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고대어 테사르라 하면 이 조선에서 가라와 사라로 갈린다도 합니다. 가라가 갈을 의며하죠 이는 맥족이고 사라는 살로 사로를 말하며 살이 미米와 같은 말이죠.
예나 맥 모두 조선의 다른 명칭내지는 변형 명칭이라는 것 이죠. 이 들이 모두 환 / 한의 뜻을 지니기에 삼한과 삼조선은 같은 말이란 것 입니다.
그리고 왕은 본래 은나라에서는 군君이라 불리웠는데 이 발음이 Kiwang 이었는데 남북조 시대에 Ki와 Wang으로 갈리웠고 Ki라고 한 종족은 유럽으로 가서 King이란 말을 만들었고 Wang이란 말을 한 종족은 그냥 동양에 남았다고 합니다.
기자조선의 기자란 말은 당시에는 군자조선이 맞는 말이란 거죠. 실제로 군자국이라고 불리웠죠. 이 기자에서 기가 지금의 왕이란 뜻 이었다는 것 입니다. 왕과 간/칸은 같은 말이면서 한韓과 같은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자조선이란 왕자조선 / Kiwang(기왕 / 광)자조선 / 한韓자 조선 / 군君자 조선이란 말이죠.
삼한과 부여족은 별개 입니다.
언어 통하지 않음
단지 조선영토 안에 있었던것 뿐
억지부리지 마십시오.
예인이 부여를 건국했다라고 나옵니다
맥 보다 예가 더 신빈성이 높구요. . 맥은 이후 입니다.
근데 맥은 걍 종족 명칭이 아닌 오랭캐 호칭 이라는 애기도 있습니다.
그러면 부여계 중에 가장 오래된 종족 명칭인 예인 이 라고 볼수 있어요.
광개토대왕비에서 예인 더 언급한거 볼수있어요
부여를 예족 혹은 예맥족이라고 쉽게 말할수 없습니다.
부여 통치자들은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이주집단입니다.이들은 부여의 주인들입니다.이들은 어떤 예족인지 무슨족인지 알길 없음.
다만 부여가 통치하는 땅은 예족의 땅 혹은 예맥의 땅이라고 불리우는걸 보아 그 땅에는 아마 예족이나 예맥족이 다수 살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여는 그냥 예족이나 예맥족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 하나의 국가입니다.
1)번 잘 보았습니다.
2)번 원문 자료를 부탁드립니다.(원문 사료를 제시하시는것은 기본예의입니다,아니 보는 사람이 또 그걸 찾아서 체크해야 하나요?)
3)北貉 은 나라 이름이지 "북으로는 맥인과.."가 아닙니다.
4)여기서의 삼한은 어떤 의미를 가리키는지 부가 설명 부탁 드림 ~
이해못하는척 하지마세요.
감방친구님이나 수많은 한국 네티즌들이 한사군을 연구하고 요동을 연구하고 ... 등등 ... 모두다 결국은 한국 식민주의학계나 중국의 역사학계를 꺠부시려는 목적이 아님?
나는 당신들의 합리한 주장을 지지하고 근거가 부족한 주장에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조금만 반박이나 의문을 받으면 흥분하고 진정못하는 성향으로는 중국인이 아니라 아마 한국 학계도 못 박살낼거요?
삼한이 맥류 라고 한것은 안사고가 한 말입니다.
안사고는 한서에 등장하는 북맥 이라는 서한시대의 나라에 대해 주석하면서 삼한은 맥류 라고 말하였습니다.여기서 말하는 삼한이 과연 마한 진한 변한인지는 의문일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말하는 삼한이 안사고가 활동하던 당나라 시대에 해동삼국을 말했던 삼한이 아닌가 의심하합니다.다들 아시다싶이 당나라 초기에는 삼국을 삼한이라 하였음.
물론 마한 진한 변한일수도 있겠지만,서한시대에 과연 마한 진한 변한이 있었는지, 있었다는 사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저는 이미 댓글에서 분명히 부여는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종족이며 부여가 통치하는 땅은 예족의 땅 혹은 예맥의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사료를 제시하지 않은것은 맞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논형이나 삼국지 후한서에 등장하는 사료들은 누구나 다 알것이라고 제가 착각했기때문일것입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기본적인 것들도 사료를 제시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요.
