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발견된 유물, 유적이 100% 다 낙랑군 꺼라는 증거 있어요?
고작해야 중국계나 고구려계 유적, 유물에 슬쩍 낙랑 유물 던져 놓고 낙랑 꺼라고 사기치는거잖소!!
가짜 속에 진짜 슬쩍 끼워놓고 유물 조작하는건 전형적인 유물 조작인데
"아무리 일본이 날고 기어도"라니 보자보자 하니까 홍위병 티를 내도 너무 내네요?
당신은 강단 홍위병이니까 매사가 회의적이겠지만
고고학자들한테 가서 한번 물어나 보시지요?
저 정도의 조작을 실제로 얼마든지 가능한데 공부를 전혀 안하시나 보네요?
그리고 뭐요?
"복제도 모본이 있어야지 똑같이 만들 수가 있는데 모본이 없는 상태에서 무슨 복제를 했겠냐고?"
전형적인 일제 식민사관 숭배 강단 "유사사학자" 패거리 식의 맨트구려?
어디서 일뽕 한 사발 거하게 들이키고 오셨소?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당시 한중일 골고루 돌아다니면서 얼마나 유물 밀반출 밀반입 복제하고 다녔는데
설마 그럴 리가라니 ㅎㄷㄷ
증거 하나 보여 드리지 어차피 당신이야 여전히 식민사관만 맹종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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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 7년(1918) 3월 20일 맑음 북경
(중략) 유리창의 골동품점을 둘러보고,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위하여 한대의 발굴품을 300여 엔에 구입함
대정 7년 3월 22일 맑음
오전에 죽촌씨와 유리창에 가서 골동품을 삼. 유리창의 골동품점에는 비교적 한대의 발굴물이 많아서, 낙랑 출토품은 대체로 모두 갖추어져 있기에, 내가 적극적으로 그것들을 수집함
내가 보기에 저 정도라면 대정 7년 한해만 해도 중국 유물을 몊 트럭은 국내로 밀반입했겠구만 ㅉㅉㅉ
이 정도면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유물 조작 알리바이가 충분히 성립하는 거 아닙니까?
세키노 타다시가 자기 일기책에 자기 손으로 직접 적었으니 협박이나 조작일 리는 없겠죠?
저자 주장에 따르면 대정 10년(1921)의 물가로는 1엔으로 쌀 5kg을 살 수가 있고
대졸자나 엘리트 은행원 월급이 50엔 정도(351p)였다는군요?
더 놀라운 것은
총독부 부탁으로 그 유물들을 300엔으로 사 들인건 첫날이고
며칠 후에 또 본인이 개인적으로 눈에 보이는 한대 낙랑 유물이란 유물은 다 싹쓸어서 사 들입니다.
세키노가 조선에 머무는 동안 중국에 한번만 갔을까요?
한번 갔을 때 사 들인 것만 해도 저 정도인데 5번 10번 갔다면?
또 본인이 직접 사지 않고 남의 명의로 사거나 아예 일본군들 도움을 받아 비밀리에 살 수도 있겠죠??
결론은
모본 모본 하는데 몇 트럭이나 되는 모본을 조선총독부의 부탁으로 저렇게 밀반입 했을 정도면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낙랑" 글자가 찍힌 기와, 와당, 토기 따위는 우습게 위조할 수 있었다는 거죠.
이래도 "설마 우리 위대한 대일본제국의 사학자들께서 그러셨을 리가"라면 머 도리 없고 ㅉㅉㅉ
전 잘 모르지만... 유물 팔아서 돈벌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그것을 뺀다면 유물조작하는 이유는 두가지가있겠죠... 개인적인 이유로는 자신의 이름을 날리고 싶어서, 어떤 유물이나 학설을 처음 발견해내면 발견자이름에 자기가 들어가니까요.
국가적인 사업이었다면 남의 나라를 깎아내리고싶어서인데 이정도수준은 개인적인 수준에서 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게 아니라면 개인들이 집단적 수준에서 조작했다는건데 이건 그냥 역사학계 자체가 썩어빠진거고...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별 증거가 없는데 학설을 끼워맞춰야하니까 조작을 하는거죠 보통은... 다른 증거가 있다면 굳이 조작할 필요가 없죠.
사마천의 《사기》[1]를 시작으로 하여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25종의 기전체 사서를 의미한다. 한대 이후 고대 중국은 이전 왕조의 역사를 그 다음 왕조에서 정리하여 편찬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으며, 25사는 바로 이러한 전통의 산물이다. 이는 왕조국가 시대뿐 아니라 현대에까지 이어져,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청나라의 사서를 공식적으로 집필하는 작업인 청사공정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현대 중국에서 정본처럼 여겨지고 있는 중화서국 점교본에 대한 새로운 표점교감 공정 역시 이뤄지고 있다.
- 일단 나무위키에서 펌 했습니다. 나무위키를 별로 신용하지는 않지만 위 내용은 큰 무리가 없기에 펌 했습니다.
윗 내용에 나와 있듯이 전 왕조를 계승하고자 하는 후 왕조가 편찬한 사서를 정사라 여깁니다. 그래서 만주원류고는 정사가 아닙니다. 청사의 정사는 아직 집필 중에 있죠.
현 중화인민공화국은 청사를 발간 함으로써 자신들의 청나라의 후계자임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것 입니다. 반면 고구려 신라 와 백제에 대한 사서는 발간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 삼국과 현 중국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여기서 일본의 조선사 편찬이 무슨 의도냐는 것이죠. 일본은 조선을 계승하고자 그런 짓을 했느냐는 것 입니다.
보편적 일반적인 상식에 의거하면 일본은 조선을 계승 하였음을 공식 천명 한것이고 이들이 편찬한 조선사는 정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