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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31 15:10
[한국사] 영국의 거문도 점령의 진실(조선의 반청.친러동맹...즉 인아거청을 중심으로)
 글쓴이 : history2
조회 : 2,160  

188477일에 러시아와 조선이 직접 수교를 하고, 동년 124일 갑신정변으로, 청군이 진압하였다. 이에 청의 내정 간섭이 증가하자 조선조정이 러시아와 힘을 합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문의 진상은 알 수 없으나 어느 정도의 근거는 있었다. 당시 고종은 인아거청(引俄拒淸), 러시아를 끌어들여 청의 영향력을 줄이려 하였다.


러시아의 남하정책.jpg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영국의 인도정책이 만난, 아프가니스탄 
천혜의 요새 거문도.jpg
                                         천혜의 해양 요새...거문도(두 섬이 동그랗게 천연 항구를 만들어 줌)

고종은 김용원(金鏞元권동수(權東壽) 등을 비밀리에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해 러시아 관리와 약정을 맺었다. 그 내용은 김옥균(金玉均)이 러시아 영토에 가면 압송해줄 것, 일본의 보상금 요구를 파기시켜줄 것, 조속히 조약을 비준하고 육로통상을 체결할 것, 러시아 군함이 한국 연해를 보호해줄 것 등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러시아 정부는 보호 약속보다는 통상조약 추인과 육로통상, 안전에 관한 토론 용의 등에 대해서만 회답했다.

 

한편 1885, 갑신정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서상우(徐相雨묄렌도르프는 비밀리에 주일 러시아 공사 다비도프와 만나 러시아 훈련교관의 초빙과 영흥만 조차에 관해 협의했다. 묄렌도르프는 귀국하여 비밀교섭의 경위를 고종에게 보고하여 윤허받았고 이에 정부간 정식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주일 러시아 공사관의 스페이에르가 입국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외아문독판 김윤식(金允植)은 청의 총판상무(總辦常務) 진수당(陳樹棠)과 일본대리공사 곤도 신스케(近藤眞鋤)에게 밀약 사실을 알리는 한편, 스페이에르에게 현재 미국 교관의 초빙 교섭을 진행하고 있기에 러시아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통고했다. 18857월 묄렌도르프는 이런 행보가 들통나자 청의 압력에 의해 물러나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과 러시아의 연대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를 확인한 영국은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런 러시아의 행보는 영국에게 조선을 통해 극동-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행보로 여겨졌던 것이다. 깜짝 놀란 영국이 러시아 해군의 동태를 감시하고 유사시 러시아 함대의 남하를 막기 위한 일종의 중간보급기지 및 해안포 진지로서, 자기들이 명명하기로는 포트 해밀턴(port Hamilton, 해밀턴 항), 바로 거문도를 골라 점령했던 것이다. 이 때가 1885년 음력 3, 양력으로는 4, (조러수호조약 체결로부터 1년이 안되는 시점)이다

 

영국 해군은 1885년 거문도를 침략해 포트 해밀턴으로 부르고 유니온잭을 게양한다.


거문도 3.jpg

거문도 해군막사.jpg
                          거문도에 건설한, 영국군 막사(그들은 전신선 까지 부설해서 영구점령을 획책한다)

조선은 관련 당사국 -러시아, , 일본, 조선- 중에서 가장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고, 뒤늦게 항의를 했지만 영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문도1.jpg

거문도5.jpg
                                                   거문도 주민과는 사이가 좋았던 당시, 영국 해병들 


제일 먼저 소식을 접한 것은 청나라였다. 영국은 청나라의 도움을 받으려고 청의 조선 종주권을 지지한다는 유화적 제스쳐에 나섰으나, 청의 이홍장 역시 "한번 조차시켜 주면 끝이 없다"라며 영국의 조차를 막으려 나섰다.

 

 

이 사건은 러시아와 영국의 글로벌 패권싸움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터졌다.

당시 영국과 러시아의 긴장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고조됐다.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 북부 국경지대를 침공한 탓이다. 영국의 거문도 점령 17일 전이다.

 

영국군을 대리한 아프간 부대는 속수무책이었다. 이 전쟁으로 부동항을 노리는 러시아 남하 야욕이 분명해졌다. 영국은 초긴장 상태가 된다.

 

1858년 영국령으로 편입한 인도가 위험해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국 의회가 거액의 전시예산을 서둘러 편성한 까닭이다.

얼마 뒤 유탄은 엉뚱하게도 한반도로 튀었다. 영국 함대가 거문도를 탈취한 것이다.