다만 추론은 좋지만 = 와 같은 사실인마냥 그러지는 마시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
다시한번 밝히지만 저는 감방친구님처럼 역사를 연구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그냥 감방친구님 등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역사 주장을 하실때마다 기분좋게 배우고 가는 사람들중 한 명에 불과합니다.
감방친구님꼐서 주장하시는바에 제가 의문이 든다면 당연히 제기해야 하고 감방친구님은 그런 의문에 대해 설득력이 있는 근거를 제시해주셔야 합니다.
예의가 없는 사람이 보입니다. 자신이 내뱉은 말은 지키지 않으며 남에게만 요구하며 오히려 자신을 가르치라 뻔뻔하게 굴고 있군요.
본인부터 원문자료와 제시와 주장을 하는 노력을 보이시고 부탁을 드리십시오. 아무런 공헌도 노력도 없는 가치없는 분이 지금 예의라고 말씀하신겁니까? 예의는 알고 말하는 겁니까?
역사적 주장은 사료적 뒷받침이 있어야 다른사람을 설득할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주장은 다른 사람에게서 반박이나 의문을 받을수 있습니다.
반박이나 의문을 받았대서 다른 사람을 예의가 없다거나 불량스러운 말투와 태도로 대하는것은 그 자신도 근거가 비약함을 알기때문일겁니다.
역사적 주장은 누구나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문이나 반박도 누구나 할수 있습니다.
의문이나 반박을 하려면 먼저 가치있는 역사적 주장을 하라 는것은 님의 희망사항이며 잘못된 인식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님이 그만큼 수준이 높지 않다는것을 반증하는것이며 역사에 대해 조금은 더 공부를 해야 한다는것을 보여주는것일지도 모릅니다.
역사적 주장은 사료적 뒷받침이 있어야 설득할 수 있으며, 의문이나 반박도 그에 대한 근거가 있어야 설득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근거도 없는 소리는 소음에 불과하며,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욕에 불과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안되었으면 그만큼 가치가 없는 존재임을 증명하며, 조금은 자신을 되돌아보며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의문이나 반박에 사료적 근거가 있어야 된다는것도 맞는 말임,하지만 저 같은 경우엔 주로 의문을 제기하는 스타일이기떄문에 굳이 의문중에 사료적 근거가 있어야될 필요도 없음 ~
이해한다님을 보면 마치 상고사토론회에서의 의문이 들어올때마다 헛소리만 치는 강단학자들 보는 느낌 ~
여기에 <이해한다>님과 같은 사람들을 보면 왜서 한국인들이 중국인에게 당하는지 알수 있습니다.
한국 사이트에 보면 한사군이 하북성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한 그 사람들은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 사료적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어느 카페인지는 기억이 안나고 지구인이라는 네티즌의 글을 보면 그렇다는 말임 ~
그런데도 한국의 학계는 한사군이 북한에 있다며 중국과 짝짝꿍 하고 있다는것은 한국 학계에 이해한다 님과 같이 부실하고 사리에 밝지않고 역사에 대해 쥐뿔도 모르고 그냥 투덜거리기만하고 의문과 반박에 대해 꼼짝못하는 종이호랑이들이 많기떄문일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답글을 다셔서 수정글이 삭제 되었네요. 설득력있는 자료가 무엇인지 보여주시죠. 말만 내뱉고 실질적인 설득할 수 있는 글은 없고 주장만 하는 글은 일본역사학계와 다를바 없습니다. 핵심은 없고 우기는 것이 다 라고 생각하는 것의 결과는 결국은 오늘날의 일본과 중국과 같죠. 역사를 날조를 배우니 그렇게 날조의 들통과 몰락이 가속되는거라 생각합니다. 아무런 역사적 지식을 보인적도 없으신 분이 그런 말을 하니 가소롭습니다.
