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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9-30 11:20
[기타] 왜 이 게시판은 이렇게 민족주의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죠?
 글쓴이 : 고지호
조회 : 3,127  

동북공정이 나쁘다? 
네 나쁘죠. 중화주의에 입각하여 실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나쁩니다.
그런데 동북공정이 나쁘다면 민족주의사관을 기반으로 역사를 재단하는 거 역시 올바르지 않습니다.

아래에 여러 차례 언급되는 '삼국사기' 논란도 그냥 객관적으로 보면 단순한 문제입니다.

김부식은 신라중심으로 역사를 기록한 인물입니다. 
그러니 다소 자신의 주관이 들어갔으리라 짐작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대표적으로 신라가 가장 먼저 설립되었다고 주장하는 내용은 신빙성을 얻기가 어렵죠. 

그런데 그런 부분은 틀렸는데 민족주의 관점에서 좋아 보이는 것은 무조건 맞다고 이야기할수 있을까요?
마땅히 다른 사서나 비교자료와 검토하여 객관적으로 옳아 보이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논리적입니다.

이병도가 단군을 부락의 촌장정도로 생각했다?

고대국가 설립년도를 보자면 고조선의 최초 설립은 부락규모로 시작되었겠죠. 부락에서 부락연맹, 초기국가형태로 나아갔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이병도가 잘못 주장한 것은 많겠죠. 일제시대 주류학계의 관점을 수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당시 역사학에 대한 이해도나 발굴 기술 역시 일천했겠죠.
그러나 무조건 다 틀렸다고 주장할 수도 없을 겁니다. 

민족주의관점이 무조건 틀렸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합리적 가설과 실증적인 연구방법을 무시하는 관점은 지지 받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역사학 역시 사회과학의 일부이므로 과학적 방법론을 채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종교나 신념의 문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동이족이라는 말 역시 당시 중국중심으로 동쪽 방향의 모든 이민족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우리 민족의 직접적 조상? 혹은 주류가 된 예맥족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당시 예맥족만이 우리 민족의 조상일 수가 없는 겁니다. 
실록과 중국사서를 보면  임진왜란 당시 일본을 동이족 중 가장 강하다, 쉽게 볼 수 없다는 말을 명나라신하들이 주장한 부분이 있습니다. 일본이 우리와 같은 민족입니까?

2000년 전 당시의 민족? 집단 개념을 현대의 개념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비합리적입니다.  상식과 합리를 먼저 갖추고 역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P.S. 미국주류 역사학계에서 과연 미국의 이민자 조상을 메이플라워호의 청교도라고 볼까요? 이들은 메이풀라워호를 일종의 "건국신화"로 받아들입니다. 극히 일부의 이민자를 중심으로 건국설화를 만들어서 응집력을 갖추기 위한 스토리메이킹이라 주장합니다. 고작 200년 전의 일도 신화로 받아들이는 것이 주류사학의 입장입니다.

성경을 받아들이는 이스라엘역사학계는 어떤가요? 그들은 진짜로 모세의 출애굽기를 믿을까요? 이스라엘 주류사학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와 만일 그런 일이 있었다면, 즉 진짜로 이스라엘민족 중 일부가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일이 있었다면 그 인원은 아주 소수일 것이고 그 소수의 이야기가 이스라엘 건국의 원류로 각색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고 방식이 합리적인 접근 아닌가요? 이들의 이런 사고를 식민빠라고 공격하는 사람들은 기독교근본주의자들이거나 이스라엘시오니스트겠죠. 근본주의 기독교나 시오니스트들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접근법이 틀렸다면 우리의 접근방법도 좀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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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0 15-09-30 11:48
   
이병도는 삼국유사에 단군왕검이 bc 2333년이라 명시됐음에도,
중국의 기록을 따르며 BC 1,000으로 축소된 역사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이라는 국명도 중국의 영향이라는 주장을 했지요.
단군은 조그만 촌락은 촌장으로 여겼습니다.

또한 풍납토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한국 고대의 저력을 폄하하는
인식이 깔려 있었던 겁니다.
당시 백제의 국력으로 거대한 도시 건설이 불가능 했다는 인식이지요.
그로인해서 중요한 유적이 아파트 공사에 훼손 됐지요.

