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는 우랑카이 에서 나온말로 몽골의 북부 고원지대에 살던 부족을 몽골초원에 살던 부족이 부르던 이름입니다.
스키타이 복식은 한복의 원류로 여겨지며 가장 흡사한 모습은 고구려 벽화에 나온 고구려 복식과 거의 동일합니다.
백제역시 고구려에서 갈라졌으니 삼국의 복식은 모두 스키타이의 복식과 유사했다는게 되겠죠.
스키타이란 부족은 동유럽에 접해있던 유목민족입니다.
유목민족의 특성상 이들이 이런옷을 대량으로 생산해서 입어 퍼트렸다 보기보다는,
좀더 크고 강한 집단인 동북아의 흉노나 고조선의 복식이 비단길을 타고 스키타이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게 옳겠죠.
위서 논쟁이 있는 한단고기의 기록상 흉노의 기원은 고조선에서 분리된 부족으로 볼수있고,
애초에 중원대륙 북부를 포함한 동쪽과 북쪽은 이(夷)족이 있던 땅으로,
이족에는 아홉종류 구이가 있고 중원기록상 구이는 같이 움직인 집단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들 구이가 구한(韓), 구려(黎) 라고 불린 세력과 동일 세력이었던걸로 볼수있고,
중원 기록상 황제와 전쟁을 했던 치우가 이끌던 세력의 이름이 구려 였습니다.
한단고기상 치우는 단군 혹은 부단군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이 구려를 고조선으로 볼수있습니다.
한단고기 기록을 제외해도 당시에 동북아에서 중원에 대항해 이런 연합세력을 이끌었을 만한 세력집단이 고조선밖에 없죠.
이후 주몽의 고구려가 이 구려라는 이름을 계승했고, 다물정신을 내세워 서진정책을 내세웁니다.
이후 고려시대 요동의 달단인의 고려에 대한 동족개념, 거란의 고조선의 팔조금법등을 볼때 몽골, 만주, 요동, 한반도는 비슷한 문화를 가졌다고 볼수있습니다.
이는 고조선의 영향으로 볼수있습니다.
신라 호공이 마한왕을 만나는 자리에서 신라에 2의 대인이 나왔으니 마한왕보다 아래의 세력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죠.
이 기록상의 2의 대인이 누구를 말하는것인지는 알수없으나 당시 시대의 마한왕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권위를 가진 인물로 추정할수 있습니다.
그게 명목상인지 실질적인 힘을 가진 세력가인지는 알수없지만요.
원래 한반도의 신라, 온조의 십제(훗날의 백제)는 마한왕 아래에 속한 세력이었습니다.
백제가 마한이 된것은 백제가 힘이약해진 마한왕을 몰아내고 이 타이틀을 차지하고 난 이후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마한을 고구려로 보는 시각과 마한을 백제로 보는 시각이 나온것으로 추정합니다.
당시의 마한이란것은 고조선의 마한이 계속 내려온 것으로 고조선의 삼한중 하나로 일제시대 정립된 한반도 남서부가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는 개념입니다.
원래 고구려, 백제 둘다 고조선 진한(부여)출신 국가지만 마한의 통치권을 주장하며 마한왕을 칭하며 마한연맹국들을 복속시키려 한것이라 생각해 볼수있습니다.
그래서 초창기와는 달리 형식적으로나마 마한에 속했던 신라와 가야가 마한의 맹주가된 백제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