고구려를 세운 종족은 보통 예족(濊族), 혹은 맥족(貊族), 혹은 예맥(濊貊)이라 중국 역사책에 기록된 종족과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그중에서도 맥족이 가장 유력한데, 맥족도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 대수맥과 소수맥으로 나뉘어 있었다. 고구려를 세운 맥족은 크게는 예족의 범주에 들어간다. 예족은 발해만 동북지역의 종족을 가리키는 범칭으로 부여나 옥저, 동예도 이에 해당한다. 그래서 중국 역사책에는 3세기께 고구려의 풍속이 부여, 옥저, 동예 등과 비슷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맥'은 고구려가 독자적인 국가로 발전하며 다른 예족 집단과 구분되면서 불린 칭호로 생각된다. - 임기환 서울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
<후한서> <고구려조>에 의하면 구려(句麗)는 일명 맥이(貊耳)이다. 따로 별종이 있는데, 소수(小水)에 의지하여 살기 때문에 소수맥(小水貊)이라 부른다. 좋은 활을 생산하는데, 그 활을 맥궁(貊弓)이라 한다.
구려(句麗)는 환웅시대부터 존속하였던 북경중심의 구려(九黎)의 전음이다.
이 구려족이 발전하여 고구려를 건설하였고, 이들이 맥족(貊族)이다.
중국인들이 말하는 맥이(貊耳)는 북방 종족을 말한다.
맥이의 지역은 현재 내몽골 자치구인 흥안령산맥의 하단부로 홍산문화(요하문명)지역이다.
이 지역은 북서쪽이 산맥으로 막혀 있어 겨울에는 북서계절풍을 막아주어 따뜻하며, 여름에는 남동풍이 불어 시원하면서도 강우량이 많아 농사 짓기에 적합한 곳이다. 그래서 일찍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민족이 모여 살았고,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문명 등 고대문명을 공유하면서 발달된 것이다.
<후한서> <동이열전> <부여조>에 의하면 부여국은 현토(도)의 북쪽 천리쯤에 있다. 남쪽은 고구려, 동쪽은 읍루, 서쪽은 선비와 접해 있고 북쪽에는 약수(弱水 : 흑룡강)가 있다. 국토의 면적은 사방 2천 리이며 본래 예족(濊族)의 땅이다.
예족(濊族)이란 물이 많이 흐른다는 뜻의 예(濊 : 흐를 예) 자(字)를 써서 물이 많은 지역에 사는 민족이라는 뜻이다. 부여는 만주 동북평원을 중심으로 발전한 나라이다. 이 지역은 북쪽으로 눈강이 흐르고, 동북쪽으로 흑룡강이 흐르며, 동쪽으로 송화강이 흐른다. 남쪽에는 역시 송화강이 흐르며 그 발원지는 길림호이다. 즉 이 지역은 물이 많은 지역이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발흥한 민족을 중국인들은 예족이라 일컬었던 것이다.
부여는 44대 구물단군이 세운 단군조선의 또 다른 이름이다.
중국의 동북방을 차지하고 있던 구려를 비롯한 맥족과 선비족, 산융, 돌궐, 흉노족 등이 한족에 밀려 북동진 하며 단군조선(삼조선)이 와해되자, 구물단군은 와해세력을 재통합하여 '대부여'라는 나라를 세우고 단군조선의 맥을 이어간다.
와해세력을 재통합하는 과정에서 예족들을 모두 흡수하게 되는데, 이 예족은 BC 2333년 단군왕검이 삼한을 통일하던 당시 웅족(熊族)이다.
반면 선비족, 산융, 돌궐, 흉노 등은 호족(虎族) 세력이 맥족이며, 구려는 맥족의 별종이다.
예맥족은 예족과 맥족의 통합 세력을 말한다.
맥족의 또 다른 별종이었던 구려는 북동진하면서 선비, 산융, 돌궐, 흉노 등의 맥족과 부여 중심의 예족을 통합하고 또 동화되면서 고구려라는 나라를 세우게 된다.
따라서 고구려는 북방계열의 맥족과 예족을 통합한 나라였다.
중국 사서에서 고구려를 맥족, 예족, 예맥족이라고 혼돈하여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후 고구려가 망하면서 맥족은 거란이, 예족은 발해와 고려가 그 뒤를 이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선을 긋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우리 민족을 예맥족(예족 + 맥족)이라 일컫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