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악단은 미국 국가를 연주했으며 황제용 가마를 탄 앨리스는 깨끗이 청소한 거리를 달려 미국 공사관에 여장을 풀었다. 고종은 당초 제물포에서부터 한국기병대 사열과 예포를 발사하는 국빈영접을 계획했으나 일본 측의 저지로 포기해야했다고 한다.
고종은 제물포에서 특별 열차로 엘리스를 서울로 오게 하였는데, 그 열차에는 태극기와 미국 국기 그리고 일본 국기가 가득했다. 대한제국의 황제가 초청하는 것 같지만 특별열차에 일본 국기가 가득 걸려있는 것을 보고 미국 대통령 딸의 방문이 실제로 일본에 의한 것임을 삼척동자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고종은 서울역에서 각국의 공사들을 초청해서 환영하게 하였다. 그리고 엘리스에게 황실 가마를 제공하고, 수행원들에게도 가마를 제공하였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이후 최고의 예우를 갖춘 환대였다.
재색을 겸비한 21살 처녀, 루즈벨트와 사별한 부인 사이의 외동딸 앨리스는
미국에서도 ‘앨리스 공주’(Princess Alice)라 불리며 매스컴의 인기를 독차지할 때였다.
재클린 케네디보다 더 아름다웠다는 대통령 딸은 ‘드레스를 입은 야생동물’이란 별명처럼 ‘튀는 행동’으로 유명하여 보도경쟁의 아이콘이 되어있었다.
호기심 왕성한 젊은 처녀는 러일전쟁후 아시아를 구경하고 싶어서 연인 롱워스 하원의원과 육군장관 태프트, 다른 정치인등 일행과 함께 ‘만추리아호’를 타고 미국을 떠났다.
하와이에 들른 후 7월 하순 일본에 도착, '여왕 대접'을 받으며 관광을 즐겼다.
바로 그때 태프트는 루즈벨트의 지령에 따라 은밀하게 일본 가쓰라 총리와
‘가쓰라 –테프트 밀약’을 맺었던 것 이다. 며칠 후 태프트는 미국 땅 필리핀에 으로 가고 앨리스 커플 일행은 망해가는 서태후를 만난뒤, 청나라를 한바퀴 관광한 다음, 역시 위기의 조선 땅을 구경하러 온 것이다.
1905년 9월 22일 오후, 일본 자객들에 의해 희생된 고종의 왕비인 명성황후의 능인 홍릉에 갑자기 회오리 폭풍이 불었다. 그 시간 홍릉에서는 미국에서 온 귀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고종의 특명으로 외교 담당 고문인 독일 여인 엠마 크뢰벨(Emma Kroebel)과 조선 관료들이 먼지 가득한 곳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먼지 바람 가운데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말을 타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 무리 선두에 위세 당당하게 말을 타고 들어오는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자주색의 긴 승마복을 입었고, 승마용 채찍을 한손에 들고 입에는 시가를 물고 있었다.
이 여인은 바로 미국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딸인 엘리스 루즈벨트(Alice Roosevelt)였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전혀 모르는 고종은 미국 대통령의 딸을 공주로 생각하여, 미국 공주 엘리스가 일본으로부터 조선을 지켜줄 것이라 확신하고 국빈으로 환대하였다.
고종은 엘리스를 위해 궁중에서 초청 연회를 베풀고 이어서 명성황후의 능인 홍릉에서 연회를 베풀게 하였다. 그 의도는 일본인에 의해 시해된 명성황후의 죽음을 엘리스가 알게 하여 일본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갖게 하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실제 엄숙한 제사만이 지내졌던 왕릉에서 연회를 베풀게 한 것이다. 그러나 엘리스는 고종의 뜻과 달리 일본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품지도 않고 대한 제국 황실에 대한 예우도 표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한 제국의 그 어느 누구도 감히 올라탈 수 없는 홍릉의 석마와 석양에 올라타고 장난을 치며 황실을 욕보이는 행동을 하였다. 그리고는 남자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소리를 쳤다.
그곳에 있던 조선인들은 그녀의 행동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결례라고 생각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엘리스의 장난을 막지 못했다. 미국의 공주로 불린 엘리스가 아시아의 힘없는 국가 대한제국을 너무도 우습게 알았던 것이다. 이처럼 대한제국을 우습게 여긴 미국은 일본과 연대하여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드는데 동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