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대명사 박문수, 하지만 그가 암행어사로 활동한 기간은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는 무엇 때문에 암행어사의 전설로 남았을까?
- 조선시대, 암행어사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관리들의 비리를 고발하고, 백성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암행어사. 암행어사는 조선시대에만 존재했던 특별한 직책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암행어사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사 임명과 동시에 출발해야 하고, 도성을 벗어 날 때까지 암행 지역과 임무 내용도 알 수 없었다. 또한 신변노출을 막기 위한 초라한 옷차림으로 하루에 80에서 90리 길을 걸어 다녀야 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암행어사의 신분을 이용한 가짜어사가 등장. 이로 인해 진짜 암행어사가 가짜로 오해 받는 일도 생겨난다. 때로는 임무 수행 중, 암행어사가 독살당하는 일도 벌어진다. 목숨까지 걸어야하는 암행어사의 고된 길. 어사 박문수를 통해 만나본다.
- 짧았지만 빛나는 암행어사 활동! 영조 3년. 영조의 명을 받아, 암행어사로 파견되는 박문수. 박문수는 암행에 뛰어난 어사였다. 이 능력을 살려 수령들의 비리를 고발하고, 수령들을 파직시킨다.
“임무를 맡아 종적을 잘 감춘 사람은 오직 이종성과 박문수 몇몇 뿐이었다.” [임하필기 29권 中]
영조 7년에 다시 한 번 암행어사로 파견되는 박문수. 당시 삼남(영남,호남,호서)지역은 흉년으로 백성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나돌고, 군역을 면제 받기 위해 불에 몸을 던지고, 생식기를 잘라 성전환을 시도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이런 참상을 두고 볼 수 없던 박문수는 자신의 재산을 백성에게 나누어준다. 또한 백성들의 삶을 영조에게 전하고, 정권을 장악한 노론 대신들과 맞선다.
- 박문수의 든든한 버팀목, 영조 서른세 살이 되던 해 과거에 급제한 박문수. 그는 당시 세제(世弟)였던 영조의 시강원설서가 된다. 둘의 인연은 영조 즉위 후에도 계속 된다. 박문수는 좋은 정치를 위해서라면 영조를 질책하는 말도 서슴지 않았으며, 때때로 영조를 향해 눈을 똑바로 뜨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신하들은 박문수의 거친 말과 행동을 비난했지만, 오히려 영조는 박문수를 끝까지 믿고 신뢰한다. 이런 영조의 믿음은 이후 박문수의 개혁과 정책을 뒷받침 해주는 커다란 힘이 된다.
“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박문수이며, 박문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나였다.”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