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런 논리라면 청나라의 피지배층이 한족이라는 이유때문에 한족의 역사가되고 원나라의 지배층인 몽골이 한줌이라는 이유로 칭키즈칸의 몽골이 몽골의 역사가 아니게됩니다. 윗분들 말도 극단적이지만 이런논리도 극단적이죠.
또한 제가알기로 그리스 스파르타의 경우 (물론 노예와 일반백성은다르긴합니다만) 민족 계급적으로 순수 스파르타인은 굉장히 적었죠.
오히려 서양 vs 동양이라는점에서 제가 든 얘가 더 맞는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정복자로서의 논리나 말갈족이 그당시 국가관이있었나 이런것도 고려해야겠죠. 발해시점이라면 고구려시절부터 고구려인들과 같이어울리다가 금나라로 독립해나간 중간시점이니 애매하긴해도 그전까진 한국사로 보는게 맞지않나싶습니다.
중국은 자기 땅에있던 모든 역사는 자기역사로만들고있습니다. 심지어 조선족 또한 자기네역사로 포함하고있죠. 이런 시점에서 봤을때 청나라는 만주족이 중국에 합병되면서 어느정도 명분을 보유하고있지만 원나라시기 중국땅이아니라 원나라 자체는 몽골사죠. 이건뭐 서로 생각이다르니 답이 안나오는 부분이군요. 우리가 배웠던 원나라역사는 정확하게말하면 원나라시절 중국사죠. 일제강점기 한국은 일본사랑 한국사가 겹쳐져있지만 조선총독부가 일본이지 조선은 아니잖습니까?
그거 누구 마음대로 정한겁니까? 다 중국이 지들 마음대로 가져간역사 아닙니까? 청나라가 지금 중국사인것도 한족 지들 마음대로 정한겁니다. 정작 주인이 살아 있는 몽골은 개소리 하지말라고 떠들어대도 듣질 않는데요? 근데 이과정을 고스란히 우리 교과서에서 들었다고 계속 인정하자는 겁니까? 명이 원을 왜 몽골 초원까지 쫓아가면서 도륙했겠습니까? 그런 몽골이 몽고로 버젓히 살아있는데 지들 역사라고 우기는건 한족 자신들의 역사가 5000년동안 길지만 주권을 잡은 시기는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남의 역사로 그걸 메우고 지속시켜 자기들의 역사로 고착화 시키려는 겁니다. 동북공정, 서북공정은 자신이 지배한 모든 민족들의 역사를 규합하는데 이 목적이 있습니다. 그게 맞다고 보십니까? 유럽, 미국역시 다민족인데 저딴 개소리로 남의 역사 가져가진 않습니다. 그딴 짱개 역사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동북공정 역시 인정해주는 걸로 연결되는 겁니다.
위에 든 예시는 국민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능동적으로 무언갈 할수있느냐가 결국 중요한게 아닐까요?
유럽은 국가관이 달라 동군연합이나 외국군주를 거리끼지않았고 남들과 다르다는 확고한신념같은게 있었고 무엇보다 지배계층이아니라 단순히 군주 민족만 달랐을 뿐이죠. 주류계층도 대부분 그나라 민족이 능동적으로 역사를 움직였구요.
동양에서도 따지자면 고구려인이 북연(후연?)의 왕이 된적이있고 원제국 마지막 황제는 반고려인고 기자와 위만 모두 중국인에 속하지만 거기에 클레임을 거는사람은 전혀없습니다. 단순 군주가 어느나라사람이냐 가지고 뭐라하는것 자체는 잘못된 예시로보입니다.
꺼리지않고 받아들인다는건 동군연합과 외국군주를 받아들인다는거지 외세를 받아들인다는건아닙니다. 동아시아사에 동군연합이나 외국인군주 개념자체가 있었습니까?
바로 뒤에 남들과 다르다는 확고한신념 = 즉 다른민족이라는 확고한신념을 뜻하는건데 그냥 지나치신거같네요. 뭐 제대로 안쓴 제잘못이긴하네요.
그리고 능동적 수동적 차이는 노예랑 전혀 상관없습니다. 같은 평민이라도 역사를 능동적으로 끌고나간 부르주아랑 밑에 하층민이랑 같지도않고 귀족에게 반란을일으킨 사람들과 순응하고 사는 사람들이 같진않습니다
하긴 뭐 위에서 원 청 이야기 나온 시점에서 역사를 보는 시점이 대충 파악되네요. 뭐 더이상 왈가왈부해봤자 소용은 없을거같긴합니다.
다만 역사를 민족점 관점에서 본다면 내몽골지역의 몽골인과 조선족들을 어떻게 보느냐묻고싶네요. 영토관점으로 본다면 원나라는 원칙적으로 몽골의 영토지 중국의 영토가아니니 성립할수없고... 보는 기준이 뭡니까?
지배층이 노르만족으로 교체되고 외국군주를 받아들이지 못해 정복되었다는 사건. 그냥 단순한 외국군주나 동군연합과는 다른사건이기에 저항이있었다는걸 자기가 설명해놓고 딴소리하는겁니까?(그런류에대해서는 별말한적없습니다)
애초에 그쪽이 처음에 꺼낸 이야기에 왕위계승전쟁이야기가있길래 폴란드 왕 스페인왕 프랑스왕처럼 외국군주가 거리낌없이 그나라왕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든거고
군주가 교체되는데 저항이없다고했지(있어도 미약) 지배층이 바뀌는데 저항이없다고한게아니라고 두번말하고 강제로 먹힌 부분은 강제로 먹혔으니까 저항을한거라고 분명 써있는데 같은말 반복하게하네요.