저들도 이병도가 친일이었다는 것은 부정 못합니다.
대신 친일이어도 식민사관은 아니라고 강변하는 거지요.

하지만 이병도의 행보는 일본의 입장에선 식민사관에 입각한 것입니다.
     
진실게임 15-09-30 11:51
   
삼국유사는 역사책도 아니고 설화집인데, 그걸 갖고 년대 주장 같은 걸 한다는게 말이 안되죠.

곰이 여자가 되는게 역사라고 할 건가요?
          
바람따라0 15-09-30 11:53
   
트로이도 민담수준이었지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20만권의 고문서를 불사른 상황에서
온전한 기록으로 남은 것을 외면하고, 중국의 사료를 근거로 햇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입니다.
          
굿잡스 15-09-30 13:22
   
삼국유사는 역사책도 아니고 설화집인데, 그걸 갖고 년대 주장 같은 걸 한다는게 말이 안되죠. 곰이 여자가 되는게 역사라고 할 건가요>??

삼국유사의 고조선 건국 신화는 위서(魏書)에서 이르기를 즉 서토 사서(정사)를 인용한 기록이군요.

그리고 곰이 여자 어쩌고 이런 식으로 해석하나요?? .. 곰은 당시 토템신앙을 가진

부족이고 앞선 선진 청동문화를 가진 환웅세력과 결합해서 나온게 고조선으로 해석해야.

그럼 무슨 고구려 주몽이나 신라 박혁거세의 난생신화등은 알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로

고구려.신라는 허구적 역사에 실체없는 국가인지??? 건국신화와 건국자를 신성화 시키는 이면의

도리어 고도의 정치화된 내용에 은유들임요.

이건 실제 현재 고조선 중심지인 요하일대에서 확인되는 고고학적 내용과도 일치합니다.

요서일대 기원전 20세기 고조선 건국 연대와 맞물린 국가적 방어형 석성이나 토성등

밀집 정주성곽문화부터 초기 청동문화. 이런 요서 요동을 아우러는 연계된 고태산

문화와 압록강일대 마성자 문화등은 다 기원전 20세기 고조선 건국 연대와 맞물린

초기 청동기 문화들임. 환타지가 아니라 실체적으로 계속해서 발굴되고 있는

상황이군요.


후한서 "고구려, 옥저, 예는 다 조선 땅에 있다"

제왕운기 "신라 고례 남북옥저 동북부여 예맥은 모두 단군의 자손(故尸羅 高禮 南北沃沮

東北扶餘 穢與貊皆檀君之壽也)

2년 여름 6월, 송양이 나라를 바치며 항복했다. 그곳을 다물도로 개칭하고, 송양을 그곳의 군주로 봉

했다. <고구려 말로 옛 땅을 회복한 것을 '다물'이라 하기 때문에 그곳의 명칭으로 삼은 것이다.>

-삼국사기

그리고 고조선 관련 기록은 이런 우리쪽 사서의 삼국유사, 제왕운기,동국사략,

삼국사절요, 동사강목, 해동역사등 외에도 서토 사서인 관자, 사기,위략, 상서정의,

수서, 한서지리지 등 다양하게 확인 가능함.
          
막걸리한잔 15-10-01 03:28
   
국제적으로도 성경은 역사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바다를 갈라서 육지를 만들고 처녀가 애를 낳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고..
이런 환타지 소설 같은게 전세계에선 역사로 받아들여져요..
무슨 말인지 아시나요???
모든 북방 유목민족의 전설이나 역사에는 이런 약간은 신화같은 미담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굿잡스 15-09-30 13:29
   
고조선시대 입었던 동아시아 최초의 청동단추형 갑옷이나 장화등이 다양하게

출토되는 마당에

고조선이 허구의 역사??? 그기에 서토의 단순 동검보다 앞선 정교한 비파형 동검의 합검이고

이런 청동검은 요하 우하량 일대 고조선 시대 대표적 묘제인 석관묘(이 석관묘, 빗살무늬토기,

적석총등 이전 시베리아 계통에서 흘러 나왔던 것으로 보았지만 다 이 요하 발해 일대가

가장 이른 원류로 판명난 상황임) 에서 모티브가 되는 비파형 옥검까지 나온 상황이군요.



