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요나라 역사에 관심이 있는건 아니고, 결국 우리역사인 발해가 핵심이겠죠?
요사지리지 동경도 부분이 발해와 연관이 많은데, 이건 대충 봐도 어이가 없을정도로 엉터리다. 이는 이미 오래전 조선후기 실학자들도 요사지리지를 고찰해보고 인정한 것이다. 당장 발해고의 유득공이나, 아방강역고의 정약용 역시 요사지리지의 문제점을 깨닫고 발해관련해서 그냥 무시한다. 그리고 유사사학자들이 친일식민사학이라고 매도하는 한사군 논란에 정약용 선생도 들어갑니다.
자 요사지리지로 돌아와서 왜 요사지리지가 쓰레기인지 말하겠습니다.
요사지리지 동경요양부 부분을 읽어보면 요나라가 고구려 발해 요로 이어지는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억지로 그냥 다 끌어다 잡탕을 만들어버렸다. 이러다보니 요사지리지 동경도의 내용대로 발해의 5경을 찍다보면 발해가 요동반도에 중심을 둔 국가로 바뀌게 된다.
거란의 동경요양부 연혁을 보자면, 한의 양평을 말하다가, 고구려의 평양성, 발해의 중경현덕부를 거론한다.
아마 거란은 자신들이 고구려, 발해로 이어지는 만주지역의 정통성을 자신들이 취한것으로 할려고 고구려와 발해의 수도들을 자신들의 영역안으로 끌어들여, 고구려의 후예를 자청하는 고려와의 정통성 경쟁을 한 것으로 보는게 타당하다.
당연히 고고학적으로 요사지리지에서 언급한 지역에서는 발해왕경급 유적은 없다. 애당초 발해무덤군이나 왕성유적지들은 동경요양부와 연관이 전혀 없는 곳들에 산적해 있다.
요사지리지를 보자면 요양지역은 역대급 지역으로 고구려 발해의 왕경급 유적이 나와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다.
그리고 발해 중경이 요양이라면, 서경압록부의 위치는 더 코메디가 되 버린다.
요사가 최근에 각광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도 이를 가지고, 발해역사를 관심있게 고찰했지만, 그 위치비정이 너무 황당해서, 거의 인정하지 않게 된 것이다. 특히나 문헌만이 아닌 실제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결합해보면, 그냥 쓰레기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발해고를 지은 유득공이 언급했듯이 고려가 발해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은게 참 안타까운 일이다. 발해는 해동성국이라 불렸을만큼 대단한 나라였고, 고구려의 유산과 당의 문물을 잘 받아들여 문화적으로도 상당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발해의 고위직들이 고려로 많이 넘어왔고, 그들과 함께 중요발해의 역사서들도 들어왔을텐데, 고려는 발해의 역사를 무시했다.
이는 발해와 동시대에 있던 고려 입장에서, 고구려의 후예를 놓고, 정통성 문제도 있었기에, 발해의 역사를 무시했을 거라고 본다. 이후 요와 고려는 서희의 담판에서도 보듯이 고구려의 정통성 문제를 거론한다.
아무튼 요사지리지가 왜 엉터리이고, 그 위치비정에 절대적으로 목을 맬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알려드립니다. 그냥 요사지리지 동경도 부분만 제대로 읽어보시면, 그 난잡함에 혀를 내두를 것입니다. 발해고를 지은 유득공 선생도, 처음에 요사지리지 동경도 부분을 인용해서 발해 5경을 위치비정해보려 하셨지만, 후에 이를 대폭 수정해서(요사지리지의 위치비정이 워낙에 개판이라), 현 학설에 비슷한 쪽으로 위치를 이동시킵니다. 당연히 정약용 선생도 요사지리지를 그렇게 신뢰하지 않았고요. 이 분들이 무슨 친일식민사학자들이 아니겠죠?
새해 2019년이 밝았습니다. 동아게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