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진왕(백제왕)왕이 칼을 보냈는데 아직 自立爲王(본즉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대외적으로 '세자'자를 붙여 백제왕이 아니라 백제왕제자를 칭하게 됩니다. 이것이 백제 진왕제의 여러 원칙들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칼을 보낸 사람은 다음처럼 써야 합니다.
百濟王世子
----> 마치 사실인양 단정하고 계시네요...
이렇게 단정하는 근거가 무엇인가요?
진왕 체제 어쩌고 하는 황당무계한 얘기 말고요...
칠지도는 일본의 주장처럼 가야 7국 평정을 도와줘서 감사하다고 준 것이 아닙니다.
369년 고구려와의 치양전투에서의 승전과 관련이 있습니다.
칼을 만든 쇠도 치양과 가까운 곡나철산의 철로 만든 것이고요...
백제왕세자가 뜻밖에 아들(왕자)을 낳았다 입니다.
기(뜻밖에) 생(낳다. 타동사) 성음(세시무, 세무, 왕자를 지칭하는 일본서기 고훈이 세무입니다. 이는 백제식 성음을 음대로 읽어서 세무가 된 것입니다.)
모두를 번역하면
"백제왕세자가 뜻밖에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왜왕으로 삼기 위해 이 칼을 만들도록 명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여라"
가 됩니다.
칠지도는 근구수왕의 아들이 일본의 왕이 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가지고 건너간 온갖 병화를 물리치는 칼입니다.
369년에 만들어져 전해진 것은 372년인데,
왕손의 나이 3세 때입니다.
일본의 신대기에 일본을 건국하는 천손이 어린 영아의 상태로 지상에 내려보내 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몇년 후 왕인이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간 이유도 어린 왕자의 교육을 위해섭니다.
그렇지 않다면 백제 최고의 석학이 천자문을 가지고 간 것을 굳이 일본서기에 기록할 이유가 없습니다.
서울대 총장이 어린이 학습서를 가지고 간 격이니 말이죠...
일본서기의 기록으론 당시 왕인이 왕자인 응신을 교육하기 위해 일본으로 간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왕인의 일본에서의 행적은 오로지 인덕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일생을 인덕을 위해 일했는데,
인덕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그의 보좌역을 맡아 했으며, 그의 무덤도 인덕의 왕궁 뒤에 지어집니다.
그리고
일본서기 신대기에도 칠지도의 문구와 똑같은 상황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일본최고의 부부 신인 고황산영존과 천조대신의 아들이 일본 땅에 나라를 건국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보내집니다.
그런데 뜻밖에 아들이 손자를 낳아 그 손자를 대신 영아의 상태로 지상에 내려 보냅니다.
내려갈 때, 칼과 동경, 오곡등을 같이 내려보냅니다. (근구수왕의 아들도 칠지도와 동경(인덕릉에서 발굴된)을 가지고 갔어요)
일본서기에도 칠지도처럼
"고황산영존과 천조대신의 아들 천인수이존이 뜻밖에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아 이이를 위원중국(일본 땅)의 왕이 되게 하기 위해 내려보낸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칠지도의 기록
"백제왕세자가 뜻밖에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아들을) 왜왕으로 삼기 위해..." 같은 내용을 담은 기록 즉, 실제의 상황인 칠지도의 내용을 일본서기 기록자들이 신화의 형식으로 담은 것이 일본 서기 신대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