출토 유물로 본 고조선 영역

http://blog.daum.net/joo119114/1550
 
동아시아 최초의 금속 갑옷인

고조선의 갑옷과 장화에 붙이든 청동단추 출토 분포지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arva11&logNo=220279301580

삼국시대 고(구)려 영역.
http://cafe.daum.net/alhc/4xOO/11341?q=%B0%ED%B1%B8%B7%C1&re=1


이전에도 올렸지만 인지 못했다면

다시 정독하시길.

東海之內 北海之偶 有國名曰 朝鮮

동해지내 북해지우 유국명왈 조선

"동해(서토 동해안 즉 서해) 안쪽, 북해(발해) 모퉁이에 조선이란 나라가 있었다”

-산해경(춘추전국시절 편찬된 지리서)


태평환우기를 봐도

(平州 盧龍縣) 朝鮮城, 卽箕子受封之地.-太平寰宇記 卷一百七十 河北道 一十九

은나라의 후예인 기자가 달아난 곳에 주 무왕이 하다 안되니

무슨 봉해줬니 어쩌고 하던 조선성이 노룡현 즉 지금의 산해관 요서

일대 진황도 근처에 있음을 기록.

오늘날 요동반도를 따라 이서를 요서로 정하고 있지만 이런 춘추전국시대의

요수의 기준을 보면 산해경에서 동남쪽으로 흘러서 발해로 들어간다고 기록한

반면에 지금의 요수는 서남쪽으로 흘러감(요란 고대에 서토왕조에서 그들의 먼

변경을 부르던 명칭으로 특정 지속적 고정화된게 아니라 시대별로 이런 요서,요동을

나누던 물길의 위치가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

다시 말하면 춘추전국시대등 당시의 서토에서 보던 요하는 지금보다 훨씬 서쪽의

물길을 요의 경계로 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군요.

그외

요서에서 발견된 두로영은(豆盧永恩)의 비문에

조선건국 고죽위군朝鮮建國 孤竹爲君’(조선이 건국을 하고 고죽이 임금이 되었다)


<1968년 역사학자 천판(陳槃)이 펴낸 ‘춘추대사표열국작성급존멸선이(春秋大事表列國爵姓及存滅선異)’라는 책이었다. 기존 사서를 근거로 중국 중원에 산재했던 춘추시대 170여 소국의 역사를 비정한 역사책인데, 바로 선우라는 항목이 있다.
 
“선우는 일명 중산이라 한다. 회남자는 우(虞)는 혹 우(于)라 했다. 선우(鮮于)는 그 선조가 자성인데(其先子姓), 기자는 조선에 봉하고(以箕子封朝鮮), 기자의 둘째 아들은 우(于·핑산으로 추정)에 봉했다. 여기서 자손들은 조선의 선(鮮)과 봉지 우(于)를 따서 선우(鮮于)씨라 했다.(子孫因合 ‘鮮于’爲氏)”(천판)>
 
은나라의 후예 어쩌고 금석문이 발견되었고 여기에 기자의 후예

어쩌고로 이 선우씨의 유래가 참 재미있고 눈에 확띄는 대목이 선자가 조선의 선자와 봉지의 우자가

합쳐서 나오는 말이라는.  자세한 내용과 선우중산국의 위치까지 확인 바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5021738135&code=210000
 
그외 고죽국의 경우도 눈여겨 볼 부분인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4041710515&code=210000
     
굿잡스 15-09-30 13:32
   
그리고 잠시 신석기 시대와 고조선 건국 연대인 청동기로 넘어가는

지금까지 만주 요하 일대 발굴 성과를 잠시 요약해 보자면


이 만리장성 밖 고조선 선대 문명지인 만주 요하 일대는 이미 기원전 7200년 경으로

소급되는 정주취락인 신락문화가 발견된 상황이며  신석기 시대 조양 북쪽의

대릉하 근처의 서쪽 적봉일대의 홍산문화보다 앞선 흥룡와 문화(기원전 6000년~5200

년)만 봐도 이미 해자까지 두르고 온돌 아궁이에 정교한 도시형 밀집 취락

정주문화로 그기에 이런 발해문명의 홍산문화는 기원전 3500-2000년 경

의 소하연문화로 이어져 고조선 건국 연대와 비슷한 기원전 20세기 하가점 하층문화

로 이어지는 연속성을 내포하고 대표적 석성이나 토성등 국가적 정주방어문화권이고.