러시아 남하와 부동항 확보를 막는다는 게 명분이었다.

거문도 해병무덤.jpg
                                          거문도에 남아있는 영국군 수병의 무덤

 

거문도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 꼴이 됐고 한반도에는 전쟁 기운이 감돌았다.

일촉즉발의 긴장은 2년 만에 정상을 되찾는다. 러시아가 아프간 점령지를 중립지대로 양보한 결과다.

 

이 러시아와 영국의 갈등의 시작은 1853년 시작한다. 러시아와 영국 주도 연합국이 흑해 주변에서 전면전을 벌인 것이다. 전쟁 본질은 중동을 둘러싼 열강들의 이권 다툼이었다.

싸움터인 크림반도 지명을 따 크림전쟁으로 불린다. '백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간호사로 활약한 것으로 유명하다. 4년간 계속된 전쟁은 러시아의 완패로 끝난다.

 

러시아는 흑해 진출이 막히자 인도양 부동항을 노리고 아프간을 침공한다. 당시 국제정세를 보면 거문도 사건 배경을 읽을 수 있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서술한 거문도 사건 원인은 자연스레 설득력을 잃는다.

교과서는 러시아와 조선의 비밀협약에 자극받은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했다고 설명한다.

점령 시점만 봐도 교과서 논리는 빈약해진다.

 

영국은 거문도 점령, 두 달 만에 -러 밀약설을 접했다고 최덕규 박사는 주장한다.

청의 조선 간섭을 막으려고, 러시아가 군사교관을 파견한다는 게 소문의 요지다.

교과서 학설은 식민사관의 잔재로 보인다. 조선이 외세 침략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일본 학계 시각과 일치한다.

 

거문도 사건 이후에도 한반도 안보는 살얼음판이었다. 급기야 고종은 1904년 러일전쟁을 앞두고 영세 중립국을 선언한다. 전쟁을 피하려는 외교노력이었으나 무위로 끝난다.

일본이 일방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탓이다.

 

러시아와 영국 힘겨루기는 러·일 전쟁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영국이 지원한 일본이 승리하면서 동북아 세력 균형은 무너진다. 일본이 머잖아 한반도를 강점한 원인이다.

현재 한반도 상황도 그때처럼 사면초가다.

1) 중국 사드 보복, 2)미국 무역 압박, 3)일본 재무장, 4)북한 핵실험 등의 위험요소가 여전히 우라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이에대해 우리는 여전히 고래싸움의 새우같은 상황에 처해있슴이 서글프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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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2 18-03-31 16:35
   
청은 러시아에게 영국의 지지를 받는 것처럼 위장하며 두만강 하류, 즉 연해주 끄트머리의 영유권을 회복하려고 들었고 그 덤으로 자그만치 *** 청한 종속관계***를 러시아에게 인정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이렇게 청이 두 열강 사이에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간을 끄는 사이 거문도 점령은 1886년 가을까지 지속되었다. 조선은 그해 7월에 러시아에게 다시 보호를 요청했으며, 위안스카이는 고종을 폐위하려는 건의까지 올린 상황이었다. 청은 국제 외교 무대에서 조선이 속국이므로 외교권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였고, 이에 회답하는 나라는 없었지만 거꾸로 이를 반대하는 나라도 없었다.
history2 18-03-31 16:36
   
영국이 조선을 식민지화하여 동북아의 균형이 깨질 것을 우려한 서구 열강들은 앞을 다투어 거문도로 군함을 파견했는데 이 때문에 거문도는 흡사 세계각국의 군함 전시장처럼 변했다고 한다.
history2 18-03-31 16:36
   
2년의 점령 끝에, 영국은 러시아가 남하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어느 정도 얻고, 동시에 거문도가 생각보다 요새화하기 어려워서 이를 시행하려면 꽤나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랬기에 청의 중재를 담보로 합의 3개월, 점령 22개월만인 1887년 2월 5일 거문도를 말그대로 도로 뱉어내고 철수했다. 또한 점령 시작 때처럼, 조선 정부는 영국 해군의 철수 소식을 가장 늦게 접했다.
history2 18-03-31 16:37
   
이 사건의 결과로 조선이 세계 열강의 주요한 관심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이에 조선에서는 열강의 대립으로 인한 불똥을 피하기 위해 영세 중립국론이 1885년 조선주재 독일부 영사 부들러(H. Budler)에 의한 것과 개화파 계열의 소장관료인 유길준에 의한 것의 두 가지가 서로 관계없이 구상되었으나 주변 열강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호응은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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