충하면
그것들은 어느 한쪽만 절대 선택할 수 없습니다
요서백제는 가능성이 높다
산동백제는 가능성이 적다
즉 이러한 추정결론밖에 내지 못 하는 것입니다
일전에 "누구나 다 아는 사실 가지고 누가 더 잘 추론하느냐"가 관건이라 하셨는데 그 누구나 아는 그 사실도 누군가 여러 사람의 생고생이 바탕된 것이고, 아무도 모르거나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기록, 시각, 접근론을 찾으려 끼니 거르며 밤을 새는 저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선의 백제사는
김상 선생의 삼한사의 재조명에서 열쇠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김상 선생님은 예전에 몇 번 말을 걸었는데 취급을 안 해주시더군요 당신이 보시기에 제가 같잖아 보이셨나봅니다
이 지도는
김영덕 교수님의 연구를 바탕한 것입니다
더하여서
동아게에서 제가 몇 번 주장한 바가 있는데
조선과 일본 사이의 대마도의 성격에서 어쩌면 산동이든 요서든 마지막 힌트가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더 덧붙이자면
5호 16국보다 더 어지러웠던 중근세 유럽사에서
백제사의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김영덕 교수님은 좌현왕 여곤이 왜왕 무, 우현왕 여기가 큐슈지역 다무로의 후왕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