이후 내몽골 일대 B .C. 1000~300년까지의 하가점 상층문화가 북방 유목적 성격이 강해

서 일련의 연속성을 단정짓지 못하지만 복기대교수의 연구 논문으로 이미 알려진 것처

럼 지금의 요하의 서쪽 요서에서도 노노아호산맥을 경계로 그 동쪽의 대릉하

부근으로 하가점 하층문화가 이어지고 있고 이미 요동일대와

압록강쪽으로 이런 하가점 하층 시대 즉 기원전 20세기전후경의

초기 청동문화인 고태산문화(高台山 文化)와 압록강 일대 마성자문화(馬城子文化)

가 발굴된 상황임.

요서 하가점 하층 시기와 조금 늦거나 비슷한 시기로 보는 이런 고태산

문화는 요서 요동을 연계한 교류의 특징이 나오고 있고

이런 고태산문화의 영향까지 받으면서 위영자문화를 형성하고 우리가

아는 서토의 단순 동검과 성분 모양에서도 차별을 보이는 대표적 고조선 전기

동검으로 파악하는 비파형동검인 릉하문화로 이어지고 있고 이런 일련의 흐름으로

기본  신석기 말기에서 청동기와 철기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생활토기부터 묘제

제사관련 유적등 이런 고조선 색채로 이어지는 문화는 연해주 일대의 최근 한러 고고

학 탐사의 옥저문화부터 고구려 발해로 이어지는 연속성의 성터발굴 및

경남 고성군의 솔섬의 청동에서 철기로 넘어오는 요서 발해문명의

홍산문화에서 보이는 석관묘의 옥기비파형검의 특징으로 후기 세형동검의 철기형이 똑

같은 석관묘에서 발굴된 상황임. 즉 고조선 대표적 묘제중 하나이며

요동 한반도에도 흔한 전형적 묘제들이 이 발해지역에서 그 연대가 가장 앞

서 나오고 있고 비파형의 모양이 이미 홍산문화의 석관묘 옥기에서 모티브를 잡아서

나온 흐름임을 유추할 수있는 근거들이 나오고 있다는 말. 즉 신석기 시대부터 요하에

서부터 한반도로 줄기차게 이어지는 흐름이 청동 철기등

고조선 고구려 남북국 시대를 지나 후발해와 신라계 황제와 후발해민 연합의 금나라

로 다시 남국 고려가 요동을 70여년 자치로 이후 조명간의

국경도 명의 내지는 산해관 이서에 실질적 요동변경 관할도 요동 봉황성 이서로 조명

시기에도 요동에서 압록강 사이에도 조선인이 3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고(이 요동은 앞서 대도인 상경용천부의 발해민 수십만을 이치시켜 이

우리 발해민들 다름 아닌 숙여진으로 부름) 만주족이 청을 세우고 서토를 정복하고

들어가면서 요동은 서토인 봉금화로 17세기 이미 동만주일대는 두만강을 따라 흑룡강

일대로 조선인들이 제집드나들고 있었던 상황.(학계에서도 고조선시대

요는 북경일대 난하를 기점으로 이서를 요서로 보는 내용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는)
바람따라0 15-09-30 11:50
   
단군 관련 이병도가 저지른 잘못의 핵심은 1,000년 이사의 역사를 삭제 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에 대해 일천한 미국의 예를 들어 무슨 소용인가요?
바람따라0 15-09-30 11:52
   
역사적으로 만리장성의 동쪽끝은 산해관이었습니다. 명나라의 멸망이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의 배반 때문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대 최근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만리장성을 평양인근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양식과 다른 고구려의 성들을 무리하게 만리장성에 포함시키는 역사왜곡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산해관 밖에 중국이 자국 역사로 편입해야하는 중요 유적이 발굴됐기 때문입니다.

 

홍산문명은 내몽골과 요녕성(요서)에 걸쳐 형성된 고대 문명으로 요녕성 선양시에서 기원전 8,000년 전 유적이 발굴될 정도로 오래된 문명입니다.
 
