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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25 13:55
[한국사] 삼국사기로 본 고구려와 신라의 접촉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864  

<고구려 본기>

동천왕
19년(서기 245) 봄 3월, 동해 사람이 미녀를 바치니 임금이 그녀를 후궁으로 들였다.
겨울 10월, 군사를 출동시켜 신라 북쪽 변방을 침입하였다.

22년(서기 248) 봄 2월, 신라가 사신을 보내와 화친을 맺었다.

고국양왕
9년(서기 392)2) 봄, 신라에 사신을 보내 우호를 약속하였다. 신라왕이 자기의 조카 실성(實聖)을 볼모로 보내왔다.

장수왕
12년(서기 424) 봄 2월, 신라에서 사신을 보내와 예방하였다. 임금이 그를 후하게 예우하였다.

38년(서기 450), 신라인이 우리의 변방을 지키는 장수를 습격하여 죽였다. 임금이 노하여 병사를 출동시켜 공격하려 하였으나, 신라왕이 사신을 보내와 용서를 빌었으므로 이를 중단하였다.

42년(서기 454) 가을 7월, 병사를 보내 신라의 북쪽 변경을 침공하였다.

56년(서기 468) 봄 2월, 임금이 말갈의 병사 1만을 거느리고, 신라의 실직주성(悉直州城)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77년(서기 489) 봄 2월,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여름 6월,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병사를 보내 신라의 북쪽 변경을 침공하여 호산성(狐山城)을 함락시켰다.

문자명왕

3년(서기 494)
2월, 부여왕이 처자를 데리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나라를 바치고 항복하였다.

가을 7월, 우리의 병사가 신라의 병사와 살수(薩水) 벌판에서 싸웠다. 신라의 병사가 우리에게 패하여 견아성(犬牙城)으로 들어가 수비를 펼쳤다. 우리의 병사가 이를 포위하였다. 백제에서 3천 명의 병사를 보내서 신라를 구원하므로 우리의 병사가 물러났다.

4년(서기 495) 봄 2월,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큰 가뭄이 들었다.
여름 5월,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가을 7월, 임금이 남쪽 지방을 두루 살피고 돌아다니며, 바다에 망제(望祭)를 지내고 돌아왔다.
8월, 임금이 병사를 보내어 백제의 치양성(雉壤城)을 포위하였다. 백제가 신라에 구원을 청하였다. 신라왕이 장군 덕지(德智)로 하여금 백제를 도와주라 하였으므로 우리의 병사가 물러났다.

5년(서기 496), 제(齊)나라의 왕이 임금을 거기장군(車騎將軍)으로 승진시켰다. 제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가을 7월, 임금이 병사를 보내어 신라의 우산성(牛山城)을 공격하였다. 신라의 병사가 니하(泥河)에서 반격하였다. 이에 우리의 병사가 패하였다.

6년(서기 497) 가을 8월, 임금이 병사를 보내어 신라의 우산성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양원왕
4년(서기 548) 봄 정월, 예(濊)의 병사 6천 명으로 백제의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하였다. 신라 장군 주진(朱珍)이 와서 백제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승리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6년(서기 550) 봄 정월, 백제가 침입하여 도살성(道薩城)을 빼앗았다.
3월, 백제의 금현성(金峴城)을 공격하였다. 신라가 이 기회를 틈타 두 성을 빼앗았다.

7년(서기 551) 여름 5월, 북제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돌궐(突厥)이 신성을 포위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하자, 군대를 이동하여 백암성을 공격하였다. 임금이 장군 고흘(高紇)에게 병사 1만을 주어 그들을 물리치고, 1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신라가 침공하여 10개의 군을 빼앗았다.

영양왕
14년(서기 603), 임금이 장군 고승(高勝)을 보내 신라의 북한산성(北漢山城)을 공격하였다. 이를 구원하기 위하여 신라왕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한수(漢水)를 건너오자, 성 안에서 북을 울리고 떠들면서 서로 호응하였다. 고승이 상대의 군사가 많고 우리의 군사가 적어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물러났다.

19년(서기 608) 봄 2월, 장수에게 신라의 북쪽 국경을 습격하도록 명령하여, 8천 명을 포로로 잡아왔다.
여름 4월, 신라의 우명산성(牛鳴山城)을 빼앗았다.

