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때 사관학교에 있다가 한일합방후 일본육사로 편입되서 일본군이된후,
중일전쟁때 일본군으로 활약해 전쟁영웅이 되었고 해방후 6.25때는 국군 지휘관으로 전공을 세웠습니다.
친일활동으로 인해 평가절하 되고 있지만,
중일전쟁으로 받은 포상금을 조선인 야학에 모두 기부하고,
일제때 자신의 일본군 전쟁영웅 지위를 이용해 조선인을 위한 고등학교 허가를 관공서에 압력을 가하는등 조선 학생들의 교육에 힘썼으며 일본육사 출신으로 독립군에 가담한 사람들의 가족들을 보살펴 주는등 단순히 친일파로 규정하기에는 애매한 인물입니다.
해방후 군문에서 떠나 조용히 지내는데 워낙 한중일에서 유명한 군인이라 이승만 정권때 다시 불러들여 기용합니다.
국경선에서의 군내부의 비리(밀무역)를 막아버리고 밀무역에 가담한 고위직 상급자를 비난하다 예편당한후,
6.25가 발발하자 자원입대 해서 사단장이 됩니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활약했고,
장사동 철수작전에서는 적과 교전중인상태에서아무 피해없이 민간인들까지 다 데리고 여유있게 철수해서 미군의 극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여러 전사에서 보여지는 성과와 능력은 좋았지만,
그러나 지휘 스타일이 일본군 스타일(사단장돌격)이라 미군 지휘관들에게는 안좋게 보여 전쟁이 어느정도 안정된후에는 한직을 떠돌다 전역하게됩니다.
부하들에게 신뢰를 받아 6.25전쟁때 복직한후 예전에 휘하에 있던 장교들이 자기상관에게 말해서 자기가 믿는 지휘관(김석원)의 지휘를 받겠다고 옮겨간 일화도 있고(백선엽자서전)
전쟁중 자기 휘하로온 학도병들을 무장해제하고 집으로 돌아갈수 있도록 했지만 자의로 그를 따르다 희생된게 포항여중 전투의 학도병들입니다.