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건국 설화에는
환인의 서자 환웅이 3천명을 거느리고 와서 토착 세력과 나라를 세웠다고 했습니다.
토착 세력과의 융합은 인간이된 곰과의 사이에서 탄생한 단군을 말하는것이고
3천의 무리는 3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던 천문 철학에 바탕을둔 것일겁니다.
굳이 서자라는걸 밝히고 있는것은 이것이 후대의 창작물이 아니라 그시대 부터 내려오던 실존인물에 근거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하죠.
고조선을 이루던건 예맥족 이라고 하죠.
예족 + 맥족이 합쳐진 나라라는 것이죠.
이 민족 융합의 대략적인 모습이 단군설화에 나오는 모습 일겁니다.
결혼동맹을 통한 토착세력의 흡수라는 것이죠.
이 결혼동맹 성격의 국가건설은 그후 백제에서도 나오는 모습이고
고대의 일반적인 부족, 국가 연합의 형태입니다.
고조선을 근대에 제정일치로 권력이 집중된 강력한 군주 국가로 정의를 내리나
이는 서양의 과거 군주제 정의를 참고한 결론이고
느슨한 연맹 체제로 보는게 옳을겁니다.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의 초기모습을 봤을때 고조선도 이와 유사한 정도의 왕권과 체제를 가지던 국가로 봐야하는게 맞습니다.
고조선의 지도자가 강력한 권력을 가졌다면
그 이후 이를 계승하는 국가들의 지도자들도 그런 권력 형태를 실현하려 했을것이고
구성원들도 관습을 따라 이를 인정했을겁니다.
고조선의 멸망 관련해서 떼어놓고 생각할수 없는 국가가 부여입니다.
부여라는 국가이름은 굉장히 여러곳에서 나타납니다.
갈사부여, 남부여, 북부여 이런 부여라 부르는 나라들 뿐만아니라
비려, 비리 이런 나라들도 부여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라고 하며
한반도의 황산벌, 달구벌의 벌도 부여의 의미입니다.
부여의 기록에는 부여에는 단군도 있었습니다.
고조선의 정치적 중심지는 단군이 있는곳이 아닐까합니다.
먼저 위만조선 이전 기자조선의 탄생 배경을 생각해봅시다.
상나라 왕족인 기자가 나라가 망하며 유민들을 이끌고 탈출해서 망명한곳이 고조선 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때 기자조선은
기자를 왕으로 삼고 상나라 유민들을 백성으로 정착시킨 자치지역 성격의 지방 세력이었을 겁니다.
아무리 같은 동이족이라고 하지만 나라 잃고 망명온 다른 나라 왕족이 갑자기 고조선 단군이 되었다는건 말이 안되는 억지죠.
고조선이라 하는 위만 조선을 아무리 높게 쳐줘봤자 고조선 3한, 3조선 체제에서의
번한 지역에 한정되는 세력을 가진 집단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고조선 체제는 외부 전쟁의 영향도 있겠지만 고구려의 부여에서의 독립과 이로인한 권위상실같은 내부적인 결속력 약화로 서서히 사라졌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