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를 과장시키는걸 넘어서 없는 내용을 넣어 날조하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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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 삼국지 위지동이전 동옥저 내용(『三國志 魏書 烏丸鮮卑東夷傳 東沃沮』)
"東沃沮 在高句麗蓋馬大山之東 章懷注, 其山在今平壤城西."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 고종의 아들인 장회태자가
"고구려 동쪽의 개마대산(갈석산) 동쪽인 동옥저(진황도시)에 고구려 평양성이 있다"
문제점: 사서 원문의 내용은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다. 장회가 주를 달았다. 그 산은 지금 평양성의 서쪽에 있다'이니 이 기록에 나오지도 않는, 진황도 지역에 평양성이 있었다는 주장은 순전히 자의적으로 날조한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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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1) 진황도시 고구려 평양성을 중심으로 동서 3천 1백리이고, 고구려 동쪽 바다를 건너면 신라라고 했으니
☞ 서쪽으로는 산서성 대동시와 북경이 있는 하북성이 고구려 영토였고..
동쪽으로는 고구려 동쪽바다인 요하까지 고구려 영토였으며..
고구려 동쪽 바다인 요하를 건너 요동반도는 신라 영토였다는 말
문제점: 위 날조된 주장의 근거인 구당서 기록의 해석은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온 별종이다. 그 나라는 평양성에 도읍했다. 즉 한나라 樂浪군의 옛 땅이다. 경사(장안)에서 동으로 오천일백리에 있다. 동으로 바다를 건너 신라에 이른다. 서북으로 료수를 건너 영주에 이른다. 남으로 바다를 건너 백제에 이른다. 북으로 말갈에 이른다. 동서 삼천백리이며 남북 이천리다'이다. 즉, 고구려가 지금의 산서성에 이르렀다는 말, 하북성을 장악했다는 말은 없으며 더욱이 신라가 지금의 遼東 지역을 차지했다는 말은 없다. 이 또한 사서 기록을 조작한 왜곡 행위다.
3 주장: 2) 진황도시 고구려 평양성을 중심으로 남북 2천리이고, 남쪽 바다를 건너면 백제라 했으니
☞ 북쪽으로는 적봉을 넘어 대흥안산맥까지가 고구려 영토였고,
남쪽으로는 고구려 남쪽 바다인 산동성 황하까지가 고구려 영토였으며...
고구려 남쪽 바다인 황하를 건너면 산동성에 백제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문제점: 구당서의 남북 이천리라는 말을 두고 본인이 고구려의 평양의 위치로 날조한 진황도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기 이천리였다는 황당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고구려의 강역을 지나치게 키웠으며 '남으로 바다를 건너 백제다(南渡海至於百濟)'라는 기록으로 백제가 산동성에 있었다는 주장은 가치도 없는 쓰레기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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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 한나라 시대에는 하북성, 산서성은 북부여(동호) 영토였고 산동성 강소성 절강성 안휘성은 삼한인 마한,진한, 변한의 영토였습니다
문제점: 역시 아무런 근거가 없는 주장
결론: 사서에 없는 내용을 임의로 조작해 넣어서 근거 없이 주장하는 이같은 행위가 유사사학이다
저런 주장을 하면서 절대로
一. 수나라군이 고구려를 향해 출발한 탁군이 어디고
二. 당나라 수괴가 침략군을 이끌고 출정한 정주가 어디고
三. 영주가 어디고
四. 고구려군이 수나라 30만 대군을 궤멸시킨 림유관이 어디고
五. 고구려와 수나라, 당나라간의 격전지가 어디였으며
六. 수나라와 당나라의 수군이 출정한 곳이 어디였는지를 설명할 수가 없다. 자신의 허술하고 정신승리적인 주장을 무리하게 꿰어맞추기 위해서 다른 수많은 지명들을 무시하는 행태를 벌였기 때문이고 이는 歷史라고 볼 수도 없는 일종의 만행(蠻行)이다.
림유관의 위치: https://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76848&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
영주의 위치: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75471&sca=&sfl=wr_subject&stx=%EC%98%81%EC%A3%BC&sop=and
고구려의 서쪽 경계: https://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83523&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
이런 정밀하고 엄격한 진정한 歷史 연구 앞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지도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