 

중국은 처음, 홍산문명에서 발굴되는 적석고분, 빗살무늬토기, 옥장식, 비파형 청동검등, 자신들의 황하문명과 다른 형태의 유물이 나오기에 하나의 ‘문명’이 아닌 ‘문화’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발굴을 하다가, 홍산문명의 수준이 기원전 6,000년 경 치과 수술을 할 정도로 대단함을 발견하고, ‘요하문명’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그들은 중국 문명의 발상을 기존의 ‘황하문명’이 아닌 ‘요하문명’으로 바꾸고, 그것이 ‘황제’의 근거지였다는 거짓을 말하며, 고조선, 고구려, 발해 역사를 자신의 역사에 편입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북공정의 핵심입니다.
 
 

이런 동북공정의 부당함은, 그동안 중국이 스스로 내세웠던 황하문명과 그 황하문명을 이어받은 역대 중국의 생활상이, 홍산문명과 다르다는 것을 제시함으로써 논파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홍산문명에 대한 한국인의 접근을 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단표적인 유물과 지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취약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홍산문명에 대한 연구는, 중국이 공개하는 유물과 주장하는 바의 ‘행간’을 읽는 고도의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작업을 ‘유사역사’ 운운하며 폄하하고, 방해하는 행위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협력하는 행위라 하겠습니다. 이런 시도와 참여자들을 경계해야하는 이유입니다.
바늘천사 15-09-30 11:59
   
그럼 일본의 사학은 실증주의 사학으로써 이에 충실하였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들의 사기는 그러한 고증에 충실한 자료로서 충분히 역사적 고증(실증)이 된 것이라고 보십니까? 이를 바탕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고증된 역사적 사실입니까?

 일본 실증주의 역사학을 계승했다는 이병도 등의 제자들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역사학계는 과연 일본의 실증주의 사학을 충분히 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입니까? 민족주의 사관을 폄훼하기에 앞서 이러한 실증주의 역사관은 과연 오류를 범할 논리적 모순은 없는가하는 자기성찰이 먼저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비판하고자하는 논리는 똑같이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비수가 될 수 있기때문입니다.
호랑총각 15-09-30 12:05
   
민족주의 사관을 가진사람이 많은 것이 아니라 주류사학에 의문을 품고 비판하는 사람이 많은것이죠
왜 주류에 비판적이면 민족주의사학, 재야사학, 유사사학을 덮씌우는지 모르겠네요.
주류사학에 가지는 의문은 크게 다음 몇가지입니다.
1. 주류는 고조선이 고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하다가 위만이 들어와서야 철기를 사용하고 국가의 형태를 갖췄다고 보는 반면 비판적인 입장은 이미 고조선은 위만과 관계없이 그 전부터 한민족의 근원을 이루는 고대국가로 존속했다는 입장입니다. 위치와 강역도 주류는 평안도 일대의 소국, 비판적 입장은 만주와 한반도를 아우르는 대국(고인돌과 비파형동검 출토지)으로 봅니다.
2.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많이 없기 때문에 고조선의 위치는 기록상으로 한과 조선의 전쟁기록으로 볼수 있는데요 결국 한이 고조선과의 전쟁후 설치했다는 한사군의 위치가 논란이 됩니다. 주류는 한반도내, 비판적 입장은 한사군은 구요동요서지역에 있다고 하는것이죠
3.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왜 불신하는가 하는 문제죠. 주류는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믿지 않는 반면 비판적 입장은 믿지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관련해서 백제와 일본의 관계도 쟁점이구요.
4. 그외 고려 윤관의 9성의 위치, 조선의 간도문제 등 쟁점이 하나둘이 아니죠.

이런 쟁점들은 어제오늘일이 아니라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오던 것인데 주류에서는 이미 정리가 끝난문제라 일축하고 있으니 문제라는 겁니다. 최근 동북아역사지도를 만든 동북아역사재단이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재검토를 하고 있죠. 문제는 있으나 없고 싶은 주류의 '시커먼 속'이 끊임없는 논란을 만드는 것이고 결국 법정다툼까지 번졌네요. 인터넷으로 이런 문제들 왈가왈부해봐야 뻔한 지식으로 답이 안나옵니다. 학자들간 공개적인 토론과 비판이 활성화되고 그 과정에서 대중이 받아들일수 있는 올바른 역사가 정립되는 것이죠. 상대의 입을 틀어막고 우리끼리 정리가 끝났다? 우리를 비판하면 고소고발하겠다. 우리를 비판하면 환빠다. 우리를 비판하면 빨갱이고 표절자다. 이런 자세는 학문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닌 '동네 양아치'와 다름없다고 봅니다.
비좀와라 15-09-30 12:27
   
