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샤말이 아니고 라틴어로 차이나.차이니스 가 케테이 즉 키트타이 거란을 뜻 합니다. 그리고 야요이는 동남아인 아닙니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비단 구입하러 갔을때 무렵 중국은 거란이 장학 했을때 입니다. 참고로 야요이는 동남아인 아닙니다. ㅋ 듕궈족은 거란족이 아닙니다.
아마? 아내가 순치제의 유모였을 겁니다. 그래서.. 인맥을 타고 후손들도 청나라에서 잘 나감..
손녀는 건륭제가 총애하는 후궁이 되서.. (숙가황귀비 김씨)정식으로 만주 팔기로 들어가고..
오빠도 내무부 대신으로 출세하고.. 조선과 외교일 맡아서 조선실록에도 나오는 집안임..
건륭제 사극에서 나오던데... 가귀비 김씨ㅋㅋㅋ 근데..드라마에선 악녀로 나오더군요...
한족인 가경제 생모랑 싸우고... 물론..고증엔 안 맞지만.. 김씨가 한족이 아니라.. 외국인 출신이라 그런가?? ..
근본 만주족 후금건국당시... 그들이 가장필요로 했던것이.
땅보단 사람이었슴니다.. 군대로 쓰기위해서.
광해군당시. 사르후전투 패배후 조선군들을 후금이 잡아두고 팔기로 만들었고.
또 정묘호란 원인이되는 이괄의 난이 진압된후 잔당들이 청으로 귀부하고 이들이 팔기가 되고..
이들이 조선출신 청나라 팔기일것.
누루하치당시 함경도 접경지역 여진족을 다 불러들여서 공백지가 되자(이들이 자발적으로 누르하치 본거지로 남아있던 가족들데리고 이동하게됨).. 이 영토를 조선이 확정적으로 먹는데. 왜 조선왕은 고마워하지 않는가.라는 누루하치의 말도 있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 이유.
조선에서 당시 누군가를 누루하치 본거지에 파견보내 기록한거 보면... 전쟁하겠다면 좋아했다던데... 이들은 전쟁을 마치 돈벌로해외파견가는걸로 생각했던걸로 보인다는
또 당시재미있는기록은..
2대 홍타이지때 병자호란때인지 1차 정묘호란때인지.... 조선여자 잡아온걸두고 홍타이지와 그 부하장수들이 싸우는 기록이 있는데... 말이 가관이라고.. 애초 부하장수에 잡아온 조선여자를 주기로했던모양인데... 달라고 하자. "진작에 말하지 이미몸을섞었는데 어떻게 주냐며 이게 싸울일이냐며 비난하는" ... 이 시각은 일부가 아닌 화냥년의 비극으로 연결되게되죠.
팔기군 가운데 조선인 비중은 대략 6개 니루(1개 니루를 300명으로 잡으면 대략 1,800명) 규모였습니다.
이들 조선출신 니루들은 주로 만주팔기에 소속되어 있었고
이들 조선출신들이 팔기군이 된 배경에는 강홍립의 부차전투, 이괄의 난, 정묘-병자호란 등의 기간을 거치면서
한윤의 경우와 같이 자발적으로 후금-청에 귀순-투항하거나...
포로 출신들 가운데 전투에서 공을 세워
정식 팔기에 편입되어 신분상승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몽골출신들의 경우 청나라가 성립되기 이전 시기인 17세기 초 건주여진-후금이 만주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이미 만주에는 여진족 뿐만 아니라 몽골계통의 부족들 또한 상당했기 때문에
이들이 만주팔기에 이어 성립된 몽골팔기의 주축이 되었습니다.
다만 몽골팔기는 만주팔기에 비해 절반 이하의 인구규모였기 때문에
정원 300명이 표준인 만주팔기 니루에 비해 니루당 정원도 200명 미만이었고
만주 팔기 하나당 니루가 30개 이상이었던데 반해
몽골팔기는 팔기 하나당 니루가 20개 내외였습니다.
그리고 후금에서 청으로 전환되는 시기 무렵에 청나라에 뒤늦게 복속된
차하르부를 비롯한 현 내몽골지역의 외번몽골 부족들의 경우...
(반면에 일찌감치 후금-청의 판도에 들어간 만주지역의 몽골부족들은
내번몽골이 되는 것이지요!)
청나라가 중원을 장악한 시점 이후에 뒤늦게 팔기에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외번몽골부족들의 경우 팔기에 편입되기 이전 시기에도
병자호란, 명나라와의 전쟁-약탈전 등 여러 전쟁-전투에 동원되었습니다.
팔기에 속한 한족의 경우에는.....
후금 초기 시기에 일찌감치 투항한 무순성 성주이자 유격장군의 직위였던 이영방과 휘하병력
모문룡의 부하출신들로 홍이포와 수군전력을 후금-청에 보강해준 공유덕, 경중명, 상가희와
그들 휘하의 병력들의 경우처럼.... 후금-청에 자발적으로귀순-투항한 이들이
병자호란 이후 시기 성립된 한군팔기의 주축이 되었습니다.
한군팔기는 인구규모 측면에서 만주팔기보다는 적고 몽골팔기보다는 많았습니다.
그런데 한족의 경우 한군팔기에 소속된 이들은 그나마 출세한 축에 속한 것이고....
한군팔기에 소속된 한족들보다 훨씬 많은 요동출신 한족들과 명나라군 포로출신들이
만주팔기-몽골팔기군들을 보조하거나 화살받이 신세가 되는 노예병(쿠틀러)에 가까운
처지에 있었습니다....!!!
참고로 노예병인 쿠틀러에는 한족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기는 했지만....
그외에도 건주여진이 주축이 된 여진족 통합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들이자
강하게 저항했던 해서여진 제부족 출신들도 상당수 포함되었으며
강홍립의 부차전투, 정묘-병자호란을 거치며 조선인들도 상당수 포함되었습니다....!!!
그 이외에 에벤키족, 허저족..등의 경우와 같이
병자호란 이후 산해관 입관 이전 시기에 청나라에 정복되거나 복속된
흑룡강 주변의 퉁구스계 소수민족들 또한 팔기(만주팔기)에 편입되었습니다....!!!
조선팔기군은 이괄의 난 당시 살아남은 조선군이 청으로 간것과,
사르후 전투에게 항복해서 포로가된 조선군을 중심으로 구성된 것으로 볼수있습니다.
이 두사건에서 넘어간 조선군의 공통점이 두 사건 다 조선군 최정예 병력이었다는 겁니다.
이괄의 난의 잔존병력은 북방을 지키던 정예이며, 반 인조 세력이었고,
사르후 전투의 조선군은 광해군때 정예 병력이었으니,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인조세력보다 후금(청)에 협력하게 된것입니다.
이 결과로,
조선군보다 청군이 조선 북방 지리에 더 밝게되고,
조선군이 어떻게 싸우고 어떤 전략, 전술을 할지 청군이 알고 싸우게 됩니다.
도저히 조선군이 이길수 없는 싸움이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