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우리를 715번째 침략하려고
하는가?
일본의 경제왜란으로 많은 논쟁이
되고 있는 요즘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의 말과 행동에분개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우리가 먼저 숙지하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일이
중요한것입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임진왜란과 일본침략기(1910-1945)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그
외에도 역사적으로 일본이 숱하게 침략해 노락질과 약탈을 일삼았다는 것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아래에 기술된 내용은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신라 시대
이래로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던 기사 내용입니다.
왜의 침략현황
1) 신라시대 왜구
침략(삼국사기) : 20회
2) 고려시대 왜구
침략(고려사) : 515회
3) 조선시대 왜구
침략(조선왕조실록) : 178 회
4)
일제침략(1910∼1945) : 1 회
(총 714 회)
『삼국사기』에 기록된 왜의 신라침략
기사
남해차차웅
11년 倭人이 병선 100여소를 보내어 해변의 民戶를 노략하므로, 왕은
六部의
精兵을 일으켜서 막게
하였다.(1회)
탈해이사금
17년 왜인이 木出島(목출도)를 침노하자, 왕이 角干(각간)
羽烏(우오)를
보내어 막다가 이기지 못하고
우오는 죽었다.(2회)
지마이사금 10년
4월 왜인이 東邊(동변)을 침범하였다.(3회)
조분이사금 3년
4월 왜인이 갑자기 닥치어 金城(금성)을 에워싸므로, 왕이 친히 나아가
싸우니 적이
潰走(궤주)하는지라, 輕騎(경기)를 보내어 이를 추격하게 하여 1,000여 명을
殺獲(살획)하였다.(4회)
유례이사금 4년
4월 왜인이 一禮部(일례부:郡(군) ?)를 습격하여 불을 놓고
사람
1,000명을 사로잡아
갔다.(6회)
유례이사금 9년
6월에 왜병이 沙道城을 攻陷(공함)하니, 왕이
一吉飡(일길찬)
大谷(대곡)에게 망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城(성)을 球援(구원), 完復(완복)케 하였다.(7회)
유례이사금
11년 여름에 왜병이 長峯城(장봉성)을 공격해 왔으나 이기지
못하였다.(8회)
흘해이사금
37년에 왜병이 갑자기 風島(풍도)에 이르러
邊戶[변호:邊方民家(변방민가)]를
抄掠[초략:掠奪(약탈)]하고
또 金城(금성)을 進圍(진위)하여 급히 치므로, 왕이 군사를
내어싸우려 하는데 이벌찬
康世(강세)가 말하기를, "적이 멀리 와 其鋒(기봉)을 당하기
어려우니 천천히 하여 그
군사의 피로함을 기다림만 같지 못하다"하였다. 왕이 옳게 여겨
城門(성문)을 닫고 나오지
아니하니 적은 양식이 다하여 물러가려 하자 강세에게 명하여
勁騎(경기)를 이끌고
추격하여 쫓아 버렸다.(9회)
나물이사금 9년
4월에 왜병이 크게 쳐들어왔는데, 왕이 듣고
이를 대적치 못할까 하여,
草偶人(초우인:풀로 만든
사람) 수천을 만들어 옷을 입히고 병기를 지니어 吐含山[토함산:
慶州(경주)] 밑에 벌여
세우고, 용사 1,000명을 斧峴(부현) 東原[동원:지금의
東方里(동방리) ?]에
잠복하여 두었더니, 왜인이 많은 병력만 믿고 곧 진격하여 오는지라,
伏兵(복병)이 발하여
不意(불의)에 적을 치니 왜인이 크게 敗(패)해 달아나자, 이를 추격
하여 거의 다
죽였다.(10회)
실성이사금 4년
4월에 왜병이 와서 明活城(명활성:慶州(경주)
東(동), 明活山城
(명활산성)]을 치다가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니, 왕이 騎兵(기병)을 이글고 獨山
[독산:延日郡(연일군)
神光面(신광면)] 남쪽에서 이를 要擊(요격)하여 두 번 싸워
무너뜨리고 300여 명을
살획하였다.(11회)
실성이사금 6년
3월에 왜인이 (新羅(신라)의) 동변을
침노하고, 6월에 또 남변을 침노
하여 100명을
奪掠(탈략)하였다.(12회)
놀지마립간 15년
4월에 왜병이 동변에 침범해 와서
明活城(명활성)을 에워쌌다가 아무
보람 [功(공)] 없이
물러갔다.(13회)
자비마립간 2년
4월 왜인이 兵船(병선) 100여 ?(소)를 이끌어 동변을 습격하고,
내키어
月城(월성:지금의
半月城(반월성)]을 에워싸니 사면에 矢石(시석:화살과 돌)이 비오듯
하는데
王城[왕성:月城(월성)]을 잘 지켜 적이 물러가려 할때 군사를 내어 적을
격파하고 그 뒤를 쫓아
북으로 海口(해구:지금의 浦項(포항) 부근?]에 이르니 저의
익사하는 자가 반을
넘었다.(14회)
자비마립간 5년
5월에 왜인이 活開城[활개성:위치
未詳(미상)]을 습격하여 부수구 國人
(국인) 1,000명을
사로잡아 갔다.(15회)
자비마립간 6년
2월에 왜인이 감량성 「지금의 梁山(양산)」을
침노하다가 이기지
못하고 물러가니, 왕이
伐智(벌지)와 德智(덕지)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中路(중로)에 숨어
기다리다가 要擊(요격)하게 하여 (왜병을) 크게 깨뜨렸다. 왕은
왜인이 자주 신라의 강역을
침범하므로 綠邊[연해지방]에 두 성을 쌓고, 7월에는 군사를
크게
열병하였다.(16회)
소지마립간 5년
5월 왜인이 변경을 침범하였다.(17회)
소지마립간 8년
4월에 왜인이 변경을
침범하였다.(18회)
소지마립간 19년
4월에 왜인이 변경을
침범하였다.(19회)
소지마립간 22년
3월에 왜인이 長峯鎭[慶州(경주) 동쪽 ?]을
攻陷(공함)하였다.(20회)
<고려시대>
고려시기 최초의 기록 :
고종 10년 5월 "왜구가 김주(김해)를 침구하였다"(21회)
고종 10년(1233)
∼충숙왕 100여 년간 10여차 10여곳(31회)
1350(충숙왕)부터
본격화, 충정왕 2년 재위 동안만 11회 기록(42회)
→ 가마쿠라 바쿠후가
멸망(1333)과 뒤이은 남북조의 쟁란으로 서부 일본지방의 연해민이
해적집단화.
공민왕 재위 23년
간(1352∼1374) 115회(157회)
우왕(1375∼1388)
14년간 378회(535회)
<조선시대>
* 조선시대 왜구 침임
횟수(조선왕조실록의 기록)
태조 --
38회
정종 --
3회
태종 --
45회
세종 --
18회
문종, 단종, 세조 --
없음
예종 --
없음
성종 --
8회
연산군 --
8회
중중 --
31회
인종 --
없음
명종 --
20회
선조 -- 7회(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가각 1번씩으로 쳐서)
광해군, 인조, 효종,
숙종, 영조, 정조, 순조, 철종 -- 없음
조선시대 총
178회
삼국시대 - 일제침략전까지 총
713회
1910-1945 일제침략이
714회째 침이이었음.
참고 : 육사 사학과 편,
『한민족전쟁사총론』 교학연구사, 1988, 144∼149쪽.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아주 개 C발 원숭이들 한번만 더와봐 진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