논쟁이 격렬한 너무 많은 사항을 아주 단순하게 쓰셨네요. 저와는 아주 많은 이견이 있으나 이병도가 주 대상이나 이병도의 학설의 문제점에 대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삼국사기에 분명히 마한은 온조대왕에게 멸망 하였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병도가 삼국시대 초기기록 불신론이란 허무맹랑한 가설을 가지고 온조의 마한정복 기록을 무시하고 중국과 일본의 기록을 따라서 마한이 오랫동안 존속 했다고 주장했고 임나 일본부나 최근에 문제가 된 남선경영설등등은 이 가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겁니다. 이 가설이 미친 파장은 일본과 한국의 고대사의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합니다.

결국 이 가설은 한국의 기록은 무시하고 타국의 기록을 우선시 해서 생긴 것인데 일방적인 누구의 시각에서 나온 학설이고 결코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인 가설이 아닙니다. 유물도 영산강 지역에 궁궐 터등이 발견되지 않기에 삼국사기 기록이 옳음을 증명하고 있는데 이병도의 가설을 비판하지 못하는 학풍때문에 그저 묵인하고 있는 상태 입니다.

결론은 이병도의 이론 전개과정이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도 않은데 이를 비판하면 안되는 학풍이 문제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병도의 학설은 누구의 일방적인 시각을 그대로 반영 되었다고 보기에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굿잡스 15-09-30 14:08
   
고조선의 최초 설립은 부락규모로 시작되었겠죠>?? 그리고 어디서 이런 소리 떠들지 마시길.

이런 부락 형태는 이미 앞서 만리장성밖 고조선 선대 중심지인 요하일대는 이미 기원전 72세기 신락문화에서

정주취락문화가 나오고 있군요. 그기에 흥룡와 문화(기원전 6000년~5200 년)은 이미 성곽의

기초 개념인 해자까지 두르고 있는 정교한 도시형 밀집 촌락까지 발굴된 상황임.

그외 고조선 건국 연대와 맞물린 기원전 20세기 전후 경에는 우리 고구려 성곽의 특징인 치와 옹성

등의 원형이 담긴 삼좌점 유적지의 산성이나 토성등 완연한 방어형 성곽문화에 초기 청동기 문화가 꽃피우고

있는등.(요동 요서를 아우르는 고태산 문화와 압록강 일대 마성자 문화도 기원전 20세기

초기 청동기 문화)

이때문에 고조선 국가라는 건국시기에는 부락 어쩌고에 부족 국가 어쩌고 식은

잽강정기나  60년대 유행하던 쉰소리이고

지금은 이런 도시형 소국형태에서 고조선은 거수국을 거느린 연맹국 형태로 보고 있다

고조선 말기 열국 시대로 분화  이후 삼국시대로 가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로

재편되면서 점차 중앙집권화.


기원전 20세기 하가점 하층 문화의 삼좌점 고구려 치의 원형 석성으
 
로 보이는 방어형 성곽.(사진)

http://daily.hankooki.com/lpage/culture/201410/dh20141025100423138640.htm
굿잡스 15-09-30 14:13
   
그리고 고조선에 대한 좀더 구체적이고 전문적 공부를 해볼려면 아래 최신 논문들을 참조하시길.



하가점하층문화의 최근 조사성과 (夏家店下層文化의 最近 調査成果,2015년)- 백종오

선진문헌에 보이는 예맥의 갈래와 문화원형(先秦文獻에 보이는 穢貊의 갈래와 문화원형

,2011년)- 문안식

선진 시기 산동성 지역 '동이'에 관한 연구(2011년)- 김연주

소하연문화(小河沿文化)에 관하여(2009년)- 복기대

요서(遼西) 지역의 청동기문화와 복합사회의 전개(2012년)- 김정열

시론 강화도 첨성단 유적을 통해 본 단군관련 제사유적(2010년)- 복기대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의 석성(石城) 연구(2008년)- 서길수

