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위
2. 북제~수
3. 당(7~8세기 거란의 활동)
4. 거란(10~11세기)
특히 거란이 성장하면서 지리 정보가 크게 오류에 빠졌다
중국 사서에서 지리정보를 기술하는 방식은
이전 시대 사서의 기술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고 거기에 그 사서 작성 당시 근간의 지리정보를 덧대는 방식이다
경우에 따라서 자국에 불리한 내용은 삭제한다
거란은
그 처음에는 상경도와 남경도가 있었다
그 후에 남경도 지역에 동단국이 옮겨온다
그 후에 하북을 공략하면서 그 땅이 서쪽으로 뻗어갔고
거란 성종이 옛 발해지역을 재공략하여 고려가 먼저 차지한 요심 지역에서 고려를 밀어내고
천산산맥을 경계로 동경도를 확장,
이 와중에 하북에 남경도를 새롭게 옮기고
서로는 난하와 동으로는 의무려산을 경계로 하여
중경도를 신설한다
요사 지리지의 지리상은
11세기 후반의 지리상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거란의 중경도와 동경도는
남경도였다
이런 이유로
요사 지리지에는 영주가 두 곳으로
ㅡ남경도의 영주 인해군(현 하북성 창려현)
ㅡ중경도의 흥중부(현 요녕성 조양시)
가 중복돼 기재돼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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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의 어양 교치와 안동도호부의 평주 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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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군, 즉 영주가 어양으로 교치됐던 적이 있다
구당서 지리지 기준
705년과 720년
또한 안동도호부가
북평군이 있는 평주 지역으로 옮겨 가 있었던 시기가 있다
714년 ~ 743년
북평군 ~ 어양군 300 리
유성군 ~ 안동도호부 270리
이 유성군(영주) ~ 안동도호부 270리를 후대 사서인 무경총요가 그대로 받는다
"東南至安東都護府二百七十里,號平壤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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