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일화가 재미있는데, 영국해군은 엄밀히 말해 침략군으로서 들어왔지만 마찰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대민 물의를 최소화하려는 지휘관의 명령으로 주민들 거주 구역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특히 여자들과의 충돌이 있을까봐 빨래터 근처를 지날 때는 각별히 주의를 가해 여자들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1.노역시 급여를 제공한 영국: 오히려 거문도 주민들이 영국해군을 반기기까지 했다. 이유는 거문도를 거점으로 삼은 영국해군이 진지보수나 포대 설치 작업시 부족한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거문도 주민들을 고용하여 작업에 동원했는데, 보수는 물론이고 식사까지 챙겨주고 아픈 사람은 군의관이 치료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영국 화폐(파운드)는 조선인들에게 쓸모가 없어서 통조림이나 술 등의 물건으로 지불했다고 한다.
당시 조선은 관의 착취 등으로 민초들의 생활이 피폐해진 상태였는데, 일은 일대로 죽어나게 시키면서 백성들 등처먹는 지방관아들의 행태와는 달리, 덩치 큰 유럽인들은 일을 시키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 주니 오히려 주민들이 영국해군을 물심양면 도와줬다고 한다.
그래서 2년 후 철군할 당시 주민들이 매우 아쉬워했다고 한다.
한 예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도 일본군은 민중들에게 "왜놈들이 우리 땅에서 설치는 게 기분은 나쁘지만, 그래도 뭐 주는 거도 없이 무작정 시키거나 뺏어가는 관군과 달리 뭐라도 쥐어주더라."라는 평을 들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환심을 사서 길들인 주민들을 이용해서 나중에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할 때 그들을 앞잡이로 활용하거나 인근 다른 지역, 정부군을 상대로 분쟁을 유도하게 해서 손 안쓰고 코푸는 격으로 쉽게 점령하거나 노동력과 물자를 충족하는 경우도 많았다.
애초에 영국은 전략적, 외교적 차원에서 거문도에 상륙했기에 영구 점령이 목적이 아닌만큼 괜히 주민들을 부정적인 방법 또는 물리적으로 건드렸다가는 러시아가 제대로 개입할 수 있는 구실만 제공해서 문제가 커질 수 있기에 우선은 주민들의 호의를 살 필요가 있었다.
2.거문도 여자와 영국해병의 사랑: 야사에 따르면, 거문도에 살던 젊은 여자 무당에게 반한 한 수병이 몰래 수영을 해서 만나다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니면 쓰러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사건은 없었다는 것이 연구 결과이나 이런 야사가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영국군과 거문도의 백성들이 친밀했다는 이야기의 반영이라는 평가가 많다.
10여년 전 방영했던 거문도 점령 관련 다큐멘터리에서는 거문도 주민이 전혀 다른 에피소드를 들려줬는데 당시 영국 수병이 무당 혹은 과부를 밤에 몰래 몇 번 찾아갔다가 발각되었고 조선의 남녀유별 전통을 잘 아는 지휘관이 장병들과 거문도 주민이 보는 앞에서 강도높은 처벌을 했는데 수병을 뱃머리에 세워두고 걷어차서 수병을 바다에 빠뜨리면 수병이 헤엄쳐서 배에 오르고 배에 오르면 다시 뱃머리에 세운뒤 걷어차서 바다에 빠뜨리는 걸 몇 번이나 반복해서 거의 반죽음 상태에 이르러서야 처벌을 그쳤다고 한다.
아마 이 에피소드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로 와전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강도 높은 처벌이 본보기가 되어 특별히 알려진 대민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3.사진을 처름 본 거문도 사람들(feat 소도둑질): 당시 영국군이 장병들의 식량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상당한 숫자의 소를 구입해서 거문도 산간에 방목했는데 특별히 지키는 사람을 두지 않는 걸 보고 동네에 살던 점잖아 보이는 노인 한 명이 그걸 매일 한 마리씩 훔쳐갔다고 한다. 영국군은 소가 한 마리씩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자 몰래 숨어서 훔쳐가는 사람의 사진을 찍었는데 소가 사라진 다음날 노인을 붙잡고 훔쳐간 소를 돌려달라고 하자 노인은 딱 잡아땠지만 영국군이 노인이 소를 몰고가는 사진을 증거로 내밀자 결국 훔쳐간 걸 시인하고 소를 돌려줬다고 한다. 당시만해도 거문도 사람들은 사진의 존재를 몰랐는데 실물과 똑같은 모습이 그림 안에 들어있는 걸 보고 다들 놀라며 신기해 했다고한다.
4. 개사냥: 한번은 빅토리아 여왕의 생일날에 축포를 쏘기로 했는데, 주민들에게 함포 소리에 놀라지 말라고 미리 당부를 해뒀었다. 주민들은 대포 터지는 것을 구경하러 나갔는데 문제는 이때 개들이 포 소리에 놀라 다 산으로 도망갔고, 영국해군 에서는 외교 문제를 고려하여(?) 해병대원들을 풀어 개 수색에 나서게 했다.
5.통조림, 축구와 테니스를 처음접한 거문도 사람들: 그 밖에도 조선에서 최초로 축구 또는 테니스 를 했다거나, 통조림을 먹었다거나 하는 일화도 있다.
6.전 세계 모든 전함이 다 출동한 거문도: 하지만 영국해군을 경계하기 위해 들어왔던 다른 나라의 군대들은 대체로 주민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러시아 해군은 군기가 문란하여 행패를 자주 부려 주민들과 자주 충돌했고, 프랑스 해군 은 가는 곳마다 측량을 하겠답시고 지붕 위로 뛰어다녀서 주민들의 원성을 샀다. 네델란드 해군은 "주민들의 곱게 테를 두른 모자가 인상적이었으며, 가는 곳마다 깃발을 많이 휘날렸다~고 회고했다. 7. 60년대 까지 기억되었던 영국군의 추억: 1960년대에 그때까지 살아있던 거문도의 90대, 100대 노인들에게서 영국군의 지배가 어땠는지를 묻는 설문 조사가 있었다. 노인들은 영국 해군들에게 배운 영어와 요들송을 그때까지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