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사극 드라마에선 전투능력없고 욕심만 많고 약탈만 많은 인물로 묘사하는데
처음 명군이 조선으로 병력을 파병할떄, 명의 중앙군을 파병하기엔 준비시간이 너무 부족했기떄문에
처음 파병된 5만여 병력은 대부분 이여송의 사병들입니다.
대다수가 요동에 주둔한병력이기때문에 조선과 거리가 가까웟죠..
그 5만중 3만은 기마병일정도로, 병력의 퀄리티는 높은편입니다...
그리고 만력제는 시간이 지나면 명의 중앙군(남병) 6~9만을 추가 파병할것을 이여송에게 약속합니다.
문제는 평양성 탈환하고 얼마 안되서 보급이 끊겨 버립니다...
전후사정을 본다면 조선에서 약속한 보급이 예상보다 빨리 끊겨버렷고..
설상가상으로 명에서 들고온 식량도 의주에서 빈약한 도로사정과, 운송수단 부재로 막혀 버립니다..
이여송이 데리고온 군마 3만마리는 2달여만에 1만 5천마리가 굶어 죽어버리며 사실상 붕괴에 다다릅니다
병사들도 이틀에 하루꼴로 굶는 상태며, 풀을 뜯어먹거나 죽은 말시체로 연명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이여송 휘하 병력 8천명이 요동으로 돌아갑니다.
이여송은 멘붕에 빠지고 휘하 장수들은 그냥 모두 요동으로 철군하자고 합니다.. (보급이 안되니까)
근데 이여송은 눈물을 흘리며 의리상 철군을 할수 없다고합니다.
결국 배고픈 병력들은 약탈을하게되고.. 이여송도 자기 병력이 굶어죽고 사기가 떨어지니까 어쩔수 없이
묵인하게 됩니다.. 일본군이 한양을떠나기전 이여송의 군마 2/3이 결국 굶어죽습니다..
당시 기병 1명이 보병 10명의 가치를 가졌으니.. 솔직히 말해서 이여송의 수많은 군마와 사병을 잃으면서
입은 손해는 이만저만이 아니엿죠.. 그런데도 철군을 안했으니
설상가상으로 명의 조정에서는 그해 가뭄이 들어 약속했던 추가 병력 6~9만파병이 취소가 됩니다
당연히 이여송은 전투에 소극적이 될수밖에 없습니다.. 보급 사정은 일본군보다 더 안되지..
그리고 한양에 일본군들은 후방 병력까지합세해 숫자가 6~7만에 이르는등 이미 조명연합군의 숫자를
훨씬 상회하게 됩니다....
벽제관 전투에서 참패 했다고 하는데 실상 그렇지 않습니다
명군과 일본군 피해는 서로 사상자 3천명으로 엇비슷합니다...
문제는 일본군이 한양을 사수하기위해 거의 6~7만이 집결했기때문에..
이미 조명연합군에 전투력이상으로 보강된상태이므로 어자피 싸워도 별 가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명 조정에서 약속한 추가파병도 취소됬으니
이여송입장에선 계속 관망밖에 할수 없는상황이엿죠.
결국 휴전은 됬지만 그결과로 이여송은 자기 사병과 군마만 엄청나게 잃고 어떠한 보상도 당연히 못
받았음.. 당시 기병의 가치가 엄청나게 높았던 고려하면 솔직히 이여송은 억울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임진왜란 발발시
<명나라 원병군 규모>
1차 조승훈 군대 3,000명
2차 이여송 군대 43,000명
3차 유정 군대 100,000명
4차 만세덕 군대 140,000명
총 28만6천명 (조선군의 2배되는 물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