북한학계의 고조선 성곽 연구동향(北韓學界의 古朝鮮 城郭 硏究 動向. 2006년)- 백종오

복식과 예술로 본 홍산문화와 고조선 제의문화(2013년)- 박선희

홍산문화의 복식유물과 고조선 복식의 지속성(2010)-박선희

고대 한국 갑옷의 원류와 동아시아에 미친 영향(2007년)- 박선희

홍산문화 유물에 보이는 인장의 기원과 고조선문화(2012년)- 박선희

고조선 국가의 형성과 고조선 금속문화(2009년)- 신용하

고조선 국가의 영역 확대와 고조선 청동기의 분포(2014년)- 신용하

고조선 국가의 요동·요서 지역으로의 발전(2011년)- 신용하

고조선문명권 형성의 기본구조(2010년)- 신용하

고조선의 정치체제(2015년)- 박대재

한서「지리지」에 나타난 고조선의 법(2000년)- 조우영

화폐유적을 통해 본 고조선의 교역 (貨幣遺蹟을 통해 본 古朝鮮의 交易,2008년)-박선미

고조선의 모피무역과 명도전(古朝鮮의 毛皮貿易과 明刀錢,2011년)- 강인욱

고조선 시기 탈춤문화의 형성과 연행예술의 수준(2009년)- 임재해

〈후한서〉 ‘동이전’을 통해 본 고조선 역사(2009년)- 신완순

고죽국(孤竹國)의 성립과 고조선(古朝鮮 ) 후국의 지위(2013년)- 신용하

인지요록·고여곡』풀이와 고증 : 고대조선과 중국, 일본, 발해, 서역 과의 음악문화교류를 겸

하여 논함(『仁智要錄·高麗曲』풀이와 考證 : 古代朝鮮과 中國, 日本, 渤海, 西域과의 音樂文

化 交流를 겸하여 論함,1993년)-엽동, 김건민, 정준갑

우리나라 지적제도의 기원에 관한 연구 : 고조선 시대를 중심으로(2009년)- 류병찬

고구려 건국신화에서 보이는 고조선 인식의 검토(2013년)-김성환

한국 고대사회의 고조선·단군인식 연구 : 고조선·고구려시기 단군인식의 계승성을 중심으로

(2005년)- 조법종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단군 인식 검토(2005년)- 조법종

고조선의 천하관(天下觀)에 관한 시론(試論,2007년) -윤상열

고조선 시대 군사제도에 관한 고찰(2010년)- 박성범

기원전 10∼8세기 요령지역의 동경 유형과 다뉴경의 출현 (2015년)- 홍인국

대릉하~서북한지역 비파형동검문화의 변동과 고조선의 위치(2012년)- 박준형

비파형동검문화 십이대영자 단계 유물 복합의 기원과 형성 과정(2007년)- 오강원

비파형동검을 통하여 본 기원전 8∼7세기 요동 북부 지역 청동기 제작 기술과 지역 간

기술 교류(2013년)- 오영찬

요령~한반도지역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의 검병두식 연구 (2004년)- 오강원

비파형동검문화와 원고구려지역 유입과정에 관한 연구(2008년)- 문재범

기원전 2세기대 서북한 고고 자료와 위만조선(2014년) -오영찬

복식과 정치체제의 비교로 본 고조선ㆍ위만조선ㆍ서한제국 (214년)-박선희

완충교역(緩衝交易)모델에 대한 이론적검토(理論的檢討) -위만조선의 교역양식 복원을

위한 시론(試論)(2014년)-박선희

위만 조선의 왕족 인명 연구(2014년)-이성규

위만조선의 철기문화(衛滿朝鮮의 鐵器文化,2013년) -정인성 이외 기타 등등.
부르르르 15-09-30 16:08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것이 민족사관이군요...허허
유행처럼 번진 '국뽕'이란 단어가 참 몹쓸짓 많이 하네...
     
막걸리한잔 15-10-01 03:29
   
그 국뽕이란 단어를 만든게 일뽕이잖아요..
일본인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고 한국인 입장에서 바라보는게 국뽕인거죠..
Windrider 15-09-30 22:55
   
민족주의라기보단 식민사관을 경계하는 사람들이 많은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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