너무와서 뭐 논쟁했는지도 까먹을 시점이긴한데 원점으로 돌아와서 논점이뭐였는지를 되짚어보자면 "발해가 누구의 역사냐" 이게 아니라 "위의 예시는 잘못되었다" 라는겁니다. 외국인의 왕위계승과 동군연합이라는 것 자체가 동아시아에서는 없는개념으로 폴란드는 외국에서 군주를 모셔왔고 버건디는 왕이죽자 스페인이 땅을 차지했으며 포르투갈은 후사가 없어지니까 스페인이 삼켰는데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저항하고말고를 떠나 동양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개념입니다. 그리고 제시하는 그사람들이 스스로 잉글랜드를 노르만국을 이었다거나 그렇다고 했나요? 발해는 처음부터 고구려를 이어만들었다고했는데말이죠.
일본이 단군의... 삼한의... 백제의... 전통성을 이어 받는다고 주장한다면 당연히 우리 역사가 되는거죠.
하지만 일본이 백제의 전통성을 이어 받는다고 주장하나요?
똑같이 금나라 왕이 신라계니 뭐니 합니다.
그럼 금나라는 단군의.. 삼한의...신라의... 정통성을 잇는다고 주장했나요? 그런 증거 사료가 있다면 우리역사가 되겠지만 아니라면 남의 나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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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백성도 중요하지만 왕이 곧 나라 인 시대 입니다.
하지만 당연히 왕은 혼자 되는 것이 아니니 그 왕은 자신을 지지하는 각각 부족집단이 만족하고 수긍 하는 전통성을 주장하겠고요.
그 왕이 전통성을 단군에 두고... 고려,조선,고구려,백제,신라,삼한 등등의 전통성을 이어간다고 선언하고 나라를 세웠다면 그 나라는 우리와 무관한 역사가 아니게 되는거죠.
아들 대조영(大祚榮)에 이르러 도읍을 세우고 진왕(震王)이라 자칭하였다. 발해 북쪽을 영역을 병합하니 영토가 사방 오천리나 되고, 병사가 수십만이나 되었다. 중종(中宗)이 도읍한 곳에 홀한주(忽汗州)라는 명칭을 내려주고 발해군왕(渤海郡王)에 책봉하였다. 12대 지나 대이진(大彝震) 때에 참람되게 연호를 고치고, 궁궐을 본따서 짓고, 5경(京) 15부(府) 62주(州)를 두었으니 요동에서 가장 번성한 나라가 되었다. 홀한주는 바로 옛 평양성으로, 중경현덕부 (中京顯德府)라고도 한다.
당(唐)나라 고종(高宗)이 고구려를 평정하고 여기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하였지만, 나중에 발해(渤海)의 대씨(大氏)가 차지하였다
한나라 말기에 공손탁(公孫度)이 점거하여 아들 공손강(公孫康)을 거쳐 손자 공손연(公孫淵)은 스스로 연왕(燕王)을 자칭하고 소원(紹漢)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위(魏)나라가 멸망시켰다. 진(晉)나라가 고려(高麗 ; 고구려)를 함락시켰고, 나중에는 모용수(慕容垂)에게 귀속하였다. 아들 보(寶)는 고구려 왕 안(安 ; 광개토왕)을 평주목(平州牧)에 임명하여 거주케 하였다. 원위(元魏 ; 북위) 태무제(太武帝)가 그들이 거주하는 평양성(平壤城)에 사신을 보냈으니, 요(遼)나라 동경(東京)이 바로 이곳이다. 당(唐)나라 고종(高宗)이 고구려를 평정하고 여기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하였지만, 나중에 발해(渤海)의 대씨(大氏)가 차지하였다. 대씨는 처음 읍루(挹婁)의 동모산(東牟山)을 차지하고 있었다. 무후(武后 ; 측천무후) 만세통천(萬歲通天) 년간에 거란(契丹) 이진충(李盡忠)이 핍박을 받자 걸걸중상(乞乞仲象)이 요수(遼水)를 건너 스스로 지키니 무후가 진국공(震國公)에 봉하였다. 아들 대조영(大祚榮)에 이르러 도읍을 세우고 진왕(震王)이라 자칭하였다. 발해 북쪽을 영역을 병합하니 영토가 사방 오천리나 되고, 병사가 수십만이나 되었다. 중종(中宗)이 도읍한 곳에 홀한주(忽汗州)라는 명칭을 내려주고 발해군왕(渤海郡王)에 책봉하였다. 12대 지나 대이진(大彝震) 때에 참람되게 연호를 고치고, 궁궐을 본따서 짓고, 5경(京) 15부(府) 62주(州)를 두었으니 요동에서 가장 번성한 나라가 되었다. 홀한주는 바로 옛 평양성으로, 중경현덕부 (中京顯德府)라고도 한다.
뭐 발해는 한국사라기 보다는 ... 한국 만주의 역사이니깐 우리도 충분히 다둘수 있다는게 맞겠죠.. 말갈도 우리의 일부분이라고 할수도 있고 현 중국의 일부분일수도 있으니깐요........ 문제는 현재 우리가 발해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얼마냐 있냐는거죠......... 발해와 신라의 관계를 연구한 학자도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소수 의견에 따라서 말갈을 '마을'이나 '촌놈' 쯤에 해당하는 말로 생각합니다. ^^
예맥과 말갈이 다른 민족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견은 있지만 말갈은 고구려의 지방세력의 호칭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요.
고구려가 예맥+말갈이 아니라,
고구려 전체가 말갈이고
그 중에서 소위 서울에 사는 사람과 지방의 사는 사람에 대한 별칭이 다른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말갈은 중앙정부에 적대적인 곳도 있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