영류왕
9년(서기 626), 신라와 백제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말하였다.
“고구려가 길을 막고 예방하지 못하게 하며, 또한 자주 침략한다.”
당나라 황제가 산기시랑(散騎侍郞) 주자사(朱子奢)에게 황제의 신임표를 주어 보내며, 세 나라가 화친하기를 권하였다. 임금이 당나라에 표문을 올려 사죄하고, 신라와 백제 두 나라와 화친하겠다고 하였다.

12년(서기 629) 가을 8월, 신라의 장군 김유신(金庾信)이 동쪽 변경을 침범하여 낭비성(娘臂城)을 빼앗았다.

21년(서기 638) 겨울 10월, 신라 북쪽 변경에 있는 칠중성(七重城)을 침공하였다. 신라의 장군 알천(閼川)이 맞받아 칠중성의 밖에서 우리와 싸웠다. 우리의 군사가 패하였다.

보장왕
1년 (서기 642)
신라가 백제를 치기 위하여 김춘추(金春秋)를 보내어 구원병을 청하였으나, 이를 듣지 않았다.

2년 (서기 643)
가을 9월, 신라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말하였다.
“백제가 40여 개의 우리 성을 점령하고, 다시 고구려와 연합하여 조공하는 길을 막으려 하니, 군사를 보내어 구원해주기를 바랍니다.”

3년(서기 644) 봄 정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황제가 사농승(司農丞) 상리현장(相里玄獎)을 보내어 임금에게 조서를 내려 말했다.
“신라는 인질을 보낸 나라이며 조공을 계속하는 나라이다. 그대와 백제는 군사를 철수하여야 한다. 만약 다시 신라를 공격하면, 내년에는 병사를 내어 그대의 나라를 칠 것이다.”
상리현장이 국경에 들어왔을 때, 개소문은 이미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를 공격하여 두 성을 점령하였다. 임금이 사자를 보내어 연개소문을 소환해서야 그가 돌아왔다. 상리현장이 연개소문에게 신라를 침공하지 말라고 타이르자, 연개소문이 상리현장에게 말했다.
“우리와 신라는 원한으로 사이가 벌어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지난 날 수나라가 침입하였을 때, 신라는 그 기회를 틈타 우리의 땅 5백 리를 빼앗아 그 성읍을 모두 점거하고 있다. 만약 그들이 스스로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땅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아마도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상리현장이 말했다.
“지난 일을 어찌 추궁할 수 있겠는가? 지금 요동의 여러 성은 본래 중국의 군현이었지만 중국에서는 이를 따지지 않고 있다. 어찌 고구려만 반드시 옛 땅을 찾으려 하는가?”
그러나 막리지(莫離支, 연개소문을 말함)는 결국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상리현장이 귀국하여 이러한 실정을 모두 보고하자 태종이 말했다.
“연개소문이 자기 임금을 시해하고 자기 나라의 대신들을 해쳤으며, 제 백성들을 학대하였다. 게다가 이제는 나의 명령을 듣지 않고 이웃나라를 함부로 침략했으니 그를 토벌하지 않을 수 없다.”

(하략)


<신라 본기>

조분 이사금
16년(서기 245) 겨울 10월, 고구려가 북쪽 변경에 침입하였다. 우로가 병사를 이끌고 나가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마두책(馬頭柵)을 지키고 있었다. 그날 밤은 매우 추웠는데, 우로가 병졸들을 위로하고 몸소 나무로 불을 지펴 따뜻하게 해주니 모두 마음속으로 감격하였다.

첨해 이사금
2년(서기 248) 봄 정월, 이찬 장훤(長萱)을 서불한으로 삼아 나라의 정사에 참여시켰다.
2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맺었다.

내물 이사금
37년(서기 392) 봄 정월, 고구려에서 사신을 보내왔다. 고구려가 강성하였으므로 임금은 이찬 대서지(大西知)의 아들 실성(實聖)을 볼모로 보냈다.

(하략)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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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7-09-25 20:51
   
감방친구 17-09-25 20:55
   
대무신왕 낙랑 정벌 관련 임기환의 설명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9&aid=0003825882
감방친구 17-09-2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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